사람들과 나누게 된 ’내 손으로 만드는 행복’ [ESC]

한겨레 2024. 7. 2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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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업일기 목공 수업
마을 축제 때 개설한 목공체험
교감 속 ‘교육의 즐거움’ 깨달아
‘밀도 있는 경험’ 위한 수업 개설
‘나무공방 쉐돈 목공교실’에서 원목 의자를 제작하고 있는 수강생들.

스승의 공방에서 일하던 시기, 각종 목공교육·체험 행사에 보조강사로 나서곤 했다. 7~8명 이내의 인원이 공방에 와서 프로그램에 따라 몇 가지 물건을 만드는 일이다. 주로 스승이 설명하고, 시범을 보이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교육을 진행했다. 나는 함께 수업과제를 준비하고 누군가 도움을 청하면 가서 해결해주는 역할이었다. 그냥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할 만했다.

외부 출강, 그중에서도 20~30명까지 수강인원이 늘어나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초등학교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도마제작 수업이 있었다. 나 혼자 20여명의 체험객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해야 했다.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쳤다. 혼자서 강의 교안을 떠들어 보고, 머릿속으로는 교육 순서를 시뮬레이션했다. 막상 교육 당일이 되자,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각자 바라는 것도, 원하는 체험의 수준도 제각각인 학부모들의 눈빛은 강사인 나의 말이 꼬여가는 만큼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녁에 진행된 교육인 만큼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엎드리는 사람도 있었다. “제 도마는 왜 이래요?” 교육용 도마재의 작은 흠결을 두고 제기하는 불만에 초보 강사의 마음에도 상처가 났다.

소나무 소품걸이와 탁상용 조명

목공방을 창업하면서 ‘교육’을 배제한 것도 그래서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를 가르칠 자격이 되는가’ 하는 의문도 한몫했다. 거기에 ‘주문제작만 하는 공방’이라는 자존심도 더해졌다. 그리고 창업 2년. 다시 ‘교육’을 시작했다. 다름 아닌 이곳 제주 서귀포 신효마을에서 열렸던 ‘신효마을 공예축제’ 때문이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축제에 참여하게 됐는데 한 수업에 6명씩, 열흘 동안 100여명을 대상으로 목공체험을 진행했다. 축제 내용은 이전에 기사로도 다룬 바 있다.

무료로 진행한 공예축제 프로그램이지만, 고민을 많이 했다. 하루종일 손사포만 문지르는 체험은 재미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까? 해답은 장비를 최대한 많이 사용하는 거였다. 목공장비 중에서도 덜 위험하고 초보자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드릴프레스’(원하는 깊이·크기의 구멍을 정확하게 타공할 수 있는 장비)와 ‘스핀들 벨트샌더’(목재를 정확하게 깎아내고 다듬는 장비)’를 직접 조작하도록 했다. 처음 접하는 장비인 만큼 체험객들은 즐거워하고 신기해했다.

수업을 통해 만들 수 있는 건 자석으로 현관문 안쪽이나 냉장고에 부착해 열쇠 등을 걸 수 있는 소나무 소품걸이와 탁상용 조명이었다. 조립 후에는 오일이나 스테인 등을 이용한 마감칠을 했다. 목재마감은 목공의 ‘꽃’이다. 직접 다듬고 가공한 목재의 표면에 적절한 마감처리를 함으로써 완성도를 높이면 만족도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레이저 각인기를 이용해 각자 원하는 문구도 새길 수 있도록 했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혹은 누군가를 응원하는 문구들을 연이어 각인했다. 작은 소품이지만 레이저 각인은 물건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한 체험객이 말했다. “숫자 4개만 새길게요.” “네, 불러주세요.” 그가 부른 숫자는 0416.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가락이 멈칫했다. 기자 시절 세월호 현장 취재도 꽤 오래 했던 경험이 있다. 조만간 이곳 신효마을로 이사를 올 예정이라는 그 체험객과는 교육시간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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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2명, 원목으로 4회

원목 필통도 목공교육을 통해 초보자가 직접 제작할 수 있다.

열흘 동안 제대로 점심도 챙겨 먹지 못할 정도로 빡빡한 축제 일정이었지만, 한 가지를 깨닫게 됐다. 나도 그 시간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 공간에서 소수의 인원을 대상으로 충분히 교감하면서 진행하는 목공 교육은 즐겁고 보람찼다. 체험객의 만족감이 높을수록 보람은 더 컸다. 아, 나도 교육을 할 수 있겠구나, 이제 교육을 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 하게 됐다.

축제 후에 ‘나무공방 쉐돈 목공교실’을 연 것도 그래서다. 다른 공방에서 하기 어려운 경험을 제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완성도 있는 물건을 좀 더 주도적으로 만들어 볼 수 있다면 어떨까?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보다 ‘밀도 있는 경험’을 줄 수 있도록 교육 정원은 최대 2명이다. 하루짜리 ‘원데이 클래스’ 대신 최소 2주 동안 진행하는 4회 프로그램을 원칙으로 한다. 2주 동안 4가지 물건을 만든다는 뜻이다. 교육용 자재는 ‘목공키트’를 구입해 쓰는 게 아니라 자체 제작해 완성도를 높인다. 그리고 합판 등의 소재보다는 ‘원목’을 주로 쓴다.

지난달 시작한 목공교실은 꽤 반응이 좋아서 이번 달에도 빈 자리 없이 계속 진행하고 있다. 각종 도마류, 작은 의자인 스툴, 찻상, 특수목을 이용한 시계, 원목 필통 등을 ‘스스로’ 만든다. 특히 시계와 필통의 반응이 뜨거웠다. 아름답고 실용적이기 때문이다. 자석을 이용한 원목 필통은 부드럽게 ‘착’ 소리를 내며 닫힌다.

프로그램은 계속 고민 중이다. 매번 새로운 물건으로 진행할 수는 없겠지만 1차 교육에 참여한 분들이 2차에도 등록한 경우가 있어서 새로운 레퍼토리를 내놔야 하기 때문이다. 몇 차례 교육을 경험한 분들을 대상으로 ‘자유주제’ 교육도 구상하고 있다. 자신의 공간에 필요한 가구를 도면제작부터 재단·조립과 마감까지 공방에서 함께하는 프로그램이다.

올여름에는 집 근처 목공방을 한번 찾아보시길 권한다. 목공은 즐겁다. 더 많은 분들이‘내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글·사진 송호균 나무공방 쉐돈 대표

한겨레 기자로 일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생각해 2016년 온 가족이 제주도로 이주했다. 본업은 육아와 가사였는데, 취미로 시작한 목공에 빠져 서귀포에서 목공방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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