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팔려면 미국서 만들라…동의 않으면 100~200% 관세”
대선후보 수락 연설로 본 트럼프 정책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4년 만에 백악관 집무실 내 ‘결단의 책상(Resolute Desk)’에 돌아올 경우 예상되는 일들이다. 이러한 구상을 담은 ‘트럼프 2기’의 청사진은 현지시간 15~18일 나흘간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진행된 공화당 전당대회를 통해 구체화됐다.
전당대회에서 확정된 공화당 정강(platform)에는 “동맹국들이 공동 방어에 대한 투자 의무를 이행하도록 한다”는 규정이 명시돼 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확인된 트럼프의 동맹 구상은 회비를 내고 가입하는 회원제 골프장과 유사했다. 회비를 내면 혜택을 받지만, 돈을 안 내면 탈퇴하는 개념이다. 동맹이라도 비용을 대지 않으면 돕지 않겠다는 의미다.
트럼프 당선 시 안보 분야를 이끌 가능성이 있는 리처드 그레넬 전 주독 미국대사는 18일(현지시간) “전 세계 어떤 클럽(회원제 모임)도 회비를 안 내면 시설을 쓸 수 없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클럽은 미국의 최우선 순위 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였고, 회비는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을 국방비로 쓰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는 이를 지키지 않는 동맹에 대해 “푸틴에게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을 5배 이상 올리라고 요구했다. 당시 트럼프가 썼던 협상 카드는 ‘주한미군 철수’였다. JD 밴스 부통령 후보 역시 17일 수락 연설에서 동맹 간의 상호 방위를 ‘미국의 자비’로 규정하며 “미국인의 자비를 배반하고 무임승차하는 동맹이 더 이상 없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날 후보 수락 연설에서 “소위 동맹이라고 불리는 국가들은 오랫동안 우리를 이용해왔다”며 “매우 간단하다. 미국에서 물건을 팔고 싶으면 미국에서만 만들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의하지 않으면 100~200%의 관세를 부과해 미국에서 팔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는 중국산 제품엔 50~60%, 한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의 제품에도 10%의 일률적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높은 관세가 붙으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대만의 TSMC를 비롯해 한국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미국에 짓는 공장에 지급된 보조금의 근거가 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해서도 트럼프는 “인플레이션과는 무관한 신종 ‘친환경 사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의 거의 100%를 가져갔으니, 방위비로 돌려달라”고 했다. 같은 보조금을 받은 한국 기업들도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 정부 때 중단된 북한과의 대화는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는 이날 “나는 김정은과 아주 잘 어울렸다”며 “김정은도 내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보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또 그와 잘 지낼 것”이라고 했다.
다만 트럼프가 시작할 대북 대화가 비핵화로 연결될지는 미지수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언급하며 “핵무기를 많이 가진 사람과 잘 지내는 건 좋은 일”이라며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했다. 그러면서 “그와 잘 지냈고, 그 결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막았다”며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하며 상황을 관리했던 것을 성과로 제시했다.
트럼프 1기 때 국무장관을 지냈던 마이크 폼페이오도 이날 찬조 연설에서 “우리는 북한에서 세 차례 정상회담을 열었고 북한은 조용해졌다”며 대북 접촉 자체에 의미를 두기도 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핵무기 기술을 계속시켰고, 최근엔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는 러시아의 ‘뒷배’를 자임하며 러시아와의 기술·경제 협력을 고도화하고 있다.
미국 내에선 대대적인 불법 이민자 토벌 작전이 트럼프 취임 직후부터 본격화될 전망이다. 트럼프는 이날 연설에서 “공화당 정강에 최대 규모의 불법 이민자 추방 작전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밀워키=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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