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어스름 새벽에 실미도 향해 ‘풍덩’ [ESC]
“풍랑주의보만 아니면 입수 가능”
수영장 새벽반 회원들 ‘바수’ 특훈
거리 더 늘리고 두려움보다 설렘
코로나19로 3년 가까이 수영을 쉬다가 지난해 가을 인생 첫 철인3종 대회 출전을 한달 앞두고 벼락치기 훈련을 할 때의 일이다. 오랜만에 400m를 쉬지 않고 헤엄친 뒤 가빠진 숨을 고르고 있었다. 같은 레인에서 운동하던 이가 불쑥 말을 걸었다. “장거리 대회 준비하시나 봐요.” 내가 “철인3종 대회에 나가야 하는데 수영을 쉰 지 오래돼 감을 되찾고 있다”고 말하자 그가 물었다. “이번 주말에 동호회 회원들과 실미도로 바다 수영을 가는데, 같이 가실래요?”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실미도를, 이름도 모르는 낯선 사람과 함께 가도 괜찮을까. “주말 근무가 있다”고 거절한 뒤 ‘실미도’ 세 글자를 잊고 지냈다.
하나개해수욕장에서 3.5㎞
올해 6월 두번째 철인3종 대회 출전을 앞두고는 겨울부터 동네 수영장 새벽반에 주 2회 나가던 때였다. “인선씨, 이번 주말에 뭐 해요? 실미도로 ‘바수’(바다 수영의 줄임말) 안 갈래요?” 우리 반에서 수영 실력이 가장 좋아 항상 선두에 서는 ‘1번 회원’이 잊고 있던 실미도 이야기를 꺼냈다. 회원 몇몇이 7월 말 강원 동해에서 열리는 바다 수영대회에 나가기로 했는데, 주말에 실미도로 훈련을 가니 함께 가자는 거였다. 수개월간 새벽마다 함께 몸을 움직여 온 이들이니 따라가도 괜찮겠다 싶었다.
메신저 단체 대화방에 들어가자 1번 회원과 마찬가지로 바다 수영을 여러 번 해 본 4번 회원이 집합 장소와 시간, 준비물 등을 안내했다. “만조 시간이 오전 5시56분이니, 4시쯤 수영장에 모여 출발하면 5시반쯤 입수할 수 있겠네요. 체온 유지와 부력 확보를 위한 웻수트와 롱핀(긴 오리발), 수모, 수경, 안전부이를 꼭 챙기시고 안전부이 안에 물이나 음료수를 한 병 넣으시면 좋습니다.”
인천 무의도 하나개해수욕장에서 입수해 실미도를 반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 하나개로 복귀하는 7㎞ 코스와 하나개해수욕장에서 실미해수욕장까지 편도 5.5㎞ 코스, 실미해수욕장에서 출발해 실미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실미해수욕장으로 돌아오는 4㎞ 코스 등이 후보에 올랐다. 나를 비롯한 ‘바수 초짜’들의 의견이 반영돼, 하나개해수욕장에서 실미도가 바라보이는 중간 지점까지 갔다가 복귀하는 3.5㎞ 코스가 최종 채택됐다.
훈련 당일인 지난달 8일 새벽 3시, 잠에서 깨 창문을 열자 적지 않은 양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좀 무서웠는데 취소되겠지? 오히려 좋아’라고 생각하던 찰나, 바다 수영 경험이 많은 3번 회원이 “풍랑주의보가 없으면 입수할 수 있다”고 했다. 약속대로 동네 수영장 근처에서 다른 이들과 만나 차를 나눠 타고 입수 장소인 인천 무의도 하나개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해수욕장에 도착하자 새벽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아 사방이 어둑했다 . 잦아들긴 했지만 비도 계속 내렸다. 미리 입고 온 수영복 위에 웻수트를 입었다. 4번 회원이 “호흡할 때 수트에 목이 쓸려 까질 수 있으니 듬뿍 바르라 ”며 바셀린을 건넸다 . 물 속에서 서로를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밝은색 수모를 쓰고 , 바람을 채운 안전부이를 길게 매단 끈을 허리에 단단히 묶었다.
수영인들 사이에서 ㅁ브랜드의 ‘아반티 엑셀’은 ‘오리발 계의 샤넬’로 불린다. 제품 이름처럼 신으면 꼭 발에 모터를 단 것처럼 속도를 높여 준다. 대신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오리발의 무게가 다른 제품보다 무거워, 신고 오래 수영하면 발목에 부담을 준다. 두번째 철인3종 대회를 일주일 앞두고 발목 통증을 피하고 싶었던 나는, 맨발로도 오리발을 찬 것같이 빠른 속도를 내는 ‘고수’ 1·3번을 따라 오리발을 차지 않은 채 다리부터 천천히 바닷물에 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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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바수’ 언제 가나요?”
아직 차가운 바닷물에 고개를 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해가 아닌 서해여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물속 시야도 이전까지 오픈워터 훈련을 했던 한강보다 깨끗했다. 비도 어느새 그쳤다. “오늘 바다가 아주 장판(파도가 거의 없이 잔잔하다는 뜻)이네, 제가 앞장설 테니 멀리 떨어지지 말고 따라오세요!” 1번 회원의 외침에 따라 천천히 팔을 움직여 물살을 갈랐다. 3 ㎞가 넘는 거리를 1시간 넘게 이동해야 하는 만큼 발차기를 최소화하면서 체력을 아꼈다.
첫 1.5㎞는 실내 수영장에서와 비슷한 100m당 2분 안팎 속도로 신나게 물살을 탔다. 일행들은 오리발을 차지 않은 내가 중간중간 멈춰 서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게 기다리며 배려했다. 처음 정했던 반환점보다 조금 더 먼 거리까지 헤엄쳐 나아갔다. 안전부이를 붙잡고 물 위에 둥둥 떠 하늘을 올려다봤다. 온 세상에 나와 바다, 그리고 하늘만 남은 것 같았다. 해안가 쪽으로 방향을 틀어 다시 헤엄을 쳤다. 바다로 나올 땐 물살을 탔지만, 해안가로 돌아갈 땐 물살을 거슬러야 했다. 후반 2㎞가량은 속도가 100m당 2분30초가 넘게 걸렸다. 앞서간 다른 일행이 나를 기다려주는 빈도도 더 늘었다. 다음번엔 반드시 오리발을 착용하고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뭍으로 나오자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일주일 뒤 대회를 잘 마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대회를 마치고 2주 뒤인 지난달 23일, 수영장 사람들과 함께 하나개해수욕장을 다시 찾았다. 지난번보다 물때가 30분 당겨져 그만큼 서둘러 움직였다. 이번엔 오리발을 챙겨 신고 물에 들어갔다. 마음에 훨씬 여유가 생겼다. 덕분에 지난번보다 조금 더 멀리까지 헤엄쳐 갔다. 서울로 일찍 돌아가야 해 실미도를 찍고 돌아오는 건 또 한 번 다음으로 미뤘지만 아쉬움보다 설레는 기분이 더 컸다. 바다는 늘 제자리에 있으니까. 이 글을 쓰다 말고 1번 회원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다. “다음 ‘바수’는 언제 가나요?”
‘1번 회원’ 유회만씨의 안전한 바다 수영을 위한 체크리스트
1. 만조 시간, 풍속, 파고 등이 수영하기에 적합한지 미리 확인한다. 늦어도 만조 30분 전에는 입수해야 한다. 썰물이 되기 전 출수할 수 있도록 입수 시간과 수영 거리, 코스 등을 계획한다.
2. 반드시 바다 수영 경험이 많은 이와 함께하고, 2인 이상이 무리 지어 수영한다. 입수 전 모든 인원의 이름과 연락처 등 신상정보를 해경에 알리고, 출수 뒤에도 무사히 출수했다고 신고한다.
3. 심장마비, 근육 경련 등 예방을 위해 사전 준비운동을 철저히 하고 음주 수영을 하지 않는다. 1㎞에 한 번씩 제자리에 떠서 휴식하는 것이 좋다.
4. 어선, 레저보트 등 선박이 지나다니는 구간을 미리 파악한다.
5. 초보자는 해안선 200m 이내에서 수영하는 것이 좋다. 단, 파도가 높이 치는 경우 큰 바위, 방파제 등 구조물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한겨레신문 스포츠팀 기자. 일하지 않는 시간엔 요가와 달리기, 수영, 사이클, 케틀벨 등 각종 운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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