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국정원과 '비전문적' 전문가…수미 테리 '미스테리'[한반도 리뷰]
대화 내용, 숨소리까지 파악…고급 식당 회식도 '지근거리' 촬영
명품 선물 등 혈세 들였지만 성과는 '의문'…가성비 낮은 외교
수미 테리의 전문성도 도마…"韓 정보요원 말을 메아리처럼 따라 써"
한국계 대북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미국 검찰에 의해 기소되면서 우리 정부의 해외첩보 및 공공외교의 허술한 단면이 낱낱이 드러났다.
미국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테리 연구원은 우리 정부 요원에게 고급 선물과 금품, 식사 제공을 받은 대가로 우리 정부를 위해 활동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익을 최우선하는 정보기관이나 외교관이 해외 부임지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낯 뜨거울 만큼 허접한 행적…FBI 감시망에 보란 듯 노출 '망신살'
워싱턴 주재 국정원 요원들은 2020년 8월 테리 연구원에게 선물할 3450 달러(479만원)짜리 명품 핸드백을 사거나 고급 식당에서 식사하는 장면 등을 현지 감시망에 보란 듯이 노출했다.
2022년 6월에는 테리 연구원이 참석한 미 국무부 비공개 회의 내용을 전달 받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엉성한 방식 탓인지 쉽게 들통 났다.
국정원 요원은 주미대사관 차량 번호판이 버젓이 부착된 차량에 타고 테리 연구원을 기다렸고, 그로부터 넘겨받은 2쪽짜리 메모를 차 안에서 촬영했다.
공소장은 사진이 차내 인테리어와 테리의 핸드백을 배경으로 찍혔다고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국가 대표 정보기관으로서 굴욕적인 정보 참사였다.
사진이 범행 증거물로 제시된 것을 보면 국정원 요원이 외교관 특권에도 불구하고 조사를 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해당 사진을 테리 연구원이 갖고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정보위 간사)은 "FBI에 의해서 한국 정보관, 나아가 주미 한국 대사관, 외교관들의 핸드폰이 다 털렸다는 것일 수 있다"며 "중대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대화 내용 숨소리까지 파악…고급 식당 회식도 '지근거리' 촬영
주목할 곳은 그가 "(액체연료 방식은) 발사에 시간이 더 걸리고 이것은 미국의 감시, 그리고 어(uh), 심지어 선제…공격에 취약하다"고 밝힌 대목이다.
별 의미 없는 감탄사인 '어'나 띄어읽기(…)까지 생생하게 포착됐다는 점에서 이 대화가 녹음됐거나 도청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떤 경위에서든 정보기관의 은밀성은 커녕 최소한의 조심성도 없었다는 얘기다.
더구나 테리 연구원은 이미 2014년 국정원과 접촉한 혐의로 미 연방수사국(FBI) 조사를 받은 바 있다. 국정원으로선 더욱 주의가 필요했지만 결과적으로 망신살이 뻗히며 미국 내 운신의 폭만 좁아졌다.
명품 선물 등 혈세 들였지만 성과는 '의문'…가성비 낮은 외교
그렇다고 정부의 '대범한' 활동이 그리 만족스러운 결과를 낸 것도 아니었다.
테리 연구원은 2016년 12월 우리 외교관으로부터 차기 미 행정부 고위 관료로 유력시되는 인물과 우리 측 인사의 면담 주선을 부탁 받았지만 실패했다.
물론 그는 우리 정부 인사들이 미국 정부 및 비정부기구 인사들과 함께 참여하는 화상회의나 사교성 모임 등은 몇 차례 성사시켰다. 그 대가로 1만 달러 이상의 현금이 별도로 제공됐다.
또 우리 정부 입장을 홍보하는 독자투고나 기고문을 미국과 한국 언론에 게재하는 실적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성과를 위해 그 많은 혈세를 들여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정상적 경로로도 가능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가성비' 낮은 첩보‧외교였던 셈이다.
한 전직 외교관은 "(신분이 공개된) 화이트 요원들은 CIA(미 중앙정보국)를 상대하는 게 주 임무이고, 처신에 더 조심했어야 했다"며 "전체적으론 심각한 사건이지만 디테일 면에선 블랙코미디 요소도 있다"고 쓴 소리를 했다.
수미 테리의 전문성도 도마…"韓 정보요원 말을 메아리처럼 따라 써"
하지만 각종 명품을 거리낌 없이 선물 받은 도덕성은 차치하고라도, 전문가적 자질이 의심받고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그는 우리 정보요원이나 외교관이 요구하는 내용을 거의 그대로 반영해 맞춤형 기사나 기고문, 독자투고를 언론에 게재했다.
그는 지난해 3월 우리 외교관의 요청에 따라 '우리나라가 일본과 화해하는 담대한 행보에 나서다'라는 제목의 워싱턴포스트(WP) 독자칼럼을 게재했다. 그는 이후 "기사가 마음에 들었기를 바란다"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지난해 4월에는 또 다른 외교관에게서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의미를 국내 신문에 기고해주면 500달러를 주겠다는 요청을 받고 그대로 실행했다. 그는 "어떤 것을 써주기를 원하느냐(즉, 내 말은 기고문의 관점이 뭐냐는 것)"고 묻는 비전문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테리 연구원은 그저 '의뢰인'의 요구에 충실했다. 공소장은 한국 정보요원의 말을 '메아리처럼 따라 한 것'(echo)이라고 반복적으로 기술했다.
또 다른 전직 외교관은 "수미 테리가 미국에선 일개 연구원인데 대단한 사람인양 떠받든 측면이 있다"며 "아직도 그런 우리 정보망과 외교력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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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홍제표 기자 ent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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