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절반 크기 돔 아래 층층이 돈 되는 작물[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반투명 특수필름 이중막 구조 제작… 최고 17m, 아파트 6층 높이로 설치
1m 쌓인 눈-초속 60m 강풍도 견뎌… 비닐하우스-유리온실 넘는 신농법
토양 기반 수직재배시스템과 결합… 고부가 식용-약용작물 다작 가능
재배 작물 유통까지 책임질 구상… 8월 1000평 규모 돔 완공이 시험대
텃밭이라도 가꿔 보면 알게 된다. 농사는 날씨가 짓는다는 것을. 비가 한동안 오지 않으면 상추가 타들어 갈까 봐 애가 탄다. 반대로 장마철 비가 며칠 연속 내리면 병충해나 침수 피해를 걱정해야 한다. 야생동물의 존재도 알게 된다. 멧돼지나 새들은 애써 가꿔 놓은 고구마나 옥수수를 먼저 먹어 치우곤 한다. ‘농작물을 상품으로 키우려면 자연의 위험을 줄여 줄 장치가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비닐하우스나 유리온실을 활용하는 이유다.
경북 경산시에 본사를 둔 애그유니는 비닐하우스나 유리온실을 뛰어넘는 신개념 ‘식물공장’에서 농사짓는 시대를 열려는 스타트업이다. 연중 어디서나 어느 작물이든 경제적으로 기를 수 있도록 하고 싶어 한다. 8월 말 그 중요한 시험대가 완성된다. 애그유니는 자사 기술을 집약한 3200㎡(약 970평) 규모 에어돔 식물공장을 경기 화성시에 짓고 있다.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권미진 대표이사(32)는 “기둥 없이 넓은 재배 공간과 온도 및 습도를 작은 에너지로 관리하는 기술, 고부가가치 작물을 키울 수 있는 토양 기반의 수직 재배 시스템, 건강하게 자라게 할 작물별 재배법까지 갖췄다”고 말했다. 이어 “식물공장 공급에 그치지 않고, 계약을 맺은 식물공장주들에게서 고품질의 작물을 사들여 유통까지 하는 것이 우리 계획”이라고 했다. 미국에도 법인을 설립한 상태다.
● 에어돔과 수직 재배 시스템, 작물별 재배법
권 대표는 “기존 스포츠 시설로 활용되던 에어돔을 농업용으로 개발했다”며 “지열 등으로 온도와 습도를 최적으로 관리하는 공기 순환 기술, 자연광 활용을 위한 이중막 구조, 수증기 재활용 기술 등이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애그유니는 에어돔 구축에 필요한 기술 7개 특허를 확보했고, 4개는 출원했다.
무너지지는 않을까. 권 대표는 “에어돔 내부로 필요한 때만 최소의 공기를 넣어 구조물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기술”이라며 “외부 압력에도 유연하게 반응해 1m 쌓인 눈과 초속 60m 바람도 견뎌 비닐하우스나 유리온실보다 튼튼하다”고 했다. 이어 “2중으로 설치되는 필름은 칼로 베어도 잘 찢어지지 않으며, 일부 찢어져도 안전하게 수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에어돔에는 공기 필터실과 기계실 같은 유지 시설도 포함돼 있다. 애그유니에 따르면 깊이 70cm가 넘는 땅속 콘크리트 구조물과 결합된 특수필름이 해충의 침입을 막고, 에어 항균 필터는 곰팡이나 바이러스를 차단한다. 애그유니는 60일 공정으로 에어돔을 완성해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기둥이 없어 기존 농기계로 농사짓는 것도 가능하고 과수를 기를 수도 있다. 대량 생산을 위해 애그유니가 개발한 수직 재배 시스템을 넣을 수도 있다. 많은 스마트팜 기술이 수경 재배를 전제로 개발되는데, 수직 재배 시스템은 실내에서 키우는 작물 제한을 받지 않기 위해 토양 기반으로 개발했다. 수직 재배기에는 작물이 자라는 상자(모듈)가 담긴다. 작물 뿌리 부근에 물과 공기를 가압 공급하는 독자적 기술이 적용됐다. 권 대표는 “일반 노지 재배에 비해 뿌리 발달과 생육 속도는 약 30% 빠르고, 화학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병충해나 잡초가 잘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작물 재배 시스템도 5개의 특허권을 확보했고 11개 특허를 출원 중이다.
수직 재배 시스템 소프트웨어는 양액 정보 센서, 토양 정보 센서, 관수 제어기, 냉난방기를 비롯한 각종 센서 및 제어기와 연결된다. 애그유니는 통합관제실을 두고 국내외 여러 에어돔 농장을 관리할 계획이다.
●“에어돔에서 생산한 농산물 판매까지 책임”
애그유니는 에어돔으로 작물을 재배할 파트너를 찾고, 그들에게서 고품질의 식용 및 특용 작물을 매입해 판매까지 책임지는 시스템을 차근차근 만들어 가고 있다. 권 대표는 “농산물은 수요자가 있으면 절반은 성공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며 “두릅 등 몇몇 작물에 대해서는 이미 수요처를 확보해 단가를 협상하고 있다”고 했다.
애그유니는 경북 경산에서 약용 작물로 고가에 팔리는 대마 재배에 자사 기술을 적용해 성공하기도 했다. 두릅이나 와사비, 당귀, 백수오같이 고가에 팔리는 식용 및 약용 작물 20여 가지 재배법을 갖추고 계속 작물 종류를 늘리고 있다. 수직 재배 시스템을 두고 백수오나 당귀 등을 기를 경우 일반 비닐하우스에 비해 생산량을 7∼8배 늘릴 수 있다는 것. 연중 생산을 위한 재배 기술을 연구 중인 두릅의 경우 수직 5단으로 연간 3, 4모작이 가능해지면 에어돔 시설비를 2, 3년 내에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에어돔 설치비는 3.3m²(약 1평)당 50만 원 선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권 대표는 “평당 시설비는 유리온실보다 조금 더 경제적이고, 에너지 비용 같은 운영비를 크게 아낄 수 있는 방식이다”라고 했다.
애그유니는 올해 4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에어돔 3개동 설치를 위한 유휴 부지를 확보한 상태로 미국에서도 사업을 벌인다. 한국 에어돔에서 생산한 작물 수출도 추진한다.
●창업 이후 오랜 연구개발
권 대표는 대구가톨릭대에서 무역경영학 및 비즈니스영문을 전공하고 무역회사에서 잠깐 일하다가 2019년 창업했다. 농산물 유통업을 하던 아버지 일을 잠깐 도운 것이 계기가 됐다. 권 대표는 “기후변화와 고령화 등을 고려하면 작물 생산 방식에 혁신이 필요해 보였다”고 했다.
그런데 전공과는 거리가 있는 분야의 창업이라 여러 곳에서 사업 계획을 발표할 때 도전적인 질문을 많이 받았다. ‘농업인이 아닌데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렸는지’ ‘이공계열이 아닌데 실현할 수 있는지’ 등등. 권 대표는 오히려 더 큰 자극을 받았고, 더 힘줘서 얘기함으로써 조금씩 인정받은 것 같다고 했다.
덕분에 창업 이후 4년 정도는 현장을 직접 뛰면서 고객과 전문가를 만나 조언을 얻으며 연구개발에만 매달렸다.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대학원 푸드테크학과에도 진학해 공부했다. 주변의 도움도 많았다. 권 대표는 “전공자나 전문가가 자기 기술을 갖고 창업할 수도 있지만, 사업을 보는 마음의 크기로도 사업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투자는 2023년 3월에 처음으로 받았다. 글로벌 사업 등을 위해 미국 코넬대 경영대학원을 나온 인력도 최근 영입했다. 권 대표는 “친환경, 고부가가치 농업의 대안이 되고 싶다”며 “장기적으로는 에어돔을 중심으로 관광과 체험 및 문화시설까지 갖춘 융복합단지를 만들어 농촌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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