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식품안전청 “유전자 교정 작물, 인체에 무해”…규제 완화 청신호
유럽의회 규제 완화안 합의, 시행 작업 남아
일본은 교정 토마토 시판, 한국은 규제 회색지대
유럽식품안전청(EFSA)이 유전자 교정 작물(GEO)이 인체에 전혀 유해하지 않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유럽의회가 추진하는 유전자 교정 작물 규제 완화가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식품안전청은 지난 11일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서 “유전자 교정 작물의 안전성이 전통적인 육종 방식으로 만든 식물과 동등하다”고 밝혔다. 전통 육종은 오랜 시간에 걸쳐 같은 종의 식물을 대를 이어 교배해 원하는 특성을 가진 작물을 만드는 것이다. 유전자 교정도 같은 종 안에서 유전자를 수선해 원하는 특성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전통적 육종 기간을 단축했을 뿐이란 것이다.
이와 달리 유전자 변형 작물(GMO)은 다른 작물의 유전자를 삽입하거나, 심지어 곤충의 유전자를 식물에 넣는 식이어서 유전자 교정 작물과 전혀 다르다. 이를 테면 토양 미생물 유전자를 넣어 살충제 없이도 해충을 이기는 면화를 만든다.
유전자 교정은 효소 복합체인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로 한다. 실제 가위는 아니지만, DNA에서 원하는 유전자를 손쉽게 잘라내거나 편집할 수 있다. 덕분에 특정 영양분의 함유량을 높이거나 외부 환경 변화에 강한 작물을 개발하는 데 쓰인다.
앞서 지난 3월 프랑스 식품환경노동위생안전청(ANSES)은 유전자 교정 방식인 ‘새로운 유전체 기술(NGT)’로 개발한 품종이 전통적인 육종 기술로 만들어진 작물과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며 규제 완화론에 힘을 보탰다. NGT는 유전자 교정을 20번 이하로 진행한 경우를 말한다.
프랑스 식품안전청은 NGT 분류 기준으로 사용한 기술과 방법이 기존 육종 기술과 차이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추가적인 유해성도 확인하지 못했다. 과학적으로 NGT 작물을 전통 육종 작물 동등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의회는 프랑스 식품안전청의 분석에 대해 유럽식품안전청에 의견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번에 유럽식품안전청도 프랑스 측과 같은 결론을 내린 것이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부터 단계적으로 유전자 교정 작물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유럽식품안전청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유럽의회는 NGT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식품안전청은 유럽의회의 식품, 의약품 관련 자문을 하는 법정 기구다.
유럽의회는 지난 2월 NGT 작물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다만 법안을 시행하려면 유럽연합 소속 27개국이 참여하는 이사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이후에는 집행위원회, 의회, 이사회의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
전 세계는 유전자 교정 작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이미 미국과 캐나다, 일본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은 정부 승인을 받지 않고도 유전자 교정 작물을 개발하거나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우수한 유전자 교정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규제에 막혀 있다. 지난 국회도 유전자 교정 작물을 GMO로 분류하되 일부 규제만 완화하는 방안이 추진됐으나, 법안은 국회 임기 만료까지 처리하지 못해 폐기됐다. 과학기술계에서는 한국도 유전자 교정 작물을 GMO와 분리해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내 바이오 기업인 지플러스생명과학은 유전자 교정을 통해 비타민D를 함유한 토마토를 개발해 글로벌 종자기업인 바이엘AG에 기술이전에 성공했다. 지플러스생명과학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토마토에서 비타민D가 될 프로비타민D가 콜레스테롤로 바뀌는 경로를 차단했다. 하지만 한국은 비타민D 토마토를 GMO로 분류해 규제하고 있어 국내 농가에서는 재배할 수 없다.
일본 사나텍 시드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유전자를 가바(GABA) 성분을 다섯 배까지 늘린 토마토를 개발했다. 신경전달물질인 가바는 혈압을 낮추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사나텍은 2021년 유전자 교정 토마토 판매를 시작했다.
같은 방식으로 유전자 교정 토마토를 개발했지만, 한국은 규제 탓에 해외에 기술을 수출하면서도 국내 시판은 못하고 일본은 국내외로 시장을 넓히고 있다. 한 대학 교수는 “유전자 교정 작물이 인체에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됐다”며 “한국도 발 빠르게 규제를 완화해 종자 시장을 성장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전자 교정 작물(GEO)
식물이 원래 갖고 있는 DNA 일부를 잘라내거나 손상된 부분을 원래 정상 DNA로 교체한 작물이다. 유전자 교정은 주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한다. 유전자 변형 작물(GMO)과 혼동할 수 있으나, GMO는 다른 생물의 유전자를 삽입하는 방식이다. GEO와 GMO 모두 유해하다는 오해가 있으나 과학기술계에서는 두 방식 모두 별다른 유해성은 없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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