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맞댄 곳, 존재감 커진 ‘북녘 노동자’…“부디 안녕하시길”
국경 봉쇄 이후 북·중 연결망
중국에 있는 북 노동자 10만명
경공업·서비스업 기술 겸비 인력
숙련도 높아져 임금인상 갈등도
이달 초, 조선(북한)·중국 접경지역을 방문한 것은 5년 만이다.팬데믹으로 중국을 오갈 수 없었던 시간 동안 이곳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단골 식당과 커피숍이 그리웠고, 강변을 따라 걷는 산책길이 온전한지 확인하고 싶었다. 광활한 자연 풍경과 투박하지만 정이 깊은 사람들의 얼굴도 눈에 선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확인한 초국적 연결망이 국경 봉쇄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어떻게 변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언론에서는 조·중 접경지역 방문에 주의를 요한다고 보도했다. 2023년 중국에서 시행된 ‘반간첩법’으로 사진 하나라도 잘못 찍으면 문제가 된다는 경고였다. 팬데믹 전후 강화된 통제 체계로 중국 내 이동에 상당한 제약이 있다는 소식도 있었다. 비자가 찍힌 여권으로 여행하는 남한 사람도 이러할진대 불법적 신분의 북한 사람의 이동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터였다. 지금까지 북한 주민들의 이동을 가능하게 했던 접경지역의 다양한 연결망이 크게 요동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북 노동자 송환 때 “기업·식당 멈춰섰다”
오랜만에 만난 조선족 지인들은 최근에는 국경을 넘어온 북한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북한과 중국이 ‘코로나바이러스’를 잡는다며 실시한 이중·삼중의 봉쇄 때문이었다. 천운이 따라 무사히 국경을 넘는다고 해도 중국 내 통제가 강화된 탓에 북한 사람들이 몸을 숨기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워졌고 그들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던 비공식 영역의 일자리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반부패 등을 내세우며 시장 전반의 통제력을 강화한 중국 정부의 정책이 접경지역 내 북한 주민들의 비공식적 일자리까지도 국가 통제 영역으로 포섭한 까닭이다.
공식적 영역의 이동도 제한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북한이 국경 개방에 나선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팬데믹 이전과 같은 수준의 북·중 교류나 접촉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 사사여행증을 끊어 나오는 친척 방문이나 외화벌이 사업을 위한 경제일꾼 등의 이동도 과거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 북·러 관계가 급진전된 것이 북·중 관계 회복을 더디게 했다는 해석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중국 쪽에서 국제 제재 대상국인 북한과의 교류에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북·중 무역의 현주소를 가늠해볼 수 있는 접경지역의 세관은 한산하기만 했고, 북한과 무역을 해온 중국 기업들의 움직임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를 접경지역의 초국적 연결망의 소멸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3년여 동안의 국경 봉쇄가 새로운 연결망의 형태를 촉발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과거에는 북한 주민과 조선족의 비공식적 이동과 교류가 초국적 연결망의 주축이었다면 이제는 공식적이며 합법적인 이동과 연결이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의 해외파견 노동자들과 지역 경제의 높은 의존성을 세심히 봐야 한다. 중국에 있는 북한 노동자들은 약 10만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대다수는 2017년에 발효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2397호에 따라 2019년 12월까지 송환됐어야 했다. 하지만 2020년 1월 코로나로 국경이 봉쇄되자 대다수의 송환되지 못한 이들은 중국에 머물면서 노동을 지속해왔다. 동북 3성 지역 중에서도 접경지역의 북한 노동자들은 섬유 관련 경공업, 식당 등 서비스업, 그리고 돌봄 등 의료 관련 업종에서 일하고 있다. 노동 기간만큼 상당한 경험과 기술을 겸비한 노동력으로 접경지역 경제에 깊숙이 연결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중국 고용주는 북한 해외파견 노동자들을 가격 대비 효율이 높은 믿을 만한 노동력으로 인식한다. 중국 노동자의 경우 이유 없이 그만두거나 고용주가 기대한 만큼의 효율을 만들어내기 힘든 반면, 북측 관리인이 직접 관리하는 북한 노동자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의 안정적인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 정부가 ‘엄격하게’ 선발해 보낸 까닭에 노동의 질이 뛰어나 생산력이 높으면서도 임금은 중국인 노동자보다 월등하게 낮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해외파견 노동이 중국 쪽 기업에 환영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19년 국제 제재로 북한 노동자들의 송환이 시작됐을 때 접경지역의 상당수 기업과 식당이 “멈춰 섰다”는 증언이 의미하는 것은 이미 그 당시에도 북한의 해외파견 노동력이 접경지역 경제에 상당히 깊게 연루되어 있음을 뜻하는 것이고, 그러한 경향성은 국경이 단절된 시간이 길어진 만큼 더욱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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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한족 대체하는 일꾼
그런데 본국으로 송환이 멈춰 선 기간 동안 북한 노동자들이 각자 분야에서 상당한 기술과 경험이 쌓인 숙련 노동자로 탈바꿈하면서 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다. 이곳에서 만난 조선족 사업가의 증언에 따르면, 숙련공이 된 북한 노동자들과 북한 쪽 관리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이에 각 사업장의 고용주들은 이윤율 저하로 인한 어려움에 봉착했다고 토로했다. 북한 노동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대체 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노동집약적 산업의 특성상 임금 인상을 받아들이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낮은 임금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차선책으로 숙련 노동자를 새로운 북한 노동자로 대체하는 방안이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 노동자들의 귀환 문제를 북한과 중국 사이의 소원해진 관계로 단순화하여 해석한 보도나 지린성의 북한 노동자들의 소요 사태를 북한 쪽에 대한 항의로만 해석한 분석이 반쪽짜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낮은 임금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 중국의 산업구조와 숙련된 노동 수준에 합당한 임금을 요구하는 북한 노동자 사이의 긴장이 만들어내는 파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중국 내에서도 낙후한 지역 중 하나인 동북 3성에서 북한 노동력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해외파견 노동은 북한 정부의 이해관계 못지않게 중국 쪽 접경지역의 산업구조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접경지역은 북한과 중국 모두의 경제적 필요가 맞물리는 형태로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더 나은 임금을 찾아 떠난 조선족과 한족의 자리를 대체한 북한 노동자는 지역 경제에 필요한 존재가 됐다. 북한 주민들의 불법적이고 비공식적인 월경이 국경 봉쇄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음에도 접경지역 곳곳에서 북한 사람들의 존재감이 점점 더 커져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변 지역의 규모가 있는 식당 대부분에서 북한 여성 종업원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과거에는 몸을 숨기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소식을 여러 경로를 통해 전해 들었다면,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다. 비록 내 눈길을 쌀쌀맞게 피하기는 했지만 식당에서 일하는 북한 여성들의 모습은 경쾌하고 활기가 가득했다. 이주 노동자의 삶이 결코 녹록할 리 없겠지만 나름 일상을 견뎌내며 살아가는 듯했다. 부디 건강하시기를. 무엇을 꿈꾸고 있든 행복하고 안녕하시기를. 혹여나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는 제발 인사라도 건넬 수 있기를.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영국 에식스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성공회대, 싱가포르국립대를 거쳐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북한 사회와 탈분단 문화를 연구하며, ‘갈라진 마음들’ 등 다수의 학술 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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