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몰고 사막으로…‘좌충우돌 여행’의 시작 [ESC]

한겨레 2024. 7. 2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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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걷다 보면 나미비아①
50대 여성 셋, 아프리카 19일 여정
‘가장 건조한 곳’ 나미브 사막까지
길 잘못 들고 물품 잃어버리고…
최악 가뭄에 야생동물 생존 위기
듄45에서의 해돋이를 바라보고 있는 일행들.

“자, 다시!” “하나, 둘, 셋!” “당겨요!” 있는 힘껏 줄을 당겨보지만 이번에도 실패. 텐트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차량 위에 올라가 텐트를 밀어올리는 사람도, 차 밑에서 줄을 당기는 사람도 어깨가 부서져라 힘을 쓰고 있지만 텐트는 요지부동.

“우리끼리는 안되겠어요.”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야영장을 노려본다. 테이블을 펴놓고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는 건장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절박한 표정으로 그의 도움을 구한다. “당신의 힘이 필요해요.” 서양인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아내에게 어깨를 으쓱하더니 나를 따라온다. 여자 셋이 매달려도 꼼짝을 않던 텐트가 그의 손길에는 어이없을 정도로 부드럽게 펴졌다. 렌터카 지붕에 장착된 두 동의 텐트! 잡아당기기만 하면 되는 최신형이라고 좋아했던 건 잠시, 키 작고 힘 약한 우리에게는 골칫거리였다. 사흘 만에 모래가 끼었는지 더 뻑뻑해져서 난공불락의 성채가 되어버렸다. 캠핑장에서 텐트와 씨름하다가 매번 남자들에게 달려가 도와달라 외치는 게 내 일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다행은 그들이 기꺼이 도와준다는 점. 앞으로 남은 캠핑 내내 나는 힘 세고 키 큰 남자를 찾아 하이에나처럼 야영장을 헤집고 다녀야 한다. 그것도 멀고 먼 아프리카 대륙의 나미비아에서.

더 늦기 전에 야생동물의 생존을…

나미비아의 야영장에서 힘센 남자들의 도움을 받아 렌터카 지붕에 텐트를 설치하는 모습.

지난 5월 우리는 수도 빈트후크에서 차를 렌트해 나미브 사막으로 향했다. 꼭 20년 만의 아프리카행이었다. 기후위기는 나에게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한 위기감을 여러 면에서 던져주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야생동물의 생존이다. 더 늦기 전에 한 번 더 지구의 또 다른 주인을 만나고 싶었다. 마침 탄자니아 방과후 산책단을 꾸린 터라 그 전에 나미비아와 보츠와나를 여행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18박19일간 나와 함께 여행할 동료는 두 명. 짐승 같은 생존 본능을 지닌 ‘미옥쌤’. 밤새 울어대는 수탉 무리 가운데에 던져놔도 세상 모르고 자는데다 20년 간 테니스로 단련된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 어떤 상황에서도 이성적인 이과생 ‘형란쌤’. 위기 상황에서 내 마음까지 차분하게 해주고, 체력도 좋고 성격도 무던해서 어디서나 잘 지낸다. 무엇보다 두 사람 다 잘 먹고, 잘 자고, 호기심이 넘치고, 긍정적이다. 그야말로 ‘묻지 마 여행’에 최적화된 사람들인 셈.

그들은 꿈꾸던 나라에 왔다며 해맑게 소리 지르는데 나는 그저 앞으로의 여정이 걱정이었다. 여자 셋이서 아프리카를 캠핑카로 여행할 생각을 하다니 얼마나 용감했는지! 아프리카에 발을 디딘다는 사실만으로 흥분해 일정도 모른 채 길을 나선 두 사람은 또 얼마나 무모했는지! 렌터카 여행을 준비하다 보니 한숨이 절로 났다. 구글 검색을 해보면 모래 구덩이에 빠진 차를 빼느라 고생한 이야기, 튀어온 돌에 앞 유리가 깨진 이야기, 타이어가 터져 도로 한 가운데서 퍼진 이야기…. 줄줄이 매달린 고구마 열매처럼 모험담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이 비포장 도로라 타이어 펑크는 옵션 아닌 필수(심지어 우리가 직접 타이어를 갈아야 한다)로 보였다. 나 혼자라면 그동안의 경험으로 어떤 상황에서든 ‘오대수’(오늘만 대충 수습하자)의 각오로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지금 내 어깨에는 두 명이 매달려 있었다. 내 평생 ‘책임감 제로’의 삶을 지향해 고양이 한 마리 입양하지 못했는데, 이런 부담을 껴안아야 한다니. 그렇게 걱정이 가득한 상태로 50대 여자 셋의 나미비아·보츠와나 캠핑 여행이 시작되었다.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촬영지

나미비아의 거대한 모래언덕인 빅대디듄.

실존 인물의 자전적 삶을 영화화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가장 로맨틱한 장면은 로버트 레드포드가 메릴 스트립의 머리를 감겨주는 장면이 아닐까. 분수를 알며 살아왔기에 로버트 레드포드는 바라지도 않았다. 인류의 시원이 된 아프리카 대륙의 한 나라, 독일의 식민지였다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게 점령당했다가 1990년에 독립한 신생국 나미비아에서 그저 평화롭기를 바랐을 뿐. 이 땅에 사는 야생 동물과 함께 해 뜨는 모습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해 지는 풍경 안에서 감사히 하루를 마감하는 것. 그 정도가 그렇게 대단한 욕심이었을 줄이야!

캠핑카를 몰고 수도를 떠난 지 사흘. 캠핑의 낭만은커녕 앉아서 점심을 먹은 적도 없다. 캠핑카 안의 식탁과 의자는 펴보지도 못했다. 매일 픽업트럭의 바닥에 마트나 카페에서 급하게 산 초간단 메뉴를 펼치고 선 채로 먹어야 했다. 그마저도 끼니 때를 놓친 후에 뒤늦게. 우아한 여행을 기대했던 미옥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소리 질렀다. “고발할 거야! 악덕 고용주라고! 밥도 안 주고 노동만 시키고!” 정말이지 열악한 환경에서 목적지까지 가느라 하루가 바빴다. 도로는 자갈길 아니면 모래길. 사륜구동인 우리의 무거운 차도 모래 구덩이 쪽으로 쏠리면 바로 바퀴가 미끄러지며 차가 돌아버린다. 수도를 벗어난 이후 지금껏 도로의 가로등을 본 적이 없다.

해 떨어지기 전에 숙소에 도착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일찍 출발하지만 매번 돌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첫날은 렌터카 회사에서 세 시간에 걸쳐 계약서를 쓰고, 차량 사용법을 배우고, 마트에 들러 장을 보느라 출발이 예상보다 늦어졌다. 오후 1시30분부터 자갈길 300㎞를 달려야 했는데, 차에 설치한 지피에스(GPS)가 알려주는 길을 무시하고 구글 지도 따라갔다가 험한 길로 진입해 100㎞를 넘게 되돌아가야 했다. 기계보다 인간을 믿는 구시대적인 인물인 나는 어려움에 처하면 무조건 사람에게 달려들어 도움을 청하곤 한다. 렌터카 회사에 바로 연락했다. ‘우리 해 떨어진 후에 캠핑장 도착할 것 같은데 어떡하냐’고 징징거렸다. 렌터카 회사 사장과 직원이 왓츠앱으로 그룹방을 열고, 차량에 부착된 트래킹 시스템으로 우리 차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며 다른 길을 안내해줬다.

나미비아는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두 번째로 희박한 나라. 도로 위에 차도 없고, 마을도 없고, 인터넷은 거의 터지지 않는다. 수평선을 붉게 물들이며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일몰이 펼쳐지는데 사진을 찍기는커녕 초조와 불안으로 얼룩진 가슴을 부여안고, ‘우리를 굽어 살피소서! 불쌍히 여겨주소서!’ 이름을 아는 모든 신에게 간구하며 조수석에 앉아있었다. 가로등도 없는 비포장길을 해가 진 후에도 한 시간을 더 달려야 했는데 내 인생에서 가장 긴장한 시간이었다.

나미브 나우클루프트 국립공원의 세스림 캠핑장 도착해서도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에게 할당된 32번 캠프 사이트를 찾느라 드넓은 캠핑장을 30분 넘게 헤매고, 루프톱 텐트와 씨름하느라 또 1시간을 까먹었다. 남들은 모닥불 피워놓고 와인을 마시는데 우리는 선 채로 낮에 남은 음식으로 대충 저녁을 먹었다. 고양이 세수만 하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 4시30분에 기상. 소서스블레이의 듄45에서 일출을 보러 출발해야 했다. 듄45는 세스림 게이트에서 45㎞ 떨어진 곳이라는 이유로 붙은 이름이다. 아침 메뉴도 당연히 ‘대충 아무거나’였다. 나미브 사막은 듣던 대로 근사한 모래언덕이 이어진 곳이었다. 나마 부족의 언어로 ‘나미브’는 ‘아무것도 없는 땅’을 의미한다. 나미비아라는 이름을 나미브 사막에서 따왔으니 국명 자체가 아무것도 없는 땅을 뜻하는 셈. 그 텅 빈 땅은 650만헥타르(650억㎡)가 넘는 모래 언덕과 자갈 평원을 품고 있다. 이 황량한 풍경을 배경으로 영화 ‘매드맥스–분노의 도로’가 촬영되기도 했다.

‘죽은 호수’라는 뜻의 데드블레이에서 말라죽은 나무들.

인간이 거주하는 지역은 거의 없지만, 이 고독한 공간에도 깃들어 사는 생명체가 있다. 오릭스나 산얼룩말, 짧은귀코끼리땃쥐, 황금두더쥐 같은. 듄45의 높이는 170m. 좁고 긴 능선을 따라 언덕을 오르는 이들 뒤로 우리도 걷기 시작했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의 모래언덕에 앉아 해돋이를 기다렸다. 금빛 햇살이 광선검처럼 길게 펼쳐지며 모래언덕에 와 닿았다. 곧 모래언덕이 짙은 장미색으로 붉게 타올랐다. 그 너머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붉은 모래와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듄45에서 내려와 차를 세워두고, 국립공원의 셔틀 차량에 올라 데드블레이로 향했다. 데드블레이는 ‘죽은 호수’라는 뜻. 바짝 말라 죽은 나무들이 마치 설치 미술 작품처럼 모래 위에 서있다. 이곳에서 가장 거대한 모래언덕은 ‘빅대디듄’.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있자니 영화 ‘듄’의 배경인 아라키스 행성에 와있는 것 같았다. 아라키스 행성의 원주민 프레멘은 모래벌레를 피하기 위해 흔적을 지우며 걷는다. 빅대디듄을 내려올 때 프레멘처럼 지그재그로 걸어봤다. 미끄럼을 타듯 발이 쑥쑥 미끄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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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 상황에 낭만은 저 멀리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도착해 차에서 짐을 내리는 순간, 비명이 터졌다. “사다리 한 개가 안 보여요!” 그야말로 대형 사고였다! 텐트와 차량을 연결하는 사다리가 픽업트럭의 캐노피를 치고 빠져나가면서 분실된 거였다. 아마도 캐노피를 잠그지 않고 출발한 모양이었다. 루프톱 텐트 두 동에 오르내리기 위해서는 사다리 두 개가 필요했다. 그 무거운 사다리가 떨어지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사다리를 찾아 왔던 길을 되짚어 150㎞를 더 달렸다. 길가에 기린 세 마리가 우리를 빤히 보고 있었지만 우리는 동물 사파리가 아니라 ‘사다리 사파리’ 중이었다. 끝내 사다리는 찾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차의 캐노피가 잠기지 않았다. 숙소에 긴급구조를 요청했다. 직원 마틴이 우리 차를 손봐줬다. 스패너로 볼트를 조이고, 여기저기 두드려 안 잠기던 캐노피를 잠글 수 있게 해줬다.

300만평의 땅을 소유한 숙소에서 바라본 코뿔소 가족.

그제야 코뿔소 가족과 얼룩말이 바로 건너편 물웅덩이에서 물을 마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텐트며 차량 문제로 죽겠다고 호들갑을 떨던 우리 앞에 문자 그대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존재가 있었다. 칠레 아타카마와 함께 나미비아의 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곳으로 꼽힌다. 올해 나미비아는 최악의 가뭄으로 전 국토가 바짝 마른 상태였다. 이 숙소가 소유한 땅의 면적은 300만평. 그 안에 사는 야생동물이 굶어 죽어갈 판이었다. 이곳에서는 돈을 주고 건초를 사서 하루 두 번, 동물들에게 뿌려주고 있었다.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위험한 일에 대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눈앞에서 우리 땅에 사는 동물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건가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비가 내리고, 풀이 자라기 시작하면 먹이를 주는 일을 멈출 거라면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소유한 거대한 땅에 깃들어 사는 생명이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 외면하기는 쉽지 않았겠지만, 나에게 야생의 존재를 돌보고 거둘 자격이 있는 걸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부디, 저 동물들이 인간의 손길에 길들어 야생의 생존방식을 잊어버리기 전에 비가 내려주기를 바랄 뿐.

다음날 협곡 그늘에 차를 대고 또 선 채로 대충 점심을 먹었다. 출발하려는데 캐노피를 잠그려던 미옥쌤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야, 또 안 잠긴다. 우째야 하노.” 어제 고친 캐노피가 다시 잠기지 않는다니 울고 싶었다.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피니 근처에서 점심을 먹는 네덜란드 가족이 잡혔다. 나의 절박해 보이는 얼굴을 이용해 도움을 요청했다. 아버지와 세 아들이 같이 머리를 맞대더니 임시로나마 잠글 수 있도록 해결을 해줬다. 혹여나 캐노피가 또 열릴까 봐 잠자는 고양이 곁을 지나가듯 조심스레 차를 몰아 그날의 목적지인 스와코프문트까지 갔다. 큰 도시인 이곳에서 캐노피 잠금장치를 수리할 예정이었다. 이제 고생 끝이라 믿으며 텐트 아닌 침대에 몸을 뉘었다. 우리를 기다리는 ‘파란만장 대환장’ 여정은 상상도 못한 채.

글·사진 김남희 여행가

여행가 김남희는 2003년 이후 유목민의 삶을 살아오고 있다. 언젠가는 앉아서 유목하는 경지에 오르기를 바라면서, 지은 책으로는 ‘길 위에서 읽는 시’, ‘여행할 땐, 책’, ‘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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