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 조정석의 코미디, 믿고 보는 이유 [N초점]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한 때 조정석은 '납뜩이'로 통했다. '건축학개론'(2012)에서 주인공인 어린 승민(이제훈 분)에게 뻔뻔하고 당찬 태도로 연애 강의를 펼쳤던 재수생 친구 '납뜩이'는 영화에서 조정석이 연기한 첫 번째 배역이었고, 그는 이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납뜩이'가 특별했던 이유는 캐릭터의 존재감에 있었다. 사실 '납뜩이'는 어느 영화에서나 볼 법한 '주인공의 친구' 캐릭터였고, 비중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조정석은 단 몇 장면에 등장함에도 불구, 능청스러운 연기력으로 웃음과 공감을 주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관객들은 조정석을 두고 여전히 '납뜩이'를 떠올리지만, 이제 그에게는 '납뜩이' 말고도 여러 캐릭터와 작품이 남았다. '더킹 투하츠'(2012)의 은시경, '오 나의 귀신님'(2015)의 강선우, '질투의 화신'(2016)의 이화신, '녹두꽃'(2019)의 백이강, '슬기로운 의사생활'(2020, 2021)의 이익준 등이 대표적이다. 영화의 경우 고르지 않은 흥행 성적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관상'(2013)의 팽헌과 '역린'(2014)의 을수,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의 영민, '형'(2016)의 고두식, '마약왕'(2018)의 김인구, '엑시트'(2019)의 용남 등이 관객들의 뇌리에 박혀있는 '조정석 표' 인물들이다.
이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조정석이 돋보였던 공간은 로맨틱 코미디나 코미디, 혹은 장르는 정극 드라마에 가까워도 캐릭터적으로 인간미가 있어 웃음을 주는 인물로 등장하는 곳들이었다. 특히 '엑시트'의 만년 취준생 용남과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유쾌한 천재 의사 익준은 조정석이 가장 잘 소화하는 캐릭터가 어떤 것인지 쉽게 알 수 있게 했다.
'엑시트'의 용남은 산악 동아리 에이스 출신이지만, 연이은 취업 실패로 눈칫밥을 먹던 인물이었다. 어머니의 칠순 잔치에서 가족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는 용남의 모습은 누구나 공감할만했다. 이후 그는 산악 동아리 에이스 출신으로서 '반전 실력'을 발휘해 사람들을 구하고 유독가스로 뒤덮인 도시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조정석은 잔뜩 졸아들어 있지만, 위기의 상황에서는 제 능력을 발휘, '페이소스'를 자아내는 이 취준생의 캐릭터를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흡인력 있는 연기로 표현해 냈다. 파트너인 임윤아와의 '케미'도 훌륭했다. 본격 로맨스는 아니었지만, 극한의 위기에서 함께 생존을 위해 협력하는 두 인물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설렘과 따듯함을 전달했다.
조정석은 인물에 대한 '연민'을 잘 표현하는 배우다. 그가 연기한 코미디, 드라마 장르 속 인물들은 표면적으로는 '고스펙'의 잘나가는 인물일 때가 많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예외 없이 그 인물들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갖게 되는데, 인물들 각각이 약점이라고 불러도 좋을 인간적인 면모들이 있고, 조정석이 이를 밉지 않게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신작인 '파일럿'에서도 조정석이 연기한 인물은 이중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 이번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파일럿 한정우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할 정도로 큰 인기를 구가하던 '간판 파일럿'에서 하루아침에 실직자 신세가 되는 캐릭터다.
조정석은 매사에 자신만만했던 한정우가 조금씩 나락으로 떨어져 가다 결국 '여장'을 택하고, 여자 파일럿으로서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제대로 연기했다. '파일럿'에서 그는 '원맨쇼'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농익은 연기를 보여주는데, 때에 맞는 적절한 대사와 상황에 잔뜩 몰입한 표정 연기가 일품이다. 더불어 상대 배우인 이주명, 한선화, 신승호 등과도 매력적인 앙상블을 완성해 낸다.
조정석이 생각하는 코미디 연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 그는 최근 진행한 인터뷰에서 "나는 상황이 웃겨야 한다, 상황적인 코미디가 재밌다, 말장난 개그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것은 안 웃긴 것 같다, 상황 속에서 일어난 자연스러운 코미디가 나는 제일 재밌다"고 말했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나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대화하고 어떤 상황을 만들어야 하고 그런 게 필요하다, 그런 게 쌓이다 보니까 긴 호흡을 가져가는, 그런 캐릭터가 완성되고 뭉쳐서 코미디가 극대화될 수 있었다, '건축학개론'의 납뜩이 때도 내가 아무리 앞에서 코미디를 한다고 해도 (이)제훈 씨의 리액션이 없었다면 코미디가 완성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아직도 한다, 결론적으로 앙상블"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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