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드랍 없이 지속가능한 코인은 없나[비트코인 A to Z]
6월은 굵직한 대형 크립토 프로젝트의 토큰 론칭이 있었다. 이더리움 레이어2 지케이싱크(zkSync)와 블라스트, 옴니체인 상호운용 프로토콜 레이어제로가 모두 자체 거버넌스 토큰을 론칭하며 주요 거래소에 상장했다.
토큰을 론칭하면 으레 발생하는 이벤트가 있는데 바로 에어드랍이다. 에어드랍이란 초기 프로토콜의 성장에 기여한 대가로 유저와 개발자 등에게 거버넌스 토큰을 보상하는 행태를 뜻한다. KPI를 올려야 하는 프로젝트 입장에서는 에어드랍으로 지출되는 토큰을 일종의 마케팅 비용으로 생각하고 전체 토큰 물량의 5~15% 수준으로 책정하는 편이다. 다만 한 번에 덤핑이 되는 것을 막고 충성도 높은 유저들에 대한 보상을 늘리기 위해 에어드랍을 시즌제로 운영하며 에어드랍 물량을 나눠서 분배하는 것이 최근 트렌드이다.
에어드랍, 충성도 높은 유저를 위한 보상
블라스트는 애초에 에어드랍을 예고했고 유동성 공급, 체인 내 상호작용 등을 통해 포인트를 쌓으면 이것이 향후 토큰으로 전환될 것이라 예고했기 때문에 에어드랍에 대해서는 별 노이즈가 없다.
하지만 zkSync와 레이어제로의 경우에는 프로젝트 차원에서 처음부터 에어드랍을 약속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참여자들이 예상했듯이 특정한 조건을 충족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에어드랍을 실시했다. 다만 에어드랍 적격 지갑 주소 유효성 검증 과정이 매우 엄격했기 때문에 에어드랍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에어드랍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집단행동을 하며 해당 프로젝트가 스캠이라며 비아냥거렸다.
이에 대해 솔라나 dex 주피터의 창업자는 다음과 같은 트윗을 남기며 일갈했다. “에어드랍은 선물입니다. 그것은 보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충성도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로스 해킹이 아닙니다. 그것은 선물입니다. 그것은 그저 간단합니다. 선물입니다. 선물을 주는 것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묻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선물이 아닙니다. 의미는 사라집니다. 선의도 끝납니다.”
이 사건 이후 업계 내 에어드랍의 지속가능성과 개선 방향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혹자는 에어드랍이 초기 프로토콜 성장에 기여한 대가로 당연히 받아야 할 보상이라고 하고, 누구는 에어드랍을 수령한 후 바로 덤핑하고 떠나는 충성도 낮은 유저에게는 에어드랍을 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기 때문에 한쪽 편만 들기는 어렵다. 초기 시장참여자들을 위해 선의와 재미로 시작된 에어드랍이 어떻게 이런 논란거리가 됐을까.
에어드랍은 어떻게 돈이 될까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어드랍의 역사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도 존재하기는 했지만 에어드랍이 크립토 업계에서 본격화된 계기는 2020년 ‘디파이 서머’ 즈음 유니스왑 에어드랍이었다.
당시 디파이 생태계에서 지배적인 dex로 자리 잡고 있던 유니스왑은 과거에 유니스왑을 사용한 유저들을 대상으로 400개의 UNI 토큰을 에어드랍으로 분배했다. UNI 토큰은 출시 이후 개당 가격이 40달러를 상회하며 에어드랍으로 받은 토큰의 가치가 1만6000달러(한화 2000만원 이상)에 육박한 적도 있다.
이때부터 에어드랍은 디파이 생태계뿐 아니라 레이어1, 2 인프라 등으로 확산되며 크립토 업계에서 일종의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에어드랍만으로 ‘억 소리’ 나는 수익을 거두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문제는 이처럼 에어드랍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에어드랍 공장, 봇이 생기며 에어드랍의 본래적 의미가 상당히 변질됐다는 것이다. 에어드랍의 원래 취지는 초기 프로토콜의 성장에 기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선물’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봇을 만들고 한 사람이 수십, 수백, 수천 개의 지갑 계정을 만들고 에어드랍을 준비하는 행위(이를테면 온체인 트랜잭션 찍기, 유동성 공급하기, 소셜 캠페인 참여하기 등)가 일상화되자 에어드랍의 의미가 왜곡되고 일반 유저보다는 봇을 만들고 복수의 지갑 계정을 소유한 에어드랍 공장에 더 많은 에어드랍 토큰이 분배되는 경우도 생겼다.
따라서 에어드랍을 고려하는 프로젝트 입장에서는 고민이 생겼다. 에어드랍 수익을 기대하는 고래와 공장을 아예 배제하면 초기 KPI (온체인 거래, 유저 수, TVL, 볼륨, 소셜 지표 등)가 생각만큼 안 나오고 에어드랍을 해준다고 하면 사람들의 기대감을 충족해주기 어렵다(대부분 줘도 욕 먹고 안 줘도 욕 먹는다).
게다가 나날이 진화하는 다계정 에어드랍 공장을 방지하는 데 불필요한 리소스가 소요된다. 따라서 에어드랍 적격 대상자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과거보다 훨씬 엄격한 기준을 앞세우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아예 펏지펭귄, 밀레이디, 매드래즈 등 특정 NFT를 보유하고 있는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에어드랍을 실시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유저의 입장에서도 불만이 많다. 과거에는 최소한의 자본과 노력만으로 괜찮은 수준의 에어드랍 수익을 올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시장이 성숙해지고 공장형 에어드랍이 활성화되면서 동일한 수준의 수익을 올리는 데 보다 많은 자본과 시간이 소요된다. 특히 이제는 예치 포인트 메타가 활성화되면서(크립토를 특정 프로토콜에 예치하면 금액과 시기에 비례해서 포인트를 분배하고 나중에 해당 프로토콜의 거버넌스 토큰이 론칭되면 포인트를 토큰으로 전환) 웬만큼 자본이 없는 일반 유저들은 에어드랍에서 재미를 보기 어려워졌다.
게다가 프로젝트 입장에서는 토큰을 론칭하고 에어드랍을 안 줘도 그만이기 때문에 유저 입장에서는 억울해도 어디 가서 따질 수가 없다. 과거에는 영민함과 부지런함만 있으면 에어드랍 수익만으로 밀리어네어가 되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그런 가능성이 거의 사라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에어드랍이 초기 성장에 기여한 대가로 받는 파트너 지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에어드랍 보상을 분배하는 방식에 있어서 단기적인 덤핑보다는 중장기적인 관점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에어드랍 시 토큰을 무상으로 분배하는 옵션보다는 특정 조건을 충족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아주 낮은 밸류에 토큰을 매수할 권리를 주거나 혹은 긴 시간에 걸친 베스팅을 통해 에어드랍을 선형적으로 분배하는 방식이다.
물론 업계 트렌드가 이렇게 바뀌면 당장은 유저들과 에어드랍 공장으로부터 불만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무분별하게 양산되는 에어드랍 봇·공장이 없어지고 진성 유저들에게 분배되는 에어드랍의 총 가치가 커질 수 있다면 결국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윈윈인 상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에어드랍에 대한 생각을 쓰다 보니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는 것 같다. 에어드랍의 방식과 적격성을 논하기에 앞서 애초에 이런 경제적 유인과 부트스트래핑 없이도 유저들이 지속적으로 쓸 만한 제품이 크립토 시장에서 나오기는 어려운 것일까. 이미 유용성을 입증한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은 OG 코인, 스테이블코인 등을 제외하고 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때 크립토는 ‘돈 넣고 돈 먹는 카지노’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한중섭 ‘어바웃 머니’, ‘비트코인 제국주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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