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 정답은 없다 [한주를 여는 시]

하린 시인 2024. 7. 20.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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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의 ‘특별한 감정이 시가 되어’
장석주 시인의 ‘연애의 날들’
연애가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
행복과 불안, 황홀함과 허탈감
본질이 남은 연애 그리고 앞날들

연애의 날들

최근 내 연애는 슬픔으로 부양되었다. 연애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오줌발이 양변기에 떨어지는 소리, 새벽 문밖에 조간신문 떨어지는 소리, 후박나무 가지마다 새들 우짖는 소리, 앞치마를 두른 당신이 지켜보는 미역국 끓는 소리, 소리들이 강을 이룰 때 연애는 탄생의 욕조, 감정의 사치였다. 섣불리 연애를 하지 마라.

연애가 숭고를 그리워할 때 당신의 감정 세계 반경 너머에서 서성이던 외로움들, 자두가 익는 날씨들에 감탄하는 나뭇잎들의 수런거림, 당신의 미모와 누추한 행복의 날들은 눈물겹다. 엽기와 잔혹극으로 계절들이 망가질 때 상심한 마음들이 지천으로 피어난다. 서교 생활에 필요한 것은 담요와 갓구운 빵과 생수들, 그리고 우리에겐 어린 불행들을 돌볼 시간이 더 필요하다.

나는 돌아갈 수 없다.
옛날들이 새로 돌아오고 있었다.

장석주·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 데뷔· 시집 「꿈속에서 우는 사람」 등 다수· 편운문학상 등 수상장석주, 「시사사」, 2017년 5-6월호.

연애는 사랑보다 더 감각적인 단어다.[사진=펙셀]

필자에겐 '사랑'이란 말보다 '연애'라는 말이 더 피부에 와 닿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은 왠지 막연하고 추상적인 느낌을 주지만 연애는 실체적이고 감각적인 느낌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연애라는 말은 사랑보다 훨씬 더 직접적인 이미지를 풍부하게 갖고 있다. 그래서 실감할 수 있는 정서적 거리가 사랑보다 가깝다. 장석주 시인의 '연애의 날들'은 그러한 연애의 특성을 생생한 경험 맥락과 직관적 진술을 통해 단적으로 제시한 시다.

이 시에서 연애는 소리 감각으로 구체화해 나타난다. "오줌발이 양변기에 떨어지는 소리, 새벽 문밖에 조간신문 떨어지는 소리, 후박나무 가지마다 새들 우짖는 소리, 앞치마를 두른 당신이 지켜보는 미역국 끓는 소리" 같은 시각이 동반된 청각적 이미지들을 시의 앞부분에 배치해 연애가 갖는 기본 요소들이 매우 실체적 감각을 가지고 있음을 제시했다.

그런데 그렇게 실체적 "소리들이 강을" 이뤄 성사된 연애의 탄생을 회의하듯 "감정의 사치였다. 섣불리 연애를 하지 마라"고 곧바로 조언하듯 언술했다. 왜 그랬을까. 연애는 순간순간 행복함을 주는 동시에 불안을 안겨주고 황홀함을 주는 동시에 허탈과 심리적 고통을 상대적으로 안겨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니 차라리 연애를 안 하는 게 낫다라고 화자가 말한 것이다.

그런데도 연애를 하는 이유는 '감정의 사치'를 감내하고서라도 '홀림'이나 '끌림'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고 싶은 욕망이 더더욱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감당할 것을 예상하고 시작한 연애는 잘 이뤄질까.

그렇지 않다. 제대로 밀착돼서 연애가 이뤄지지 않으면, '숭고'만을 그리워하는 의식에 휩싸이면 '외로움'이란 병에 걸리고 만다. 그 외로움이 극에 달하면 어떻게 될까. "엽기와 잔혹극으로 계절들이 망가"지고 "상심한 마음들이 지천으로 피어"나는 결과를 낳는다.

분명 화자도 그런 아픈 과정을 거쳐 연애의 귀결점에 도달했고, 결과적 관점에서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고 있다. "최근 내 연애는 슬픔으로 부양됐다. 연애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란 표현에서 그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아픈 과정을 다 거치고 나서 남는 것은 연애의 본질이다.

연애의 '알몸'만 남은 상황에서는 연애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만 있어도 연애의 실천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화자는 "생활에 필요한 것은 담요와 갓 구운 빵과 생수들"과 "어린 불행들을 돌볼 시간"이라고 언술했다. 최소한의 생필품과 아주 작고 여린 '불행'을 돌볼 여유만 있다면 연애를 지속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진=펙셀]

화자는 이제 외로움으로 몸부림쳤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최소한의 조건만 있어도 가능해진 연애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옛날들이 새로 돌아오고 있었다"에서 '옛날'은 부정적인 의미의 '옛날'이 아니라 최초의 간절한 떨림을 제공해줬던 '옛날'인 셈이다.

연애에는 정답이 없다. 연애를 경험한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연애의 본질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연애를 하고 있는 순간에는 그 어떤 객관적인 이론이나 충고도 주관성을 뛰어넘지 못한다. 그저 두 사람 사이에 '연애의 날들'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장석주 시인이 시에서 말한 "최근 내 연애는 슬픔으로 부양됐다. 연애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는 단순히 후회의 감정이 아니라, '그럼에도 난 연애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란 주관적인 지각인 셈이다.

하린 시인 | 더스쿠프
poeth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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