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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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30일 고중석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8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96년 2월16일 헌재는 재판관 4(합헌) 대 5(위헌) 의견으로 5·18 특별법을 합헌으로 결정한다.
위헌 의견이 더 많았지만 합헌이 선고된 것은 위헌 결정에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헌재가 이 법률에 합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라는 논리는 완전히 무너지고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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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30일 고중석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8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여러 언론 매체가 고인이 1996년 사형제도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사건에서 합헌 의견을 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부고 기사를 작성했다. 그런데 고인이 재판관으로서 관여한 사안들 가운데 사회적 파장이 정말 컸던 것은 따로 있다. 바로 김영삼(YS)정부 시절인 1995년 12월 제정된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5·18 특별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제기된 위헌법률심판 제청이다. YS가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며 직접 여당에 지시해 만들어진 법률인 만큼 이게 위헌 결정을 받으면 정권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특정인들의 형사처벌을 위해 국가가 임의로 공소시효를 늘린다? 법조인들, 심지어 판사들조차 ‘헌법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법원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고 12·12 가담자 일부가 헌법소원을 내면서 결국 헌재가 합헌인지 위헌인지 심사에 돌입했다. 1996년 2월16일 헌재는 재판관 4(합헌) 대 5(위헌) 의견으로 5·18 특별법을 합헌으로 결정한다. 위헌 의견이 더 많았지만 합헌이 선고된 것은 위헌 결정에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위에 소개한 고중석 재판관은 위헌 의견을 냈다. 전남 담양 출신으로 호남의 명문 광주고를 나온 그가 5·18 특별법을 반대한 것은 뜻밖의 일로 받아들여져 화제가 됐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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