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서 넘어온 모기, 서울까지 ‘말라리아 경보’

구동완 기자 2024. 7. 20.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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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로 남하… 수도권 확산

3급 법정 감염병인 말라리아 환자가 최근 3년 새 2배 가까이로 늘어나면서 서울을 비롯해 인천, 파주 등 수도권에서 말라리아 경보가 확산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지난달 18일 전국에 말라리아 주의보를 발령했고, 서울엔 사상 처음 말라리아 경보가 발령됐다. 과거 주로 군사분계선 인근 주민과 군인이 걸렸던 감염병이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점차 남하하고 있는 것이다.

질병관리청은 19일 전국 말라리아 환자가 2020년 385명에서 지난해 747명이 돼 94% 가까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기간 서울은 57명에서 94명으로, 경기는 227명에서 434명으로 늘었다. 서울에서는 최근 양천구에서 말라리아 환자 2명이 발생하자 지난 9일 말라리아 경보를 사상 최초로 발령했다.

그래픽=이철원

인천도 환자 수가 3년 만에 48명에서 작년 126명까지 늘어났다. 강화군엔 지난 17일 올해 첫 말라리아 경보가 발효됐다. 말라리아 경보는 주의보 발령 후 첫 군집 사례가 발생하거나 말라리아 모기의 하루 평균 개체 수(TI)가 시·군·구에서 2주 연속 ‘5.0 이상’인 경우 발령된다. 이는 2주 연속 1개 트랩에서 5마리 이상 발견됐다는 뜻이다.

말라리아 환자가 급증한 이유는 이 병을 옮기는 모기 유충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고온 다습하고 변덕스러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말라리아 모기의 밀도가 평년보다 3배 수준으로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이동규 고신대 보건환경학과 교수는 “모기는 변온동물이기 때문에 자체 체온이 없어, 외부 온도가 올라가면 체온이 상승해 성장 속도가 빨라져서 일찍 성충이 된다”며 “최근 기온이 많이 올라 요즘은 5월부터 말라리아 모기가 활동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래픽=이철원

말라리아를 옮기는 얼룩날개모기는 일반 모기(빨간집모기)와 다르게 최장 12㎞까지 비행할 수 있다. 보통 ‘말라리아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는 북한에서 모기가 남하, 접경 지역 주민·군인들에게 옮기는 것이 그간의 전염 패턴이었다. 그런데 온난화로 말라리아 모기 개체 수가 늘어나면서 전염력도 더 커졌고, 전염 지역도 확대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집중호우로 북한에서 말라리아 모기 알·유충이 유입되는 경우도 잦아졌다”고 했다.

국내 말라리아 대부분은 ‘삼일열 말라리아’다. 기생충인 말라리아 원충은 얼룩날개모기를 숙주로 성장한다. 모기가 사람을 물면 모기의 타액에 모여있던 포자소체(삼일열 원충의 새끼)가 혈관을 타고 간으로 침투한다. 간에서 포자소체가 원충으로 자라나고 적혈구 세포를 파괴하면 증상이 나타난다. 잠복기는 짧으면 2주, 길면 6~12개월이다. 치사율은 0.1% 미만으로 낮다. 일단 감염되면 초기에는 피로감과 미열이 지속되다 48시간 주기로 오한과 39도 이상의 고열이 지속되고 두통과 발한 등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원인 모를 고열이 지속되면 병원을 방문해 혈액을 채취, 말라리아 검사를 받아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삼일열 말라리아는 클로로퀸 등 치료제를 복용하면 간단히 치료할 수 있다.

2022년 북한 내 말라리아 발병 건수는 2357건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북한 주민 약 2500만명 중 1000만명을 말라리아 위험군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145만명은 고위험군이라고 본다. 북한 내 위생·방역 수준이 매우 심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과거 북한에 말라리아 방역을 위해 약품·모기장 등 물품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남북 관계 경색으로 2012년 경기도의 지원을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

2007년 2227명이었던 국내 말라리아 환자 숫자는 2013년 445명까지 줄었다. 남북 말라리아 공동 방역이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사업 중단 이후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이후 2017년 4차 핵실험 강행에 따른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를 문제 삼으며 국내 인도 지원 단체의 방역 물자 반입도 거부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한반도 아열대화가 진행될수록 말라리아 등 전염병이 창궐할 가능성이 있다”며 “말라리아 확산은 남북 관계가 국민 보건과도 직결됨을 보여주는 사례로, 정치권과 정부가 각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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