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국정원 수사권도 모자라 조사권까지 박탈하나
국정원장의 타 기관 정보 협조 요청권·직원의 안보정보 수집 위한 조사기능 등 삭제
(시사저널=조경환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겸임교수ㆍ행정학 박사)
국가정보기관의 본령은 국가 보호다. 영토와 주권, 국민을 지킨다. 이 중 국민 보호는 프라이버시 및 생명안전 위협으로부터 시민의 자유 향유이며, 대통령의 헌법상 임무 수행을 뒷받침하는 형태로 구현된다. 국가정보기구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내재적 헌법기관성을 부인하기 어려운 이유이다(한희원. 2014.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그런데 유독 국정원과 결부되면 국가사회에는 또 다른 렌즈가 도돌이표처럼 등장한다. 부정적 역사의 경험과 오인식이 깊게 뿌리내려서일까? 정치적 손익계산 때문일까?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머리에 이고 사는 숙명에서일까?
이기헌 등 민주당 국회의원 17인이 7월2일 국정원법 개정안을 냈다. 그 당이 집권했던 2020년 12월 수사권 폐지 등 전부 개정 국정원법이 올해부터 막 시행되는 터다. 그런데, 당시 신설했던 제5조 제1항, 원장의 국가기관 등에 협조 요청, 제2항 직원의 국가안보 침해정보 수집 및 국가기밀보안 직무 수행을 위한 조사기능을 삭제했다. 그리고 국정원의 신원조사를 "법률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위법한 규정"으로 단정하고 취득정보의 인사 활용 금지를 명문화했다.
민주당은 7월11일 의원총회에서 해당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았지만 추후 다시 논의키로 했다. 법안이 민주당 당론으로 채택되면 압도적 의석으로 입법은 시간문제다. 이즈음 절차적, 실체적 정당성을 짚어볼 필요성이 있다.
먼저 시점과 절차를 보면, 제5조는 시행된 지 불과 6개월이다. 22대 국회의원의 임기는 한 달이 막 지났다. 개정법 성안이 실증적 증거나 입법 조사에 기반했는지, 국가안보와 국가안보기구 전체의 직무·권한 규정, 침해 사익과 보호 공익의 균형 등에 대한 숙의는 거쳤는지 의문이다.
수사권 폐지의 대안으로 나온 조항을 또 삭제
더욱이 당시 야당이던 지금의 여당(국민의힘)이 국정원 수사권 폐지 반대를 고수하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그 대체 방안으로 도입해 놓고, 또다시 삭제하겠다는 것은 자기부정이며, 국가안보의 초당적 성격을 몰각하는 행태다.
개정 법률안의 제안 이유를 살펴보면 실체적 정당성에도 의문이 생긴다. 첫째, 수사권보다 현행의 조사기능이 더 광범하게 인권을 침해하고, 형사법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이마저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강제 수사권과 행정조사기본법상의 협조 규정을 준용하는 조사권은 그 침해의 정도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수사권을 복원하면 되지 않는가? 이는 국정원법 개정 논의가 한창이던 2020년 10월 참여연대, 민변, 한국진보연대 등으로 구성된 '국정원감시네트워크'의 철 지난 주장을 그대로 다시 옮겨놓은 것이다. 민주당이 배제했던 주장의 부활 시도인 셈이다.
몇 사람의 가정에 근거해 조사권과 인권침해의 인과관계를 예단하는 것은 무모한 정책실험을 부른다. 현재의 법제하에서도 인권침해가 나타난다면 감시·감독을 강화하고 조사의 한계와 준칙을 법규로 마련하는 수고로움을 국회의원들이 짊어지면 될 일이다. 그 기능을 없애버리는 것은 안보자산의 멸실이고, 손쉬운 입법에 유혹당한 꼴이다.
2018년 국회 정보위가 용역 조사(채성준·임석기)한 82개국 정보기관 중에서 미, 중, 러, 캐나다,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이스라엘 등 52개국(63%)은 정보기관이 수사권을 보유하고 있다. 조사기능만 있는 19개국의 경우도 독일의 연방범죄수사청, 일본의 공안조사청, 영국의 국가범죄청과 같은 별도 국가안보 수사기관과 연동해 작동한다.
탈냉전과 9·11 이후 각국은 정보기관의 직무를 확장하고, 그 권한 규범은 법령으로 상세하게 규정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나치 비밀정보기구의 폐해를 절감한 독일은 연방정보부(BND), 연방헌법보호청(BfV), 국방보안국(MAD) 등 정보기관에 수사 강제력 사용을 불허한다. 대신 각 기관은 조직, 인사, 기능별로 상호 협조한다. 그리고 연방헌법보호청법에 정보수집 방법, 대상 및 수단을 자세히 법제화하고 있다. 위장, 비밀요원 작전, 비밀 신문, 도청, 촬영, 녹음, 무선통신 및 서신·우편 감시, 정보기술 시스템에 비밀 접근 및 인터넷 순찰, 침입 등을 열거해 놓고 있다. 연방하원 정보통제위원회의 통제를 받고, 법률유보의 원칙, 비례원칙, 필요성의 원칙이 엄격히 적용된다.
국가정보기관의 신원조사를 위법으로 규정
영국의 보안정보기관인 보안청(MI5)도 강제 수사권이 없다. 인신 체포와 구금은 런던광역경찰청을 통해 협업한다. 그렇지만, 강력한 포괄적 조사권이 있다. 직원에게 국내에서 직무활동 중에 형법상 면책특권을 부여하기도 할 정도로 수집 및 보안업무 권능을 보장한다. 비밀감시, 비밀정보원 사용, 통신정보 획득과 공개, 정보관 활동 등의 준칙은 '2000년 조사권법'에 정해져 있다. 데이터보호법을 지켜야 한다. 1989년의 보안청법은 MI5 내부에 통제 메커니즘을 확립했다. 감청, 해킹 장비 설치 등 침해적 정보수집은 상급부처인 내무성 장관이 영장 발부로 제어한다. 외부적으로는 조사권감독위원회, 의회 정보보안위원회, 독립사법기관인 조사심판원의 3중 통제 아래 있다.
둘째, 국정원의 신원조사는 국가기밀의 문서·자재·시설·지역 및 국가안보적 기밀 취급 인원에 대한 보안업무를 규정한 국정원법 제4조 제1항 2호에 근거한 행정행위다. 신원조사는 인원 보안의 출발이다. 인원 보안은 국가 파수의 시작과 끝이다. 국가기밀이 인가되지 않은 자들에게 공개될 경우 초래될 위험은 긴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셋째, 국정원 취득정보의 인사 절차 활용 금지를 제4조(직무)에 신설하는 것은 법조문 구성에도 맞지 않는다. 그리고 인사 검증은 법무부와 대통령실의 소관이다. 오히려 미국은 정보·수사기관인 연방수사국(FBI)이 인사 정보수집, 검증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음을 참작하면 좋겠다.
비밀성과 인권의 양립은 지난한 과제다. 실용주의 관점에서 접근할 때가 됐다. 그리하면 이는 정치가 아닌 기술적 문제로 전환된다. 국정원 직원들은 흔히 보는 형제자매요, 부모다.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비범한 일을 해내려고 한다. 실효적 수단과 방패 없이 그들을 임무에 내몰 수도 없다. 적실한 통제 법제 마련은 국회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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