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전문가 한동훈, 그리고 '탄핵'의 남은 물컵 절반

박세열 기자 2024. 7. 20.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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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칼럼] '일제 샴푸'도 '탄핵감'이라던 한동훈, 김건희 '국정·당무 개입'은 뭘까?

나경원, 원희룡,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에 출마한 후보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탄핵을 막겠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이젠 여의도 격언이 된 낮은 단계의 프레임 전쟁에서 국민의힘이 탄핵이라는 말을 받아든 것은 여러모로 패착이다. '탄핵'은 금기의 영토에서 이제 '탄핵이 되느냐, 마느냐' 가능성의 영토로 침투했다. 잠깐, 그런데 탄핵을 막을 수 있다고? 108석으로 막을 수 있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했을 때 국민의힘(당시 새누리당) 의석이 128석이었다. 탄핵을 막았나?

탄핵을 막는다는 것은 '탄핵이 진행되고 있다'는 걸 전제하는 말이고, 탄핵의 조건이 성립된 걸 가정하는 말이다. 야당은 바보가 아니다. 200석 이상을 넘기겠다는 확신 100%가 없다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탄핵 찬성이 200석을 넘겼다면, 그걸 막을 수 있는 수단은 군사 쿠데타 외엔 없다. '탄핵을 막는다'는 건 야당이 199석 쯤으로 탄핵 표결을 추진할 것을 전제한다는 말인가?

말꼬리 잡는 게 아니다. '탄핵을 막겠다'고 할 게 아니라 '탄핵으로 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정도가 좋겠지만, '탄핵' 이라는 말 자체를 언급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지금 이런 논쟁은 무의미하다. '탄핵 1단계', 야권의 영토에서 출렁대던 탄핵의 강이 범람해 넘쳐 흐르면서 국민의힘 영토로 스며들었다. 지금 야권은 '탄핵 물컵'의 절반을 채웠다.

국민의힘 108석, 이 숫자 중요하다. '전당대회가 아니라 분당대회'라고 한다. 가진 게 108석인 정당을 두고 정치권에서 '분당'까지 전망할 정도면 극한의 위기 징후다. 이른바 '김옥균 시나리오'라는 우스개 '썰'까지 등장하는데, 한동훈이 3일만에 과거 이준석 전 대표처럼 끌려 내려온다는 걸 가정한다면 그건 곧바로 '분당'을 의미한다. 민주적 경선에서 승리한 후 끌려내려온 '한동훈당'이 8석 이상 확보하지 못할 것이란 자신이 윤석열 대통령과 친윤계에겐 있는가? 집권당 100석의 둑이 무너지면 지지율 20%대 수준의 인기 없는 대통령 탄핵은 시간 문제가 된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사유가 없다? 박근혜는 탄핵 사유가 있었나? 탄핵은 정치 행위다. 박근혜 탄핵은 2016년 12월 9일에 국회에서 의결됐다. 박영수 특검이 윤석열 팀장을 발탁한 게 탄핵 의결 8일 전, 그해 12월 1일이다. 수사에 착수도 하지 않았는데 탄핵안은 통과됐다. 박근혜의 '명확한 탄핵 사유'는 당시 무엇이었나?

성난 민심은 확정된 판결문을 기다리지 않는다. 탄핵을 먼저 하고 판결문을 기다린다. 이건 윤 대통령이 사용하던 '서초동 사투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의도 사투리'로는 설명된다. 권력의 속성이다. 힘이 없는 자를 요리하는 데 '특수부 검사'들은 집요하고 유능하다. 채상병 사건? 탄핵을 목도한 검찰이 '격노가 죄냐'는 말을 받아 줄 것 같은가?

탄핵을 막는 게 아니라 '탄핵 구상'을 무력화할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존재한다. 대통령의 변화다. 허나 회의적이다. 일례로 방송통신위원장에 이진숙을 내정한 걸 보고도 이 정권이 '언론(MBC) 장악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걸 믿을 사람은 없다. 대통령과 영부인이 연루된 의혹에 대한 특검법을 족족 거부하는 것도,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윤석열 대통령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도 '아, 윤석열 대통령은 변하지 않겠구나'는 생각에 확신을 보태준다. 대통령은 여당에 "똘똘 뭉치자"고 말했지만, 정당 지지율을 훨씬 하회하는 대통령 인기를 체감하는 의원들은 아마 '대통령 순진하네' 하며 속으로 비웃었을 지 모른다.

'김건희 문자 읽씹' 논란에도 지금 한동훈 후보의 당대표 지지율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그럴듯한 가설은 당원들의 욕망은 이미 '정권 재창출'에 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재보선, 그리고 지난 4월 총선에서 이미 '2연패'를, 그것도 아주 처참한 성적으로 당했다. 승리할 수 없는 사람에게 당원들은 붙지 않는다. 나경원? 원희룡? 마찬가지다. 그나마 한동훈 후보가 불투명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베팅' 가능한 최소한의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난 총선 패배의 공동 책임자임에도 불구하고 '팬덤'과 '대선 후보 지지율'에 희망을 걸어보겠단 거다.

유력 당권주자 한동훈의 발언은 그래서 더 불길하다. 한동훈은 김건희의 문자를 받고도 무시한 이유를 대면서 "그 상황에서 (김건희와) 사적 통로로 답을 주고받았다면, 그 문자가 오픈되면 야당이 국정농단이라고 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저를 막기 위해 사적인 문자를 공개적으로 전당대회의 장에 올린다는 것을 국민이 정말 걱정하실 것"이라며 "이건 일종의 '당무 개입'이자 '전대 개입' 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1월에는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이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한 사실을 공개했다. (아마 이 때 윤 대통령은 싸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 김건희 문자 논란엔 "제가 이걸(문자) 다 공개했었을 경우에 위험해지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국정농단'과 '당무개입', 많이 들어본 말이다. 박근혜가 그 두 가지 혐의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 유죄를 이끌어낸 1등 공신이 '조선제일검' 한동훈이다. 윤석열과 한동훈은 '탄핵 스타' 검사였다. '수사 해봐서 아는데' 이론에 따르면 대통령 탄핵에 대해 대한민국 '최고 전문가'를 꼽으라면 맨 앞자리에 윤석열, 한동훈이 반드시 자리한다. 윤석열 정부 법무부장관을 지낸 최고 엘리트 검사. '윤석열의 후계자' 소리까지 들었던 인물, 검사로서 법리를 잘 알고, 무엇이 죄가 되고, 무엇이 죄가 안되는지 누구보다 더 잘 안다는 한동훈이 '국정농단'과 '당무개입'을 언급했다. 이건 무슨 말일까? 사실이라면 탄핵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역설적으로 한동훈은 지금 윤석열 부부의 행태가 '탄핵'에 근접해 있다는 걸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 '김건희 문자'를 받고도 '국정농단' 연루가 두려워 발을 뺀 것 아닌가?

한동훈에게 '탄핵의 기준'은 그리 높지 않다. 그는 과거 탄핵에 대한 견해를 말한 적이 있다. 전문가의 말이니 믿어보자. 2023년 11월 21일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사 탄핵 추진을 두고 "만약에 어떤 고위 공직자가 공직 생활 내내 세금 빼돌려서 일제 샴푸 사고 가족이 초밥 먹고 소고기 먹었다. 그게 탄핵 사유가 되냐는 질문에 (이재명이) 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그 정도는 (탄핵이) 된다고 생각한다. 헌법재판소에서 그 정도는 인용할 것 같다" 말했다.

법카로 일제 삼퓨 사고 가족이 초밥 먹는 것도 헌법재판소가 인용할 수준의 탄핵이 된다는데, 지금 윤석열 대통령을 둘러싼 의혹들은 어떤가? 이를테면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영부인을 탈탈 털면 '법카 샴푸'나 '법카 초밥'이 안 나올까? 이미 야당은 이번 국정조사에서 대통령 부부 순방 때 쓴 비용을 들여다보겠다고 벼르고 있다. 보수 언론도 돌아섰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탄핵'을 지면에 올린다.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은 칼럼을 통해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내부 모습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와 비슷"하다고까지 말한다. 모든 상황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불리하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영부인에게도 '비장의 무기'는 있다. 이 시점에서 유일한 카드는, 한동훈 특검이다. 만약에 표결처리된다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까지도 안 갈 수 있다. 윤석열 탄핵의 매직 넘버가 8석이라면, 한동훈 탄핵의 매직 넘버도 8석이다. 개혁신당 등 보수 정당과 일부 야당 의원들이 한동훈 탄핵에 부정적인 걸 감안해도 넉넉하게 15석 정도만 확보하면 된다. 물론 그런 상황이 되면, 지금 국민의힘은 완전히 공중분해가 될 것이다. 해산의 수준이 아니라 '자폭'이다.

'당내 게임'에선 모든 경우의 수를 헤아려보더라도 한동훈이 압도적으로 유리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이걸 깨달을 수 있는 '정무 지능'이 대통령과 그 주변 참모들에게 존재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한동훈과 반드시 함께 가야 살 수 있다. 한동훈에게 고개를 푹 숙여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위계를 중시하는 옛날 사람, '격노'를 밥 먹듯 하는 대통령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권력욕'으로 뭉친 영부인이 결단코 반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스토리의 결말은 뻔해진다. 탄핵의 남은 물컵 절반은 누가 채울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가진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창밖을 보며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2024.1.29 ⓒ연합뉴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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