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25년 전 제약사 회장을 꿈꾸게 한 흑염소 메디

이영완 사이언스조선부장 2024. 7. 2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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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완 조선비즈 사이언스조선부장

1998년 3월 사람의 백혈구 증식인자(G-CSF)를 젖에서 분비하는 흑염소 ‘메디’가 탄생했다. 유욱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흑염소의 수정란에 사람의 G-CSF 유전자를 삽입하고 대리모에 이식해 메디를 탄생시켰다. 동물에 새로운 유전자를 도입하는 이른바 형질전환이 성공한 것이다. 메디는 자라서 새끼를 낳았다. 연구진은 이듬해 5월 형질전환 흑염소 메디의 젖에서 사람의 G-CSF가 분비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시 언론은 ‘살아있는 의약품 공장이 탄생했다’고 대서특필했다. G-CSF는 면역기능이 떨어져 병원균 감염에 취약한 환자를 치료하는 데 쓰인다. 사람 몸에서만 소량 생산되는 단백질이어서 1g당 9억원이나 하는 고가의 약물이었다. 당시 메디의 염소젖은 1L에 약 0.1g의 G-CSF를 함유하고 있었다. 염소젖 1L가 9000만원 가치가 있는 셈이다.

메디는 정부가 기술선진국 7개국권으로 도약하겠다며 추진한 G-7과제로 1994년부터 추진된 연구의 결과였다. 한국생명공학연구소(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충남대와 함께 제약사인 한미약품도 연구에 참여했다. 당시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은 흑염소 젖에서 G-CSF를 정제하는 기술을 확보해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포부를 발표했다. 방목이 가능하고 번식도 잘 하는 흑염소를 수만, 수십만 마리 키우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왔다.

하지만 임성기 회장의 꿈은 바로 실현되지 않았다. 한국 분자생물학자 1호인 유 교수는 현재 과학기술 석학 단체인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이다. 유 원장은 지난 18일 “흑염소 젖에서 나오는 G-CSF의 양을 10배로 높여야 하는데 2배까지 성공하고 보다 높이면 흑염소가 죽었다”며 “지금까지 동물의 젖에서 의약품을 만드는 것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세상은 메디를 금방 잊었다. 한미약품은 지금은 연 매출이 1조 4909억원(2023년)인 대형 제약사이지만 1999년 당시는 1140억원에 그쳤다. 그런 회사가 연구에 매달렸다가 쓴맛을 보면 신약은 쳐다보지도 않고 복제약이나 만드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임 회장은 꿈을 잊지 않았다. 한미약품은 메디 대신 미생물 배양으로 G-CSF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해 백혈구인 호중구 감소증을 치료하는 신약 ‘롤론티스’를 개발했다. 롤론티스는 미국 시장에도 진출해 지난해 8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유욱준 원장은 지금도 한미약품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2020년 임 회장이 별세한 뒤 설립된 임성기재단은 매년 4억원을 주는 임성기연구자상을 운영하고 있다. 유 원장은 매년 시상식을 찾아 축사를 한다. 하지만 요즘은 마음이 좋지 않다고 했다. 한미약품그룹 창업주 일가가 모녀(母女)와 형제(兄弟)로 갈려 경영권 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유 원장은 “가족이 다투다 외부의 개인 최대주주에게 경영권이 넘어가지 않았나”라며 “주식 장사만 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해도 편을 들 수가 없다”고 말했다.

창업주 일가는 경영권 분쟁 중에 지분 다툼만 벌였지 한미약품을 성장시킬 비전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직원들을 자기 쪽으로 줄 세우기만 하고 믿음을 주지 않았다. 필요할 때만 언론에 일방적으로 입장을 말했지, 공개적으로 미래를 두고 토론을 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30년 전 실험실과 목장을 찾아 신약 개발의 꿈을 전파하던 선대 회장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미약품그룹 창업주 일가는 서로 자신이 경영권을 잡아야 회사가 신약개발을 흔들리지 않고 추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신약개발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오너 경영체제가 아니라면 장기적으로 투자하기 힘들다. 아시아 국가 대부분이 자국 시장을 글로벌 제약사들에 내줬지만, 한국은 여전히 국산 의약품이 나오는 것도 제약사 창업주들의 의지가 컸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하지만 2~3세는 다르다. 선대의 꿈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성장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실력 있는 전문경영인이 맡는 게 회사는 물론 한국 사회에도 도움이 된다.

일제 치하에서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하던 유일한 박사는 1926년 제약사인 유한양행을 세웠다. 그는 기업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며 국내 최초로 사원에게 주식을 나눠주는 ‘사원지주제’를 실시한 데 이어, 1969년 회사의 경영권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줬다. 창업주 일가가 아닌 전문경영인이 맡은 유한양행은 2014년 국내 제약사 최초로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했으며, 폐암 치료 신약 ‘렉라자’를 개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기대하고 있다.

물론 국내 제약사처럼 해외에서도 창업주 일가가 대를 이어 회사를 경영하는 곳도 있다. 독일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이 대표적이다. 1885년 젊은 화학자였던 알버트 베링거가 독일 중서부의 소도시인 인겔하임에 직원 28명으로 세운 베링거 인겔하임은 지금은 130여국에서 5만3000여명의 직원을 가진 세계 19위 제약사로 성장했다. 지금 이사회 회장은 창업주의 증손자인 후베르투스 폰 바움바흐이다. 어머니가 창업주의 손녀이다. 주주권리위원회 회장도 창업주의 증손자인 크리스찬 베링거이다.

창업주 일가는 장자 계승이 아니라 가족 중에 능력이 있는 사람을 회장으로 선출한다. 친가, 외가 따지지 않는다. 신사업 진출 건을 두고 의견이 갈리면 가족 투표로 결정한다. 누구든 주식을 가진 가족들에게 배당을 많이 해줄 능력이 있는 사람이 경영을 맡는 것이다. 그렇다고 창업주 일가의 이익만 챙기지 않았다. 베링거인겔하임은 1902년 세계 최초로 직원 건강보험을 만들었고, 1905년에는 퇴직 직원을 위해 연금제도를 시작했다. 1907에는 사원 아파트도 세웠다.

창업주의 꿈을 이어가는 방법은 이처럼 다양하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 자신이 중심인 길만 보는 듯하다. 제약사에서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면 역사드라마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왕권을 두고 가족들이 서로 죽이는 모습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분쟁 당사자들도 역사 드라마에서 승리할 전략을 찾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봐야 할 것은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잔 드라마가 아니라 흑염소 메디가 나오는 과학 다큐멘터리이다. 제약사라면 정치보다 과학이 승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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