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는 정말 존재하는가? [영화와 세상사이]
사회부 기자 임상진(손석구)의 내레이션으로 출발하는 영화 ‘댓글부대’의 시작과 끝을 잘 살펴보자. 임상진은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 사태를 이끌어냈던 ‘촛불시위’의 기원부터 시작해 거대 기업 만전그룹이 개입된 여론 조작의 연대기를 엮어낸다. 임상진은 “이것들은 내가 기자의 사명을 걸고 직접 취재해서 알아낸 것들”이라고 말한다. 이어 이 이야기가 한 중소 기술개발업체 대표의 제보로 시작된다고 덧붙이는 임상진의 말을 시작으로 영화의 막이 본격적으로 오른다.
이제 관객들이 ‘댓글부대’를 음미하는 방법에 관해 말해 보려고 한다. 영화가 짜여 있는 방식을 살펴볼 때 그 매력을 더 음미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결론부터 짚어보자. 결국 관객들은 댓글부대의 모든 이야기가 결국은 해직 처분을 받은 전직 기자 임상진이 한 커뮤니티에 올린 ‘취재썰’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말에 이르러 임상진은 “내 기사를 받아주는 곳은 아무 곳도 없었지만 이제는 상관없다”며 “나는 온라인 여론 조작의 역사와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내 기사에 담았다”고 털어놓으며 한 PC방에서 ‘전직 기자가 직접 쓴 취재썰’이라는 제목의 글을 업로드한다.
■ 진실과 거짓,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관객들은 영화 내내 신문사 기자로서의 임상진을 계속해서 봐 왔지만 그가 사실은 망상증 환자에 PC방을 들락거리며 늘상 커뮤니티에 상주하는 백수일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결국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분간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인다. 감독이 영화 댓글부대에서 다루는 지점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여론 조작에 가담했던 댓글부대 ‘팀 알렙’의 멤버 중 한 명인 찻탓캇(닉네임·본명 이영준)은 임상진에게 완벽한 거짓을 말했던 걸까? 임상진이 찻탓캇에게 속았다고 여긴 뒤 복잡한 심경을 부여잡으며 혼자서 읊조리는 대사를 떠올려 보자. “완전한 진실보다 거짓이 섞인 진실이 더 진짜 같다. 완전한 거짓엔 진실이 없지만, ‘거짓에 진실을 섞었다’는 말은 진실에 거짓을 섞었다는 말이고, 완전한 거짓이 아니라면 진실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것들이 완전히 거짓은 아니라는 소리다.”(극 중 임상진의 내레이션)
이후 임상진은 회사에서 해고당한 뒤 2년간 물밑에서 취재를 이어간다. 수소문 끝에 음지에 숨어 지내는 내부고발자인 만전의 전 직원을 만난다. 그가 바로 만전 내에 여론전담팀이 있다는 사실을 인터넷에 폭로했던 사람인데, 그 제보자는 “제 기사가 어디까지가 진짜였는데요”라고 묻는 임상진에게 “거기 나온 내용 전부 가짜입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 말을 듣는 임상진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임상진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때 재밌는 점은 과연 이 제보자의 말조차도 우리가 완전히 믿을 수 있느냐는 것. 이 제보자가 찻탓캇에 관해 말하는 내용 역시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 확언할 수 없지 않은가. 이는 임상진에게도, 또 관객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임상진도, 관객들도 과연 진실과 거짓을 어떤 잣대로 구분하고 수용해야 하는 것인가?
결국 대기업의 여론조작 실체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여론조작으로 누군가가 자살하거나 개봉작의 흥행에 영향을 주는 사건이 터진 게 댓글부대의 작업 때문이라는 사실도 증명되지 않았다. 결국 관객들이 접한 모든 정보에 대한 진위가 도마에 오른다. 그렇지만 이들을 제대로 검증할 방법은 없다. 믿을지, 믿지 않을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결국 영화 댓글부대는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되묻는다. ‘무엇을 어떻게 믿을지 알아서 판단할 수 있겠느냐’고 말이다.
■ 관객이 있어야 성립되는 영화 ‘댓글부대’
결국 댓글부대라는 영화는 이를 감상하는 관객들, 즉 수용자가 없으면 존재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작품이 된다. 댓글부대에 관해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단순히 작품 안에서만 머무를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자. 작품뿐만 아니라 작품을 음미하는 수용자들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해야 영화의 가치를 곱씹어볼 수 있다.
영화는 ‘밈’, ‘가십’ 등 온라인 환경을 구성하는 콘텐츠 수용과 생산의 구조를 품고 있다. 여기서의 핵심은 바로 이 같은 정보를 향유할 수 있는 ‘수용자’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정보를 접하고 판단하는 주체가 없으면 콘텐츠는 존재할 이유가 없지 않나. 그러니 진실이든 거짓이든 무엇이 됐든 끊임없는 재생산과 재소환 구조가 유지되기 위해선 관객들인 우리가 필요한 셈이다.
다시 영화를 둘러싼 구조를 살펴보자. 영화가 결말에 이르러 어떤 노선을 택하고 있나? 영화는 스스로가 영화라는 작품의 틀에 갇히는 길을 포기한다. 그 대신 밈, 루머, 가십의 총집합체로 변모하는 과정 그 자체가 되려고 한다. 결국 임상진이 겪은 이 모든 일이 완벽한 허구로만 구성된 한낱 ‘구라’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선택한 그 결말은 또 하나의 댓글부대를 만들어낼 테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구조가 반복될 테다. 러닝타임이 종료된 이후가 더 존재감을 강하게 남기는 작품들이 있다. 댓글부대 역시 그렇다. 영화가 상영되는 도중이 아닌, 영화가 끝난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우리들의 현실에서 댓글부대를 찾아낼 수 있을까? 그들은 정말 존재할까?
송상호 기자 ssh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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