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광고에 지드래곤·손흥민·임영웅 등장한 이유는?

[아무튼, 주말]
중장년층의 고민은 옛말
늘어가는 ‘영 탈모人’

“대본에서 ‘머리 쥐어뜯으며 고민한다’는 지문을 볼 때마다 작가 선생님들이 미웠다.” 배우 이덕화는 이렇게 고백했다. 터프가이의 대명사, 반항적이고 거친 이미지로 여심을 뒤흔든 당대 최고의 청춘 스타. 그런 그에게도 시련이 있었으니, 그것은 ‘탈모’. 한 올 한 올 소중한 머리를 쥐어뜯는 건,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탈모 관련 광고에 등장한 배우 이덕화(왼쪽)와 가수 지드래곤. /하이모·TS샴푸

머리카락 상실의 시대다. 상실은 공허함을 남긴다. 텅 비어간다. 청춘도 예외는 아니다. 샴푸를 바꿔보고, 두피 마사지를 하고, 레이저를 쬔다. 하지만 득모(得毛)의 길은 요원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탈모 진료를 받은 사람(약 24만7300명) 10명 중 4명이 30대 이하(약 11만7900명)였다. 중장년층 남성의 고민 탈모는 옛말, 남녀 가릴 것 없이 ‘영(Young) 탈모족’이 늘어가고 있다.

◇약해지지 마라

28세 배우 고윤정이 말한다. “약해지지 마, 무너지지 마.” 뭐에? 탈모에. 화면 속 고윤정은 풍성하고 숱 많은 머리칼을 찰랑인다. 카메라 앵글이 비추는 곳은 그녀의 얼굴이 아닌 정수리. 빽빽하다. ‘정수리까지 빈틈없이 예쁜’, ‘머리카락까지 예쁜’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탈모 광고 하면 떠오르는 배우, “부탁~해요!” 이덕화. 하지만 최근엔 여성 모델을 기용하는 탈모 브랜드가 늘고 있다. 게다가 젊다. 국내 한 대형 화장품 업체는 지난해 탈모 케어 라인 모델로 배우 고윤정을 발탁했다. ‘국민 여신’ 김연아, ‘국민 첫사랑’ 수지 등도 탈모 샴푸를 광고한다. 탈모로 고민하는 젊은 여성이 늘고 있기 때문. 지난해 탈모 진료를 받은 여성은 약 10만8000명으로 이 중 30대 이하가 약 41%(약 4만4700명)에 이른다.

배우 고윤정의 탈모 샴푸 광고. 정수리가 빽빽하다. /려

국내 화장품 브랜드의 탈모 샴푸 광고 모델로 발탁된 배우 고윤정. /려

젊은 남성도 상황은 비슷하다. 탈모 샴푸 광고 하면 “꼭꼭 감아라~ 머리카락 빠질라” 노래 부르던 배우 성동일, 미친 듯 머리를 감으며 ‘분노의 샴푸질’을 선보이던 배우 차인표가 떠오른다고? 이젠 가수 지드래곤이 등장해 단발에 가까운 머리칼을 찰랑이고, 머리숱이 빽빽한 축구 선수 손흥민이 “늦기 전에 20대부터 시작하라”며 탈모 샴푸를 권한다. 피아노를 치면서 “영웅은 늙지 않는다”고 탈모 샴푸를 홍보하는 가수 임영웅도 있다.

◇곳곳에 ‘샤이 탈모人'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했다, 탈모 관리. 통계에 잡히진 않지만 먼 훗날을 내다보는 영 탈모족은 곳곳에 숨어있다. 꽃다운 19세 때부터 탈모가 시작돼 ‘탈모 인생’ 18년 차라는 한 30대 탈모·가발 전문 유튜버의 동영상 조회수는 누적 1034만회에 이르고, ‘탈모에 진심’이라는 한 성형외과 의사의 유튜브 구독자 수는 25만명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부끄러워 병원을 찾지 않는 이들까지 감안하면 탈모로 고민하는 젊은 층은 더 많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을 ‘샤이(shy) 탈모인’이라 부른다.

부끄러운 탈모인들, 혹은 유전적 요인이 걱정되는 부끄러운 예비 탈모인들은 ‘자가 치료’를 우선 시도한다. ‘탈모 시장’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은 증상이 조금만 보여도 예방하고 관리하려는 의지가 크기 때문에, 그야말로 ‘돈 되는 고객’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탈모 관련 시장이 트렌디(trendy)해지는 건 당연지사. 검은 분말을 뿌려 머리카락을 풍성해 보이도록 만드는 ‘흑채’는 ‘헤어 섀도’, 두피에 뿌리거나 칠하는 ‘커버 스프레이’ 등은 ‘헤어 쿠션’이란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기능은 같지만 젊은 층을 겨냥해 외형을 세련되게 바꿨다. 얼핏 보면 ‘파우더 팩트’와 구분되지 않는 제품도 있다. 여성 고객층을 겨냥한 것. 남성보다 탈모 진행 속도가 늦는 20~30대 여성은 과거 주요 고객층으로 여겨지지 않았지만, 최근 여성 탈모가 느는 데다 남성보다 관리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탈모 화장품 시장의 큰손이 됐다.

이 밖에 모발·두피 영양제와 두피 마사지기, 셀프 레이저 치료기도 인기. 대부분 50만~60만원이 넘지만, 실제 효과와 무관하게 “머리카락을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산단다. 한국과학기술정보원에 따르면 국내 탈모 완화 화장품 시장은 연평균 약 10.2% 성장세를 보이며 내년에는 시장 규모 5000억원에 육박할 전망이라고.

◇지자체도 나섰다

정녕 대(代)를 이은 저주를 끊어낼 수는 없나. 젊은 탈모가 늘어가며 지자체도 팔을 걷고 나섰다. 탈모로 고통받는 청년을 금전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한 것. 경기 부천시는 부천에서 2년 넘게 살고 있는 만 19~39세 청년에게 탈모 치료비를 지원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지난 3월 통과시켰다. 탈모는 미용의 영역을 넘어, 자신감 상실이나 대인기피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성동구, 경기 오산시 등도 탈모 치료비 지원 사업을 한다.

전문가들은 최근 젊은 탈모가 늘어나는 요인으로 ‘스트레스’를 꼽는다. 젊은 층이 학업과 취업, 경제적 압박 등으로 과거에 비해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줄기세포 및 재생생물학과 야치에 쉬 박사 연구팀은 최근 스트레스와 관련된 호르몬이 모낭 줄기세포의 활성을 억제해 모발 성장을 방해한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식습관과 생활 습관도 문제다. 패스트푸드나 간편식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늦게 잠드는 습관은 산화 스트레스와 염증을 유발해 탈모를 촉진한다. 이해신 카이스트 화학과 석좌교수는 “중장년층 탈모는 유전적 요인이 가장 큰 데 반해, 청년층 탈모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며 “스트레스나 영양 결핍 등으로 인한 탈모는 머리카락이 일시적으로 더 많이 빠지는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더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