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탐·인]'솟대 명장' 윤정귀 작가, 꿈과 희망의 안테나를 세우는 예술가(1편)
2022년 대한전통명장협회 '전통솟대명장'
인간의 소망과 신의 뜻을 양쪽 전달 메신저
팽목항 등 치유와 화합 필요한 곳 솟대 세워
[예·탐·인]'솟대 명장' 윤정귀 작가, 꿈과 희망의 안테나를 세우는 예술가(1편)
KBC는 기획시리즈로 [예·탐·인](예술을 탐한 인생)을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특집 기사는 동시대 예술가의 시각으로 바라본 인간과 삶, 세상의 이야기를 역사와 예술의 관점에서 따라갑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소통을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솟대 명장' 윤정귀 작가는 우리 전통문화인 솟대를 현대화한 작품을 창작하는 조각가입니다.
전남 함평군 함평군립미술관에서 지난 6월 27일부터 열리고 있는 '함평미술 특별기획전'에서 미술관 입구 야외 대형 작품들과 소품 등 20여 점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나무, 금속, 흙과 도자, 돌 등의 재료로 다양하게 실험했던 대표작들을 동시에 전시하는 자리입니다.
윤 작가는 2011년 함평군 해보면 모평마을에 작업실을 두고 작업해 왔습니다.
미술교사로 1988년 임용돼 서울과 광주 등에서 활동해 오다가 2022년 퇴직한 이후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윤 작가는 대한민국솟대작가협회의 사무국장과 회장을 역임한 솟대 전문가이자 작가입니다.
◇ 전세계적인 문화원형이자 미래 문화상품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고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의 기능을 가진 솟대와 솟대를 현대화하려는 조각 예술은 지금은 자주 접하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그런 솟대 조형을 평생 지속해 오면서 예술가로서 업적을 쌓은 이는 전국에 많지 않습니다.
윤 작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겪었습니다.
항쟁 기간이었던 5월 22일 광주기계공고 1학년 학생이던 윤 작가는 문흥동 작은집에 가다가 외곽을 경비하던 군인들에게 정조준 사격을 당해 총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피를 쏟으면서 풀썩 쓰러진 윤 작가를 시민들이 부축해 자전거와 시민군 지프차로, 전남대학교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게 됐습니다.
3발의 M16 총탄은 그의 왼손, 오른손을 관통했고, 비장을 헤집어 놓았다고 합니다.
11월까지 치료를 받아야 했고, 그 일로 1학년을 다시 다녀야 했습니다.
당시 기계과 학생이었던 윤 작가의 꿈은 공대에 진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5·18에서 당한 총상은 청년 윤정귀의 몸에 총탄 흔적을 남겼고, 그는 평생 노동력의 30%를 잃어버린 장애인이 되는 비운을 맞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5·18 부상자 7급 판정과 함께 손의 감각을 일부 잃게 되었습니다.
누구에 의해 어떤 경위로 총탄이 발사됐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 1999년 광주에 정착하며 민속현장 누벼
서울에서 근무한 뒤 1999년 광주로 내려왔습니다.
광주에서 교사생활을 하면서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의 생명의 숲에서 향토사학자인 강현구 선생을 만났습니다.
남도의 장승과 음식, 판소리와 숲 등 남도학에 달통한 강현구 선생을 만나서 활동하면서 민속 현장의 중요성을 깨게 되었습니다.
"솟대 문화는 전 세계적인 문화원형이지만 현대적으로 계승되지 못한 예술 형식이라 한번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 말이 결국 윤 작가의 작품 테마인 솟대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뭐든 만들기를 좋아하던 엔지니어의 꿈, 5·18의 상처, 미술교사, 조각가, 숲과 나무를 좋아하던 심성, 고 강현구 민속학자 등이 그를 솟대작가로 만든 키워드인 셈입니다.
광주 송정중, 치평중, 풍암고, 광주일고, 광주중, 선운중, 진도 군내중을 거치며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면서 전국의 솟대를 답사하고 솟대 연구 논문을 찾아 공부하고 강연과 체험 교육을 했습니다.
◇ 세월호 참사 기려 팽목항에 '진실 솟대' 세워
윤 작가는 2014년 세월호 참사 200일을 기려 팽목항에 대형 솟대 다섯 주를 세우고 '진실 솟대'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2015년에 팽목항에 새로운 분향소가 생겼을 때도 아직 차가운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 실종자 9명이 있었습니다.
윤 작가는 팽목항 입구에 실종자 9명의 귀환을 바라는 솟대를 다시 세우고 '희망 솟대'로 불렀습니다.
소복처럼 하얀 9마리 새가 노란 희망의 띠를 목도리처럼 목에 두른 모습이었습니다.
절망과 회의의 시대에 평화와 치유와 화합의 가치가 필요한 곳에 윤 작가의 솟대가 세워졌습니다.
솟대는 '꿈과 희망의 안테나'입니다.
그래서 윤 작가는 '꿈의 안테나'를 세우는 '희망의 예술 메신저'이기도 합니다.
윤 작가는 생나무보다 병들거나 죽어버린 소나무, 때죽나무 등으로 솟대를 만듭니다.
신간이라고 불리는 장대를 깎고 그 장대 위에 얹힐 나뭇가지를 깎고 마지막엔 새를 깎아 그 나뭇가지 위에 태우게 됩니다.
새는 오리, 물오리, 까마귀, 봉황이기도 하지만, 다만 신과 인간계를 넘나들면 인간계의 소망을 하늘로 날라주고, 신의 뜻을 인간계에 배달하는 일반명사로서 '새'이기도 합니다.
'솔대, 서낭대, 거릿대, 수살목, 소줏대, 표줏대'로 불리는 솟대는 어느 곳이든 희망이 깃들어야 할 곳의 중심이나 경계나 급소에 세웁니다.
소망, 희망, 꿈, 다산과 같은 단어가 새해에는 절절하기에 대보름날 많이 세웠습니다.
진또베기(솟대의 강원도 방안)의 전통은 긴 장대에 Y자 나뭇가지에 홀수의 새를 앉히고 나무, 점토, 쇠, 돌로 만듭니다.
마을의 풍년과 풍요와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상징입니다.
※ 이 기사는 2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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