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폭탄에 시름…“올 농사 접어야 하나”
딸기 모종 10만주 모두 침수
농협 지점·경제사업소 잠겨
파종 3년된 인삼밭도 피해
“피해복구 인력·비용 지원을”
또 폭우가 쏟아졌다. 10일 새벽 폭우로 물난리를 겪은 충남은 18일 또다시 물에 잠겼다. 경기 파주는 한때 시간당 100㎜가 넘는 극한호우로 물속에 갇혔고 연천·평택 등지에서도 농작물 피해가 잇따랐다. 극한호우는 1시간 누적강수량이 72㎜ 이상이거나, 50㎜ 이상이면서 3시간 누적강수량이 90㎜ 이상인 경우를 일컫는다. 수해지역 주민들은 사람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말 그대로 ‘극한’의 상황에 놓였다. 충남 당진·서산, 파주·평택 등 수해지역을 찾아 피해를 본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16∼19일 동안 주택 침수는 455건, 농작물 침수규모는 1323㏊, 유실·매몰 피해규모는 16㏊(19일 오전 11시 기준) 발생했다.
“2년 전에 수해를 겪고 간신히 복구했는데 또 피해를 당하니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19일 찾은 충남 당진시 순성면 광천리 금송딸기농원(대표 조치형). 전날 쏟아진 물폭탄으로 농원은 엉망진창이었다. 토사로 뒤덮인 바닥은 진흙이 두껍게 쌓여 발이 푹푹 빠졌고, 베드 위에서 기르던 딸기 모종은 트레이에 담긴 채 바닥으로 떨어졌거나 뒤틀려 있었다. 양액 제조 장치나 보일러·상토·모터 등 농기자재도 모두 침수돼 어느 것 하나 성한 게 없었다.
조치형 대표는 “인근에 있는 남원천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물이 배수로로 빠지지 못하고 역류한 탓에 비닐하우스에 물이 가슴께까지 찼다”며 “9월10일쯤부터 판매하거나 직접 쓸 예정이던 딸기 모종 10만주가 모두 잠겨 손해가 막심하다”고 하소연했다.
이날 당진시농업기술센터 직원들이 긴급 투입돼 모종 트레이를 베드에 다시 올려놓는 작업을 도왔지만, 5시간가량 잠겨 있던 모종들이 이상 없이 자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는 “모종은 한번 침수되면 물속에 있는 균에 오염되기 십상인데, 소독약을 치겠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도순 당진 순성농협 조합장은 “시설을 복구하려면 인력 지원은 기본이고, 물을 퍼낼 양수기와 토사를 치울 세척기 등 장비 제공도 절실하다”고 밝혔다.
18일 당진·서산·태안 등 충남 서북부지역에는 170㎜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대전지방기상청에 따르면 18일 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내린 비의 양은 당진 176㎜, 서산 152.5㎜, 태안 102㎜ 등에 달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퍼부은 비로 일부 하천이 범람하고 학교와 시장이 잠기는 재난이 잇따랐다. 비닐하우스 침수 등으로 농업 피해도 컸다. 당진농협 중앙지점과 순성농협 경제사업소도 물이 들어차는 피해를 봤다.
서산시 운산면 거성리에서 인삼을 재배하는 박광현씨(50)도 인삼밭 9917㎡(3000평)이 물에 완전히 잠겨 한숨만 쉬고 있다. 폭우로 근처에 있는 도당천의 배수로가 역류해 피해규모를 키웠다. 물이 얼마나 거세게 들이닥쳤는지 밭에 있는 흙을 쓸고 지나가 땅속에 묻혀 있던 인삼이 죄다 모습을 드러낸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서산인삼농협(조합장 박종범)은 박씨뿐만 아니라 약 20농가가 지역에서 물난리를 겪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박씨는 “가장 깊게 잠겼을 땐 인삼밭 위에 설치한 차광막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며 “6시간가량이 지나서야 물이 빠져 이 밭에서의 농사는 끝났다”고 힘없이 말했다.
그는 이번 수해로 막심한 손해를 피할 수 없게 됐다. 파종 3년차인 이 밭에 그동안 투입한 비용이 1억5000만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밭을 복구하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 것으로 보여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농민들은 작물에 대한 보상은 고사하고 복구 비용이라도 지원해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박종범 조합장은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되지 않으면 자비로 복구해야 한다”며 “재난으로 실의에 빠진 농민들을 위해 복구 비용이라도 지원해주는 게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농작물재해보험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조합장은 “인삼농사는 한번 시작하면 5∼6년씩 이어지는데, 재해보험을 매년 갱신해야 해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농가의 실수로 가입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한번 가입하면 수확할 때까지 보험 효력이 이어지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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