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홍'으로 전락한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두 번째 독배를 들다 [이달의 스포츠 핫 피플]
편집자주
최근 가장 '핫'한 스포츠 이슈를 찾아 주요 인물의 스포츠 인생을 정리해보는 코너입니다. 프로 무대의 스타플레이어를 비롯해 아마추어 '신성', 지도자, 체육단체장 등 하루하루 숨 가쁘게 변화하는 스포츠 세상 속에 사는 인물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봅니다.
홍명보 전 울산 HD 감독이 기어코 한국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이후 두 번째다. 그는 10년 전 처참한 성적(1무 2패)으로 전 국민적 비판을 받으며 ‘대표팀 감독직=독이 든 성배’라는 공식을 체감했음에도 “내 인생 마지막 도전”이라는 각오를 내비치며 다시 한번 독배를 들었다. 축구팬들은 분노했다. 대표팀 감독 하마평에 오르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울산 팬들을 안심시켰던 그가 불과 며칠 사이에 말을 바꿨고, 선임 절차상의 문제까지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피노키홍’으로 전락한 ‘영원한 리베로’의 축구인생을 ‘이달의 스포츠 핫 피플’에서 훑었다.
평범한 미드필더에서 골 넣는 수비수로
훗날 ‘한국 축구의 상징’으로 성장한 홍 감독이지만, 학창시절 ‘선수 홍명보’의 입지는 그다지 탄탄하지 않았다. 광장초 5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축구화를 신은 홍 감독은 광희중, 동북고 재학 내내 ‘초특급 선수’로 분류되지는 않았다. 고교 입학 당시만 해도 170㎝에 못 미쳤던 신장 탓에 ‘공은 잘 차지만 몸이 약하다’는 평가를 주로 받았다. 동북고 2학년 때 10㎝가 자라는 등 급성장(현재 183㎝)하며 대통령 금배 우승에 일조했지만, 평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 가지 위안거리는 대통령 금배 우승 등의 경력으로 고려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대학 입학 후 꾸준히 경기를 뛰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팀의 스포트라이트는 서정원 김병수 노정윤 등이 차지했다.
평범한 선수였던 홍 감독의 인생에 전환점이 찾아온 건 대학 3학년 때였다. 기존까지 미드필더로 뛰었던 그는 임종헌의 졸업으로 공석이 된 스위퍼 자리로 포지션을 이동했다. 그리고 이 결정이 그의 축구인생 항로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홍 감독은 단순히 공을 걷어내기보다 미드필더의 경험을 살려 공격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고, 이때부터 ‘골 넣는 수비수’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그 결과 대학 4학년 진급을 앞둔 1989년 12월 처음으로 A대표팀에 발탁됐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대표팀에 막내로 합류했다.
‘한국 축구의 상징’과 '포항의 배신자’
그의 대표팀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고, 1998 프랑스 월드컵 본선 무대도 밟았다. 선수 황혼기에 맞은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대표팀 주장 완장을 차고 ‘4강 신화’를 일궈냈고, 수비력과 경기조율 능력 등을 인정받아 최우수선수 3위에 해당하는 ‘브론즈볼’도 수상했다.
세계 축구사에도 발자취를 남겼다. 1994년 아시아축구연맹(AFC) 베스트 수비수에 선정됐고, 세계 올스타(1994·1995·1997·1998)에도 선발됐다. 1990년대 한국 축구계에는 ‘우선 홍명보를 넣어놓고 대표팀을 꾸린다’는 말이 진리로 여겨질 만큼 그는 박지성과 손흥민 이전에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상징이었다.
그러나 빛이 강했던 만큼 짙은 그림자도 따라왔다. 2002년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LA 갤럭시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잡음이 발생했다. 홍 감독은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포항스틸러스와 2년 계약(2001~2003년)을 맺었는데, 그가 월드컵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돌연 LA행을 요청한 것이다.
포항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아닌 밤에 홍두깨'였다. 계약기간이 1년 이상 남아있는 팀 내 최고 스타가 암암리에 이적을 추진했다는 점도 충격이었지만, LA가 제시한 이적료(20만 달러)도 황당한 수준이었다. 두 구단 간 협상이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동안 설상가상 홍 감독은 허술한 수비와 불필요한 반칙으로 자주 구설에 올랐다. 팬들로부터 ‘태업을 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을 정도였다. 결국 이적료 20만 달러에 홍 감독 측이 추가 63만 달러를 자부담하는 조건으로 협상이 성사됐지만, 포항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석연치 않은 이적이었다.
이 일로 홍 감독의 과거 행적까지 재조명됐다. 1990년 대학 최대어로 꼽혔던 그는 포항이 아닌 타 팀에 입단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K리그 드래프트를 거부했고, 포항은 홍 감독을 산하 아마추어팀에 입단시키는 편법을 사용했다. 타 구단의 반발로 홍 감독은 이듬해 드래프트 시장에 다시 나오게 됐고, 결국 포항은 그를 손에 넣기 위해 당시 홍 감독을 지명한 유공과 3 대 1 트레이드를 감행했다. 프로 입단 과정의 정당성을 떠나, 홍 감독은 과거 자신의 가치를 높이 사준 친정팀에 비수를 꽂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롤러코스터의 시작… 제2의 축구인생
현역 막바지에 이적 문제로 논란이 생기긴 했지만, 은퇴 후에도 홍 감독의 입지는 여전히 굳건했다. 클럽팀 지도자 경력이 전무한 상태로 국가대표 코치직을 맡은 뒤 연령별 대표 감독으로 데뷔했고,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한국 축구 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수확했다. 그의 지도자 인생에도 현역 시절 걸었던 꽃길만 펼쳐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지도자의 밑천은 금세 드러났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 감독을 맡은 그는 미흡한 경기운영과 안이한 상대분석 등으로 처참하게 실패했다. 과정도 문제였다. 홍 감독은 애초 본인이 내세웠던 ‘소속팀 활약 선수 우선 선발’이라는 원칙을 스스로 깨고 런던 올림픽 멤버를 최종 엔트리에 대거 포함시키며 ‘의리 축구’ 논란을 자초했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K리거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선수단이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후 가무를 즐기는 영상까지 공개되면서 그는 결국 382일 만에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불명예 퇴진으로 인고의 시간을 보내던 홍 감독은 2017년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직을 맡으며 한국 축구계로 돌아왔다. 그는 김판곤 당시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 위원장이 파울루 벤투 전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는 데 힘을 실어주는 등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고, 축구팬들은 ‘행정가 홍명보’에게 대체로 호평을 보냈다.
3년간 행정가로 활동했던 홍 감독은 2021년 울산 사령탑으로 현장에 복귀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K리그 2연패(2022·2023년)를 달성하며 구단의 숙원을 풀었고, 두 시즌 연속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올 시즌에도 그는 김천 상무와 리그 선두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중이었다.
‘피노키홍’ ‘내로남불’… 자승자박 된 아마노 비판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나왔다”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강한 승부욕”. 홍 감독이 10일 울산 문수경기장에서 대표팀 감독직 수락의 변으로 내세운 문구들이다. 10년 전 실패를 만회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묻어있다.
문제는 홍 감독이 자신의 명예회복만을 위해 시즌 중에 팀을 버렸다고 읽힐 수 있다는 점이다. 울산 팬들이 그를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다"고 비판하는 이유다. 동시에 그는 말 바꾸기로도 비난을 받고 있다. 홍 감독은 본인의 이름이 대표팀 사령탑 후보로 거론되자 지난달 30일 포항전에 앞서 “협회에서 나보다 경험, 경력, 성과가 더 좋은 분을 데려오면 자연스레 내 이름은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팬들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거절의사를 밝힌 바 있다. 대표팀 감독 선임 후 울산 문수경기장 관중석에 ‘거짓말쟁이’ ‘피노키홍’이라는 걸개가 등장한 배경이다.
과거 발언도 스스로의 발목을 잡았다. 그는 2023 시즌을 앞두고 울산에서 전북 현대로 이적한 일본선수 아마노 준을 향해 “거짓말을 했다. 우리 팀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 내가 만난 일본인 중 최악”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울산 팬들은 “우리가 본 감독 중 최악”이라는 걸개를 내걸며 그의 '내로남불'을 지적했다.
역량 자체에도 의문부호가 붙었다. 홍 감독은 울산 팬들로부터도 세부전술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 인물이다. ‘전술형 감독’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이임생 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가 ‘라볼피아나’ ‘비대칭 스리백’ 등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기본 전술을 언급하며 홍 감독을 높이 평가하자, 축구팬들은 실소를 터트렸다.
홍 감독의 전술 철학 부재에 대한 의구심은 15일 인천국제공항 인터뷰 이후 더욱 증폭됐다. 그는 외국인 코치 선임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출국하기 전 “어떤 축구를 할 계획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한국 대표팀만의 규율뿐 아니라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어야 된다”며 애매한 답변을 내놨다. 2018년 8월 벤투 감독이 “공을 점유하고 경기를 지배하며 최대한 많은 기회를 창출하는 것이 목표”라며 명확한 팀컬러를 내세웠던 것과 사뭇 다른 대답이다. 그나마 '관리형 감독'으로서 그의 강점으로 꼽히는 선수단 장악 능력도 이번 대표팀에서는 쉽게 발휘되지 못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대한민국 축구밖에 없다”
홍 감독은 대표팀 감독 수락 자리에서 “저는 저를 버렸다. 이제 대한민국 축구밖에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 발언을 접한 축구팬들은 “K리그는 한국 축구가 아니냐”고 묻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에 대한 답은 22년 전 홍 감독이 직접 쓴 자서전 ‘영원한 리베로’에 이미 적혀있다. “한국은 현재 대표팀에 너무 집중돼 있다. (중략) 이제 한국도 대표축구보다 클럽축구가 우선시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만이 한국 축구가 앞으로 살 길이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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