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원전, 고배 끝에 본산지 유럽 수출까지…기술력에 '진정성' 얹다
UAE 바라카 이후로 기회 있었지만 15년만
체코와 생태계 구축…유럽진출 교두보될까
[세종=뉴시스]이승주 기자 = "이겼다고 확신할 수 있는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끝까지 신뢰를 주기 위해 진정성을 다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체코 산업부 모 회의에서 '한국인 참 대단하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들었다. 비로소 '이제 조금씩 마음을 사는구나' 싶었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지난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체코 원전 관련 브리핑에서 기억 남는 에피소드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탈원전' 딛고 원전 강국 제치려면…기술경쟁력에 '진정성' 필요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전쟁 등 안보 상의 이유로 중도 포기하고, 또 다른 강국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입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중도 탈락하면서 수주 기대감이 커졌다. 결국 팀코리아와 프랑스 EDF의 2파전으로 압축됐다.
기술력과 '유럽 동맹'이란 강점을 지닌 프랑스를 상대하려면, 실력은 물론이고 플러스 알파가 필요했다. 팀코리아는 경쟁력에 '신뢰'를 얹기로 했다.
황 사장은 "체코 산업부 고위직에게 상황을 설명하러 가던 때였다. 갑자기 체코 측에서 오전 7시에 회의가 잡혔다며 6시반 밖에 시간이 안 되니 그 때 와 달라고 급히 통보했다. 우리는 상관 없었다. 이미 그보다 더 이른 5시 반부터 가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일화가 체코 정부 내부에서 오갔다는 얘기를 듣고, 아 이제 저들이 우리를 믿는구나 싶었다"라며 회상했다.
정부와 현지에 진출한 기업까지 총력을 다했다.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우려하던 체코 측을 설득해야 했다.
안 장관은 "다른 사업과 달리 원전은 착공부터 가동까지 약 35년이 걸린다. 세대를 건너뛸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리다 보니, 우리 정부의 원전 정책이 꾸준하다는 신뢰를 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며 "앞서 탈원전을 추진한 것 때문에 정책의 안정성 측면에서 우려가 있었다"고 전했다.
UAE 바라카 이후 기회 있었지만…15년 만에 쾌거
이 외에도 기회는 있었다. 앞서 한전은 2008년 한국형 원전의 첫 수출 가능성으로 기대를 모은 튀르키예 원전 입찰을 검토했다. 당시 한전은 튀르키예 최대 건설사 엔카(ENKA)그룹과 컨소시엄을 이뤄 입찰을 준비했지만, 입찰 조건이 까다로워 사업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해 입찰을 포기했다. 이 사업은 일본 기업 히타치가 따냈지만, 2018년 말 건설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철수한다.
한수원도 지난 2013년 2월 핀란드의 올킬루오토 4호기 건설 사업에 입찰서를 제출했다. 당시 한수원이 유력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이듬해 핀란드가 사업을 접으면서 무산됐다.
지난 2022년에는 폴란드와 '퐁트누프 원전 프로젝트'에 협력하기 위한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했다. 하지만 전례 없는 민간 발주 사업으로 진행되면서 예상보다 지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 장관은 "타당성 조사 관련 협의 중"이라며 "정부가 바뀌면서 발생한 여러 논란 관련 협의 중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영국·핀란드·스웨덴까지…체코, 유럽 진출 교두보될까
한전은 영국이 지난 1월 발표한 원전 용량 확대정책과 관련해 협력안을 논의 중이다. 이를 위해 영국 원전산업 대표단은 지난 6월 방한했다.
튀르키예와는 지난해 1월 원전 사업에 예비제안서를 제출했다.
산업부는 이번 체코 사업에서 계약 전인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된 것이지만, 다른 유럽 시장 진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안 장관은 "체코와 기술 분야에서 협력하며 제3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안을 협의했다"며 "체코가 개방형 경제와 제조업 기반으로 (원전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만큼, 이번 수주가 향후 잠재력이 큰 유럽 시장에 진출하는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joo4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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