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간 뉴스 녹화해 7만개 테이프 남긴 ‘진실의 이면 기록자’
매리언 스토크스
1979년 ‘미 언론, 이란 악마화’ 의심
TV뉴스 6시간 단위 비디오테이프에
모두 7만개…아파트 9채를 창고로
‘미디어 하나만 맹신 말라’는 교훈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칼럼의 제목은 ‘낯선 사람’이다. 그 제목을 충실히 이행했던가. 아닌 것 같다. 낯선 사람이라고 가끔 태만하게 내민 인물은 어떤 사람에게는 익숙한 사람이었다. 나도 잘 알고 있다. 세상에는 낯선 사람이 참 많지만 모두에게 낯선 사람은 의외로 잘 없다. 인터넷의 넘치는 정보는 정보의 독점을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사람이라면 이미 아는 사람이 꽤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 정말 낯선 사람을 하나쯤 내밀어야 한다. 적어도 한국어 검색에서는 걸리지 않는 인물 말이다.
그러니까 모든 건 정보다. 정보를 얼마나 보유했느냐가 당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인터넷에는 모든 정보가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여전히 많은 중요한 정보는 현실의 아카이브에 존재한다. 아직 모든 티브이(TV) 프로그램과 영화가 디지털화된 것은 아니다. 중요한 클립들은 일부 인터넷에 올라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원하는 날짜의 원하는 프로그램을 보려면 여전히 현실의 아카이브에 물리적으로 저장된 매체들을 뒤져야 한다. 언젠가는 모든 정보가 인터넷에 올라오지 않겠냐고? 여기에 다른 함정이 있다. 인터넷에 저장된 정보는 언젠가는 지워진다. 어제까지 있던 당신의 최애작이 오늘부터 넷플릭스에서 저작권 만기와 함께 사라지는 경험처럼 말이다.
미국의 돈 많은 공산주의자
물론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끊임없이 특정 정보들을 수집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수집가들은 결국 역사의 기록자가 된다. 이를테면, 내 부산 부모님 댁에는 아직도 내가 엠티브이(MTV)에서 녹화한 뮤직비디오 테이프 더미가 있다. 그것도 일종의 기록이다. 물론 그 정도는 우리 모두가 조금씩은 갖고 있는 기록 강박의 일종일 것이다. 그것보다 더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매리언 스토크스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이 이름을 알고 있다면 당신은 더는 ‘낯선 사람’이라는 칼럼을 읽지 않으셔도 괜찮다. 당신에게는 낯선 사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매리언 스토크스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그를 규정하는 몇가지 단어가 있다. ‘티브이 프로듀서’ ‘도서관 사서’ ‘소셜 액티비스트’ ‘기록자’다. 매리언 스토크스는 1929년 상당히 부유한 부모님 아래 태어났다. 그 외의 삶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알려진 바로 매리언 스토크스는 미디어 분야 일을 했다. 1967년과 1969년 사이 자신이 살던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남편과 함께 ‘사회적 정의’를 주제로 하는 일요일 아침 티브이 쇼를 제작한 경력도 있다. 이 여성의 삶에서 중요한 건 그 시기가 아니다. 은퇴하고 필라델피아의 커다란 아파트에서 남편·아이들과 살던 스토크스가 일종의 계시를 받은 순간 이후가 중요하다.
스토크스는 1980년 어느 날 티브이 뉴스에 사로잡혔다.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 한창이었다. 그는 자신이 보고 있는 모든 방송사 뉴스가 진실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리언 스토크스는 사실 공산주의자였다. 물론 그 시절 미국 공산주의자들은 행동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이상적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이상적 공산주의자 스토크스의 눈에 미국 뉴스들은 거슬렸다. 스토크스는 미국 뉴스가 이란 혁명주의자들을 지나치게 악마화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시기가 좋았다. 비디오테이프가 발명된 시기다. 시엔엔(CNN)과 같은 공격적인 24시간 보도채널들이 생기던 시기다. 스토크스는 그 모든 뉴스를 비디오로 녹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기록을 해둬야 진실이 무엇인지도 기록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스토크스와 가족의 삶은 브이에이치에스(VHS) 테이프로 티브이를 기록하는 행위를 중심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가족뿐 아니라 도우미까지 고용
스토크스 가족은 매일 6시간마다 한번씩 테이프를 갈아야 했다. 약속이나 가족 외식 시간도 그 시간에 따라 계획했다. 세월은 흐르고 가족도 변한다. 다 큰 아이들은 집을 나가야 한다. 남편과도 작별을 할 시간이 온다. 스토크스는 멈추지 않았다. 홀로 살며 몸이 불편해지자 그는 도우미를 고용해 모든 것을 기록해 나갔다. 그렇게 기록된 아카이브를 보관하기 위해 그는 같은 건물 아파트를 아홉채 더 구입해 창고로 썼다. 거기에는 모두 7만여개의 브이에이치에스와 베타 비디오테이프가 있었다. 매리언 스토크스는 2012년 12월에 83살 나이로 죽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어떤 사람이 평생 모았던 진귀한 수집품 같은 것은 꼭 그 사람이 사망한 이후에나 알려지게 마련이다. 매리언 스토크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매리언 스토크스는 죽으면서 유일한 아들인 마이클 메텔리츠에게 유언을 남겼다. 원한다면 자신이 평생 기록한 테이프를 어딘가에 기부해도 좋다는 말이었다. 다행히 아들은 어머니가 원했을 결정을 했다. 스토크스의 모든 기록을 캘리포니아에 있는 비영리 단체에 보낸 것이다. 그 단체는 7만여개에 달하는 비디오테이프를 디지털화기 시작했다. 아들은 말했다. “어머니가 기록을 시작하면서 생각했을 일이 현실이 되어서 기쁩니다.” 매리언 스토크스가 기록을 시작하면서 생각했던 것은 하나였다. 미디어 종사자이자 소셜 액티비스트로서 미디어가 보여주지 않는 진실을 미디어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사명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그야말로 강박적 수집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액티비즘이었던 것이다.
매리언 스토크스가 처음 기록하기 시작한 건 뉴스 프로그램들이었다. 폭스, 엠에스엔비시(MSNBC), 시엔엔, 시엔비시(CNBC) 같은 주요 뉴스채널이었다. 그 사명에는 정말이지 충실했다. 매리언 스토크스가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기록이 2012년 ‘샌디훅 총기 난사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뉴스만 기록한 건 아니었다. 그는 ‘코스비 가족’, ‘스타 트렉’, ‘오프라 윈프리 쇼’, ‘투데이 쇼’ 등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거나 자신이 즐겨 보던 프로그램도 기록했다. 아니 잠깐. 어차피 방송국들이 알아서 다 기록해놓지 않았겠냐고? 여러분은 그 시절 방송국들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모두가 모든 것을 기록해놓는 것 같겠지만 실은 모두가 모든 것을 기록해놓지는 않는다. 아날로그 시대라는 게 그랬다. 어디에나 사라질 구멍이라는 것이 있었다. 매리언 스토크스에게는 구멍이 없었다. 모든 것을 강박적으로 기록하고 녹화하고 수집하는 사람에게는 구멍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사실 나도 그런 강박이 있다. 뉴진스 앨범과 관련 상품이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강박 말이다. 그래서 지금 웃돈을 주고 티셔츠 한벌을 구입할까 고민 중이다. 어쨌든 모든 사람에게는 강박이라는 게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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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앵글이 존재하는 뉴스
아니다. 나는 이 글을 매리언 스토크스에게 바치는 무조건적 찬양으로 끝낼 생각은 없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매리언 스토크스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분명 강박증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비디오테이프뿐만 아니라 반세기에 걸쳐 종이 신문도 모았다. 책도 4만권 정도를 남겼다. 그것만 남긴 것도 아니다. 그는 장난감과 인형의 집을 모은 방대한 컬렉션도 남겼다. 사실 그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 부유함이다. 돈이 많았기 때문에 자신의 기록 강박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니다. 나는 경제적 부유함을 비판할 생각이 전혀 없다. 가끔 누군가의 사후에 세상에 나오는 수많은 값진 예술품들은 그들이 돈의 힘으로 열심히 소유(=기록)해둔 덕에 빛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부자가 할 수 있는 위대한 일 중 하나가 수집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매리언 스토크스는 아파트 아홉채를 더 사서 창고로 썼다. 자신의 부동산을 돈 안 되는 수집에 투자하는 사람은, 그렇다. 진심이다.
매리언 스토크스가 여전히 주는 분명한 교훈은 있다. 미디어를 온전히 믿지는 말라는 교훈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미디어만 온전히 믿지는 말라는 교훈이다. 뉴스에는 수많은 앵글이 존재한다. 카메라의 앵글만으로도 뉴스는 이야기를 하나의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 매리언 스토크스는 미디어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미디어를 기록했다. 각자가 말하는 진실을 규합해서 다시 본다면 진실 이면의 진실이 보일 거라 믿었다. 그의 아카이브를 디지털화하는 프로젝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워낙 방대한 나머지 몇년의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매리언 스토크스는 1980년의 어느 날부터 기록한 20여년의 진실을 남겼다. 아니 잠깐, 매리언 스토크스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미디어를 기록한 것도 아닌데 그게 진실이냐고? 그 질문은 아카이브가 디지털화된 이후 철학자들 몫으로 남기도록 하자. 어쨌든 강박은 위대하다.
문화평론가
영화 잡지 ‘씨네21’ 기자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했다. 사람·영화·도시·옷·물건·정치까지 관심 닿지 않는 곳이 드문 그가 세심한 눈길로 읽어낸 인물평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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