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이든, 비판이든 [새로 나온 책]
강준만의 투쟁
윤춘호 지음, 개마고원 펴냄
“변명이든, 비판이든, 예찬이든 강준만의 삶은 기록되고 정리될 만한 가치가 있다.”
언론학자 강준만(전북대 명예교수)의 언론·사회 비평 작업은 1990년대에 돌풍을 일으켰다. 〈김대중 죽이기〉는 수십만 부가 팔리며 출판계를 넘어선 정치적 사건이 되었다. ‘1인 저널’ 〈인물과 사상〉은 실명 비판으로 지식인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1인 봉쇄수도원의 수도사’처럼 글을 써왔지만, 이에 대한, 한국 사회의 지적 대응은 부실했다.
30년 동안 기자로 일해온 저자는 ‘진보 반동’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강준만의 지적 이력을 전기, 이행기, 후기로 나누어 탐색해간다. 강 교수와 가까운 이들을 취재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인간적 면모에 대해서도 썼다. 너무 늦게 도착한 ‘본격 강준만론’이 속도감 있게 잘 읽힌다.
수능 해킹
문호진·단요 지음, 창비 펴냄
“개인의 일탈만으로는 존속할 수 없는, 체계화되고 조직화된 시장이자 산업.”
윤석열 대통령은 수능의 문제를 ‘카르텔’로 봤다. 문제 유출을 사태의 본질로 보고, 사교육업체 관계자들을 수사했다. ‘킬러 문항’ 문제를 제기해온 필자들은 몇몇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문제의식은 불충분하다고 여긴다. 이른바 ‘공교육 과정만으로 풀지 못하는 문제’나 ‘교사들의 일탈’이 아니라, ‘퍼즐화된 시험’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지나치게 꼬인 시험의 해법을 익히는 과정이 비교육적이라는 것이다. 책은 진보 교육계의 이상이 부른 폐해도 지적한다. 수능 과목 수와 학습 범위를 줄이면서 개별 문항의 난도는 오히려 상승했다. 정부는 헛다리를 짚고 교육계는 현실을 모르는 탓에 사교육 스타 강사와 유대감을 형성하는 학생들의 상황도 흥미를 끈다. 부제는 ‘사교육의 기술자들’이다.
우리가 본 것
하나 베르부츠 지음, 유수아 옮김, 북하우스 펴냄
“내가 왜 헥사를 떠나게 되었는지를 알려줄게요.”
10대 소녀의 자해 영상, 동물 학대 영상, 배설에 가까운 혐오 표현, 다섯 글자로만 건조하게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 드는 ‘성적 콘텐츠’가 범람하는 SNS에서 유해 게시물을 걸러내고 삭제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다. 논픽션이 아닌 소설이지만, 책의 맨 뒤에 ‘참고 자료’ 목록이 붙어 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화학과 저널리즘을 전공한 작가는 “전 세계 상업용 콘텐츠 감수자들의 근무 환경을 조사하면서 다음과 같은 책, 연구, 다큐멘터리, 기사 등을 활용했다”라고 밝혔다. 책은 얇지만 충분하다. 독자들은 이 세상의 어딘가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마오주의
줄리아 로벨 지음, 심규호 옮김, 유월서가 펴냄
“마오주의는 마치 바이러스처럼 끈질기게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재능을 지녔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는 중국이 경제적으로는 시장,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다고 믿었다. 그들이 내걸고 있는 사회주의는 겉치레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진핑이 집권한 2010년대 초반 이후 중국에 대한 세계의 시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중국이 자국의 독특한 정치·경제 시스템을 보편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며 세계 패권에 대한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을 ‘마오주의’에서 찾아낸다. 마오쩌둥 사후, 마오주의가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시진핑 시대까지 중국의 근본이념으로 확립되어왔으며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영향을 미쳐왔다는 것이다. 중국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한반도에 미칠 영향력을 이해하고 예측하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집단학살 일기
아테프 아부 사이프 지음, 백소하 옮김, 두번째테제 펴냄
“전쟁에 관한 기억은 이상하게도 긍정적인데, 기억이 있다는 것 자체가 살아남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기록을 왜 읽어야 할까. 인간은 고통을 왜 기록할까. 또 그런 기록을 읽는 올바른 태도가 있다면 무엇일까. 옮긴이는 당부한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그저 ‘복잡한 문제’로 뭉뚱그리지 말아달라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문화장관이자 작가인 저자가 전쟁이 시작된 첫날부터 2023년 12월30일 이집트로 피난하기까지 85일간 보고 겪은 일을 기록했다. “남은 건 기억뿐이고, 뭐가 일어났는지 잊지 않겠다고 책임을 지는 건 계속 살아남으려는 우리 투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라는 증언에서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은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전쟁은 중단되어야 한다’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고통의 기록이야말로 저항의 기록이다.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김원영 지음, 문학동네 펴냄
“우리 몸에는 늘 구체적인 타인이 깃든다.”
휠체어를 탄다. 변호사로 일했고, 작가·공연창작자로 살아간다. 언제부터인가 김원영 작가의 정체성에 배우·무용수가 더해졌다. 이번 책에서 그는 춤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 또 춤의 역사를 통해 차별과 평등의 문제를 다룬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고립된 유소년기를 거치며 대체로 몸을 숨겨왔던 그가 무대에서 춤을 추게 되기까지, 그 과정에서 만난 타인들의 이야기다. 장애인 무용수와 배우들이 어떻게 객석과 무대의 조건을 바꿔왔는지도 살핀다. 읽다 보면 그가 바라는 세계, ‘루게릭병이 상당히 진행되어 안구 마우스로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도 실제로 좋은 춤을 출 가능성이 열린 세계’를 나 또한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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