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문 남쪽 성은 왜 이 모양일까?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경기일보 2024. 7. 2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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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한 지형 ‘최적의 터’… 남수문 방어 ‘최像의 설계’
남수문 서쪽부터 미복원 구간이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화성은 1970년대 후반 대대적 복원공사를 거쳐 성역 당시의 전모를 볼 수 있는 성이 됐다. 복원되지 않은 구간은 남은구에서 남수문까지 평지남성 구간이다. 복원될 시설물은 남은구, 남서적대, 남동적대, 남암문, 남공심돈 등 다섯 곳이다.

현재 수원특례시에서 보상을 진행하고 있다. 팔달문에서 남수문까지 구간에 대한 복원에 기대가 크고 복원을 끝내면 화성은 지금보다 수십배의 가치가 있는 곳이 될 것이다. 가치가 높은 만큼 복원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특히 두 가지 점에 유의해 복원하기 바란다.

하나는 남서적대, 남동적대, 남암문, 남공심돈 시설물은 각각의 높이 기준을(기준 레벨) 원형대로 정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유는 높이 자체가 그 시설물의 목적과 기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높이가 맞지 않으면 시설물 개념이 손상된다. 원형보다 더 높거나 더 낮게 복원되면 해당 공간의 개념과 전략적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의미다. 원형이 잘 보존된 팔달문을 기준으로 각 시설물의 기준 레벨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하나는 남공심돈에서 남수문까지 성벽 구간은 성의 노선(루트)을 원형대로 정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구간의 모습은 화성 전체에서 매우 특이하다. 남공심돈에서 90도로 꺾이고 짧은 구간임에도 여러 번 굴절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유구가 잘 남아 있기에 문제는 안 생길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원형과 조금이라도 다른 노선으로 복원되면 이곳 성의 전략적 가치가 훼손되기 때문이다. 남공심돈에서 남수문 사이의 성은 왜 이런 모양일까?

남공심돈에서 남수문까지 성 모양은 화성 전체 성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이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수문 방어 때문’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성의 노선은 성을 쌓을 터의 지형과 양쪽 시설물 위치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남공심돈과 남수문이 왜 그곳에 있어야 했는가를 따져보면 이곳 성 모양에 대한 궁금증이 밝혀질 것이다.

남수문 위치에 대해 살펴보자. 수문이기 때문에 당연히 수원천 위에 설치돼야 한다. 북수문인 화홍문 아래로 수원천 전체를 보면 구천까지 주변 모두가 평지다. 단 한 곳, 현재 남수문 동쪽에만 산이 있다. 일자사(一字砂)가 시작되는 곳이다. 일자사란 동남각루부터 창룡문까지 일직선으로 뻗은 산을 말한다.

남수문과 일자사 사이 지형을 의궤에 “수문의 동쪽으로부터 다시 산상의 터로 접어드는데 그 형세가 자못 험난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남수문 옆으로 산이 시작됨을 말해준다.

수문 위치는 옆에 이런 높은 지형을 꼭 끼고 있어야 한다. 방어가 매우 취약한 수문을 방어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방어에는 평지를 내려다보는 인접한 산이 최고다. 이런 이유로 산상동성 바로 아래에 남수문 터를 잡은 것이다. 최적의 위치다.

남수문은 동쪽이 산상성이라 방어에 유리하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다음으로 남공심돈 위치에 대해 살펴보자. 팔달문과 남수문 사이에 남공심돈을 배치했다. 남공심돈은 팔달문 방어를 위한 것일까? 아니다. 남공심돈을 남수문 쪽으로 치우쳐 배치한 것이 그 이유다. 팔달문에는 이미 문루, 옹성, 그리고 좌우에 적대를 둬 공심돈까지는 필요 없다. 따라서 남수문 쪽으로 남공심돈을 배치해 남수문 방어를 맡긴 것이다. 평지를 고려해 시설물 중 가장 높은 공심돈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왜 남수문 바로 옆에 설치하지 않고 앞쪽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배치했을까? 남수문 앞쪽은 평지라서 특별한 방어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방법은 성의 길이를 전방으로 길게 빼는 설계다. 마치 남수문 앞에 ‘악마의 목구멍’을 설치해 놓은 형상이다. 어떤 효과가 있을까?

효과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적이 남수문으로 진입할 때 진입 거리를 길게 만들어 적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함이다. 또 하나는 진입한 적군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적의 진입 루트는 성과 수원천 사이의 비좁은 통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지형으로 진입한다는 것은 적으로서는 두려울 수밖에 없다. 사지로 들어가는 형국이다. 진입할 엄두를 내지 않을 것이다.

정리하면 동쪽에서는 고저 차를 활용해 산상에서 적을 공격하고 서쪽에서는 긴 거리감과 측면 방향성을 이용해 적의 진입을 저지하고, 적의 측면 공격에 유리한 전략적 배치다. 과연 사실일까? 검증도 가능하다.

남공심돈은 남수문에서 성을 길게 끌고 나가 적이 진입하기 두렵게 만들었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북수문인 화홍문과 비교해 보면 된다. 북수문은 수원천 북쪽에서 유일한 산상 아래에 배치했다. 바로 용두 아래다. 용두는 용연 위에 우뚝 솟은 바위산으로 방화수류정 터를 말한다. 북수문은 남수문과, 방화수류정은 동남각루와, 높은 용두는 높은 일자사와 짝을 이룬 듯 비교가 된다.

북수문 서쪽은 평지다. 서쪽 원성은 앞으로 길게 빼서 그 끝에 북동포루를 설치했다. 남수문 서쪽도 평지다. 앞으로 길게 빼서 남공심돈을 배치했다. 북수문과 남수문, 앞으로 길게 뺀 원성, 북동포루와 남공심돈은 판박이인 듯 비교가 된다.

앞으로 뺀 거리가 남수문이 80m, 북수문이 110m다. 남수문에서 남공심돈으로 벌어진 각도는 25도, 북수문과 북동포루의 전개 각도는 37도다. 모두 100m 전후, 40도 미만이다. 북수문이 방위각이 더 넓고 전방으로 더 멀리 나간 이유는 북수문 북동쪽에 큰 연못 용연 때문이다. 연못은 적의 침입 루트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북수문도, 남수문도 동쪽에는 높은 산에 각루를 설치했고 서쪽은 모두 앞으로 성을 길게 빼 대포 진지 포루와 공심돈을 설치했다. 긴 진입 거리와 측면 공격으로 방어 효과를 극대화했다. 수문 방어전략이 한낱 주장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남수문과 남공심돈 사이 특이한 성 모양을 살펴보며 정조의 ‘수문 사수전략’이 숨겨져 있음을 엿봤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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