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 해변으로 가요, 터치 마이 바디…‘여름 노래’ 또 있나요

한겨레 2024. 7. 2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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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 피디가 뽑은 여름 대표곡들. 위 왼쪽부터 1970년대 키보이스 ‘해변으로 가요’, 1980년대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 아래 왼쪽부터 1990년대 쿨 ‘해변의 여인’, 2000년대 인디고 ‘여름아 부탁해’, 2010년 이후 씨스타 ‘터치 마이 바디’. 각 음반사 제공

24년째 여름만 되면 비슷비슷한 신청곡을 받게 되는 라디오 피디(PD)로서, 꼭 한번쯤 해보고 싶었다. 여름 노래 총정리. 원양어선처럼 저 멀리 1970년대 바다까지 나가 노래를 건져 올리면서 세월의 해류를 거슬러 오늘의 항구에 도착할 생각이다.

미국에 비치보이스 ‘서핑 유에스에이’가 있다면 우리에겐 이 노래가 있다. 키보이스 ‘해변으로 가요’. 고풍스러운 전주가 끝나면 여름밤 별빛처럼 합창이 쏟아진다. 별이 쏟아지고 젊음이 넘치는 해변으로 가서 달콤한 사랑을 속삭여 달라는 가사는 너무나 직설적이어서 오히려 시적으로 들린다. 여름 노래의 고전이자 일종의 상징이 된 이 노래의 유일한 약점은 1950년대 일본 노래를 무단으로 번안했다는 것이다. 서울에도 초가집이 수두룩하고 강남은 아직 논밭이던 그 옛날, 저작권이라는 개념조차 희박하던 1970년의 일이었으나 사실관계는 알아두자. 디제이 디오씨가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1978년에 또 하나의 고전이 탄생한다. 이름부터 ‘해변 가요제’(TBC)로, 첫번째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여름’이다. “여름은 젊음의 계절이고 사랑의 계절”이라고 노래했던 한양대 혼성그룹 징검다리에는 왕영은이 있었다. 젊은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왕영은은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MBC)의 초대 뽀미 언니로 발탁되어 역대 최장 진행자라는 기록을 세운 1980년대 인기 방송인이었다. 웃프게도, ‘해변 가요제’는 1회만 치르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데 그 이유가 김빠진다. 2회부터 해변이 아닌 내륙에서 개최되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최고의 여름 노래로는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를 꼽아본다. 조용필 7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 앨범만으로도 너끈히 칼럼 하나 분량이 나올 만큼 걸작이다. ‘어제 오늘 그리고’ ‘미지의 세계’ ‘사랑하기 때문에’(당시 조용필 밴드에 들어왔던 유재하가 만들었고 나중에 자신의 데뷔 앨범 타이틀로 삼았다) 등 명곡들에 밀려 엘피(LP) 뒷면 제일 마지막에 실렸던 ‘여행을 떠나요’는 결국 이 앨범에서 가장 오래 사랑받는 히트곡이 되었다.

군부정권이 막을 내리고 어른들 눈치 안 보는 엑스(X)세대가 등장한 1990년대는 여름 노래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왔다. 듀스 ‘여름 안에서’, 디제이 디오씨 ‘여름 이야기’, 클론 ‘도시 탈출’, 포지션 ‘썸머타임’, 유피 ‘바다’, 신화 ‘으쌰 으쌰’, 디바 ‘왜 불러’ 등 이 지면에 다 언급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1970~80년대는 물론이고 21세기 이후에 비해서도 터무니없이 낙관적이었던 1990년대의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시절엔 여름 내내 바다로 강으로 놀러 다녀도 잘 먹고 잘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환상을 깨뜨리기 전까진 말이다. 한 시간 내내 틀어도 모자랄 만큼 많은 1990년대 여름 노래 중 대표곡으로는 쿨의 ‘해변의 여인’을 꼽아본다. 그해 여름, 이 노래가 울려 퍼지던 해운대 바닷가 풍경은 정말이….

2000년대에는 여름 노래가 확 줄어든다. 지금까지 라디오에 신청이 들어오는 노래는 박명수의 ‘바다의 왕자’, 윤종신의 ‘팥빙수’, 유엔의 ‘파도’ 정도로 1990년대에 견줘 조촐하다. 그래도 이 노래만큼은 앞으로 고전의 반열에 오를 것 같다. 인디고의 ‘여름아 부탁해’. 워낙 유명한 노래이니 설명은 생략하고, 이 노래를 편곡했던 이정현에 대해선 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그는 1980년대에 1세대 교포 가수로 화려하게 등장했으나 최고 히트곡이 ‘여름아 부탁해’가 되어버린 왕년의 오빠다. 데뷔 앨범에 있던 ‘그 누구보다 더’는 꼭 한번 들어보시라. 80년대 노래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세련되었다. 후에 인디고가 다시 불러 앨범에 싣기도 했으나 원곡이 훨씬 더 낫다.

아이돌 그룹이 가요계의 대세가 된 2010년대 이후에도 여름을 겨냥한 노래들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산이와 레이나가 함께 부른 ‘한여름 밤의 꿀’, 에프엑스 ‘핫 서머’, 레드벨벳 ‘빨간 맛’ 등은 시간 지나도 사랑받는 여름 노래로 꼽을 만하다. 무엇보다 2010년대 여름 노래는 이 팀을 빼고 얘기할 수 없다. 1990년대 ‘쿨’처럼 여름이 팀의 이미지가 되어버린 씨스타. ‘러빙 유’ ‘셰이크 잇’ 등도 좋은데 ‘터치 마이 바디’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에 삽입되며 특별해졌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종수와 해미가 마주쳤던 후텁지근한 여름날과 정글 같은 서울의 거리가 떠오른다.

개인적으로 밀고 있으나 아직 뜨지 못한 여름 노래를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온앤오프의 ‘비 히어 나우’. 밤새 노래 부르고 함께 소리 지르고 춤추자고, 우리의 여름은 계속된다는 코러스를 듣고 있자면 기온이 2도쯤 시원해지는 기분이다.

이 정도 리스트라면 여름 노래 대표 주자들을 다 챙긴 걸까? 노력했지만 빠뜨린 노래들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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