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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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더듬이는 뉴스가 아니라 그 취재 방법과 보도 형식에 주로 감응한다.
"답은 '아니다'이다. 그리고 다른 이(트럼프)에게도 똑같이 질문해주길 바란다." 이날 50여 개의 질문 가운데 바이든의 건강에 관한 질문만 40여 개였다.
그들도 질문하지 못했다.
질문의 권리를 모르고, 질문의 책무를 놓아버린 기자들은 그 희생자이자 가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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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의견]
[미디어오늘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나의 더듬이는 뉴스가 아니라 그 취재 방법과 보도 형식에 주로 감응한다. 지난 일요일에도 그랬다. 트럼프 피격 뉴스엔 심드렁했으나, 간만에 살펴본 백악관 브리핑 기록엔 탄복했다. 영화 같은 일이 유세 현장에서 발생했지만, 정작 내 마음이 가닿은 정치 영화는 브리핑 녹취록에서 전개됐다.
7월2일 오후, 캐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인사했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방송 토론 이후 대변인이 브리핑에 나선 첫 자리였다. 58분에 걸친 문답 기록에 이런 질문이 적혀 있다. “'예, 아니오'의 답이 미국인에게 필요하다. 81세인 바이든 대통령은 알츠하이머 또는 치매 또는 퇴행성 질병을 앓고 있는가? 만일 당신이 모른다면, 대통령 최고위 보좌진으로서 '예, 아니오'로 답하지 못하는 이유도 말해달라.”
대변인이 말했다. “답은 '아니다'이다. 그리고 다른 이(트럼프)에게도 똑같이 질문해주길 바란다.” 이날 50여 개의 질문 가운데 바이든의 건강에 관한 질문만 40여 개였다. “토론 전에 무슨 약을 먹었나?” “대통령이 의사에게 마지막으로 진찰받은 게 언제였나?” “대통령의 건강을 입증할 최신 의료 기록을 왜 공개하지 않나?” “지금 당장 대통령이 여기 와서 자신의 건강을 입증할 수 없나?”
기자들은 주저 없이 물었다. 꼬리에 꼬리를 달아 물었다. 질문마다 구체 근거를 요구했다. 대변인은 막지 않았고 피하지 않았다. 기자들의 질문은 200자 원고지 50여 장 분량인데, 대변인의 대답은 140여 장 분량이다. 백악관은 이를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했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한국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가면 알 수 있다. 거기엔 발표·홍보 자료만 있다. 기자들이 열심히 일하는 현장을 미국인은 매일 투명하게 확인한다. 한국인에겐 그럴 방법이 없다. 기자들이 무엇을 대통령과 대변인에게 묻는지 알 수 없다. 그 답변은 더욱 알 수 없다.
19세기 중반까지 영미 언론의 기자도 그랬다. 그들도 질문하지 못했다. 원래 질문은 권력이었다. 아무나 질문하는 게 아니었다. 마녀인지 질문할 권력은 교황에게 있었고, 반란을 꾀했는지 질문할 권력은 왕에게 있었다. 백성은 궁금한 것을 묻지 못했다. 민주주의 초창기에도 질문은 권력자에게만 허용됐다. '출입기자' 관행이 처음 만들어진 영국 의사당에서 기자들은 조용히 구석에 앉아 보이고 들리는 것만 보도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질문은 권리가 됐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공적인 일을 물을 수 있게 됐다. 시민의 질문에 답하는 게 경찰, 의원, 대통령의 의무라는 생각이 문화와 제도로 자리 잡았다. 다만 그 권리를 시민이 항상 누릴 순 없었다. 소수의 독점적 권력을 모두의 권리로 확산하려면, 이를 지속적으로 전담·대행할 이가 필요했다. 질문은 기자의 책무가 됐다.
이때부터 질문은 기자의 취재 도구가 됐고 뒤이어 인터뷰의 방법으로 진화했다. 인터뷰의 기원에 질문의 권력 또는 권리가 있는 것이다. 물론 질문만으로 인터뷰를 완성할 순 없다. 인터뷰의 출발은 질문이지만, 목적은 답을 얻는 데 있다. 질문하지 않는 기자는 책무를 방기하는 자이고, 답엔 관심 없이 질문 행위에 도취하는 기자는 권리를 남용하는 자이다.
대답을 끌어내는 좋은 질문이 궁금한 이들에게 백악관 홈페이지 '브리핑룸'의 일독을 권한다. 영화 대본을 읽는 마음으로 질문들을 낭독해보면, 민주주의에 복무하는 기자의 자긍심을 (대리) 체험할 수 있다. 질문은 소수의 권력이었고 이제 모든 이의 권리이며, 무엇보다 기자의 책무인데, 이를 탁월하게 수행하는 바다 건너 동료로부터 배울 수 있다 (관련 홈페이지 : 백악관 브리핑룸).
그러다 문득 스스로 돌아볼 것이다. 질문할 엄두도 못내고 노트북에 머리 박은 채 자판만 두들긴 하루가 떠오를 것이다. '질의-응답' 없는 기자회견에 길들여진 몇 년 동안, 취재 방법의 기본인 인터뷰의 노하우조차 단련하지 못했음을 새삼 깨달을 것이다. 그것이 퇴행이다. 민주주의 퇴행의 주범은 질문의 퇴행이다. 질문의 권리를 모르고, 질문의 책무를 놓아버린 기자들은 그 희생자이자 가해자다. 누군가는 질문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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