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이 아니라 백악산, 청와대 뒷산의 불운을 아십니까
[김두규의 國運風水]
청와대 뒷산은 북악산인가 백악산인가? 모든 지도가 북악산으로 표기한다. 그런데 정상에 오르면 ‘백악산(白岳山)’이란 표지석이 있다. 무엇이 맞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백악산이 ‘옳다’. 백악산의 유래와 의미는 무엇일까? 고려 때는 이 산을 면악이라 불렀다(‘고려사’).
그 전까지 면악이 백악으로 불린 적이 없다. 그러나 조선 건국과 더불어 산 아래 경복궁이 들어서면서, 백악으로 바뀐다. ‘조선왕조실록’은 이곳을 “백악”으로 100번 가까이 언급한다. 태조 4년인 1395년, 조선은 경복궁 뒷산을 진국백(鎭國伯)으로 봉하고 고위 관료와 일반 백성은 제사를 올릴 수 없게 하였다. 국가의 제사를 받는 특권을 누린다. 백악은 본디 무슨 뜻이며 어디에 있었을까?
백악이 우리 민족사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유사’에서다. ‘삼국유사’는 “단군왕검이 백악산아사달에 도읍을 옮겨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고 하였다.
‘백악산아사달’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병도 박사는 “아사달과 백악이 언어상으로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논단하기 어려우나, 양자가 서로 붙어 다님을 보면 실체는 같으나 이름이 다른 명칭”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한다(이병도, ‘고려시대의 연구’). 백악산과 아사달은 같은 뜻으로 본 것이다. 이병도 박사는 아사달을 ‘아침의 땅’ ‘아침의 산’ ‘빛나는 아침의 땅’ 등으로 해석하고, 아침 조(朝) 자와 빛날 선(鮮) 자를 합쳐서 ‘조선’이라 불렀을 것으로 풀이한다.
고려왕조는 어떤 까닭인지 ‘백악’을 버리고 ‘송악’을 택했다. 건국 후 태조 왕건은 개경에 도읍지를 정하고 그 뒷산을 송악산으로 바꾸었다. 그 이전에는 부소갑·곡령 등으로 불렸다. 송악은 왕기의 상징이었다. 몽골 침략으로 개경을 버리고 강화도로 천도할 때도 궁궐터를 “송악산 아래”에다 정했다(강화도 송악산을 이병도 박사는 강화읍 관청리 뒷산으로 비정한다).
고려의 국운이 흔들리자, “백악”이 다시 등장한다. 1174년(명종 4년) 임금의 지시 사항이다. “좌소 백악산, 우소 백마산, 북소 기달산에 연기궁궐조성관(국운을 연장할 궁궐 조성 관리)을 두라.”
지기쇠왕설에 근거하여 국운을 연장하기 위한 궁을 백악산에서 찾으라는 것이었다. 이후 틈틈이 백악이 ‘고려사’에 등장한다. 43년 후인 1217년, 당시 무신 집권자 최충헌이 풍수 관리 이지식의 말을 받아들여 “백악에 새 궁궐을” 짓게 하였다. 이지식은 개경 뒷산 “송악산 왕기가 다했기 때문”이란 이유를 들었다.
그로부터 143년 후인 1360년(공민왕 9년), 공민왕이 직접 백악에 행차하여 천도할 땅의 지세를 살피고 궁궐을 짓게 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새 도읍지[新京]”로 불렀다. 1378년, 우왕도 “지기는 성쇠가 있는데 개경에 도읍을 정한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마땅히 좋은 곳을 찾아 보고하라”고 지시한다. 명을 받은 권중화(1322~1408)가 백악산 등 3곳을 추천한다. 참고로 권중화는 풍수·의학에도 능했다. 조선 건국 후 계룡산을 도읍지로 추천하였고(현 계룡대), 태조 이성계의 태실(충남 금산군 추부면 소재), 그리고 북악산 아래 정궁(경복궁) 위치를 현재의 청와대 터(당시 고려 이궁 소재)에서 약간 남쪽으로 내려오게 한 사람이다(무학대사와 정도전이 터를 잡았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조선이 경복궁을 정궁으로 정한 뒤, 그 뒷산 이름은 백악산이라 칭한 연유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복궁과 청와대 뒷산은 ‘백악산’으로 불러야 마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고 나서 성스러운 산 ‘백악’이 그 실체를 잃었다.
1948년 7월 17일 헌법 제정·공포 당시 ‘헌법전문’은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로 마무리한다. ‘단기’란 단군을 기원으로 한 연호이다. 단군은 도읍지를 백악산에 정했다. 이후 백악은 우리 역사에 영원한 주산이었다. 혹자는 용산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긴 배경에 ‘주술적’인 이유도 있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더더욱 백악을 무시해서는 안 되었다. 주술 이전에 산악 숭배는 우리 민족의 무의식적 정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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