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뿌린 만큼 돈 거둔다? 축축한 대한민국
워터밤·워터팝·흠뻑쇼…
경제효과 큰 문화 상품
매년 따가운 눈총 반복
물을 물 쓰듯 쓴다. 쾌감 때문이다.
지난 13~14일 서울랜드 동문 주차장에 말 그대로 물난리가 났다. 사용된 수돗물만 2000톤. 주말 양일 오후 열린 워터 뮤직 페스티벌 ‘S2O 코리아’가 쏘아올린 물 폭탄이었다. 현란한 전자음악에 온몸을 흔들어대는 관중, 그 위로 비트에 맞춰 물벼락을 선사하는 행사. 32도를 웃도는 기온, 찬물 세례가 흥을 배가한다. 기획사 비이피씨탄젠트에 따르면 관객 4만명이 다녀갔다.
여름 하면 물. ‘워터워즈 페스티벌’도 다음 달까지 열린다. 매일 아리수 100톤이 음악과 함께 물대포로 살수되는 ‘워터팝’(Water Pop)이 하이라이트. 지난달 22일부터 다음 달 27일까지, 수돗물 총 6700톤의 물량 공세다. DJ가 말아주는 K팝에 흥이 올라올 때 쫙, 짜릿함을 끼얹는 냉수 마찰. 서울랜드 관계자는 “2030 세대 중심의 기존 물축제 타깃층을 가족 단위 방문객으로 넓혀 기획한 행사”라고 했다.
◇워터 뮤직 페스티벌 10년, 전국이 물난리
관객 참여형 ‘워터 뮤직 페스티벌’이 여름 축제의 성공 문법으로 자리 잡으면서, 전국이 물난리다. 대표 주자가 바로 ‘워터밤’(Water Bomb). 물 폭탄을 뜻하는 명사, 이제 여름을 상징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야외 가설 무대에서 관중과 가수가 팀을 이뤄 서로 물총 싸움을 벌이며 축축해지는 공연. ‘물 뿌리기’를 옵션에서 메인으로 바꿔 판도를 흔든 지 10년째. 올해도 전국 투어가 시작됐다. 이미 개최된 서울·제주 외에 대구·부산·인천·여수 등 7곳이 다음 달 말까지 홀딱 젖을 예정. ‘워터밤’ 팝업 스토어가 서울 여의도 더현대에 생기는 등 인기는 상승세다.
작정하고 가는 곳, 젖은 몸은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밖에 없다. 19세 이상만 입장이 가능한 이유다. 소셜미디어 게시용으로 안성맞춤이다 보니, 선정성 논란과 더불어 ‘여신’의 등용문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몸매를 적극 어필해 이미지 확산 효과를 노리는 홍보 수단이 되면서, 뜨고 싶은 가수들이 앞다퉈 출연을 희망하는 1순위 행사로 떠올랐다. 여자 아이돌 가수 권은비·지원 등이 단박에 몸값을 올린 성공 사례다.
물은 가성비 좋은 재료. ‘야외’ ‘음악’이라는 두 요소와 가장 잘 어울리는 원초적 특수 효과이기도 하다. 전 세계로 뻗어나간다. 지난해 일본·태국 해외 투어를 진행한 ‘워터밤’은 올해 미국·싱가포르·홍콩·대만·두바이 등으로도 진출했다. 대형 미디어월과 조명 등의 무대 기술이 물과 어우러지면서 이제는 세계 공연 트렌드를 선도하는 수준에 와 있다. 한 공연 기획자는 “냅다 물만 뿌리는 게 아니라 타이밍에 맞게 흥분을 고조하는 연출 실력이 필요하다”며 “K팝으로 축적된 공연 노하우 덕에 여름 시즌마다 해외 관계자들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고 말했다.
◇물 올 때 노 젓자… 숙박료 들썩, 암표까지
지자체도 물세례에 뛰어들었다. 오는 27일부터 8월 4일까지 ‘정남진 장흥 물축제’를 여는 전남 장흥군 측은 최근 태국 ‘송끄란’과 손잡고 인적·물적 교류 활성화에 나섰다. ‘송끄란’은 대규모 행렬이 서로 물을 뿌리며 노는 세계적 명성의 물축제. 장흥군 관계자는 “우리 지역 축제를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한다”고 말했다. 충남 보령에서 매년 열리는 ‘보령머드축제’ 역시 송끄란과 협력해 ‘뻘’에 ‘물’을 더 부었다. 다음 달 3일에는 ‘포세이돈 워터 뮤직 페스티벌’도 개최한다.
이번 주말에는 과천에서 가수 싸이의 ‘흠뻑쇼’가 열린다. 지난달 원주에서 시작돼 전국 9곳을 돈다. 공연 한 번에 식수 300톤이 쓰인다. 싸이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직접 밝힌 것이다. 코로나 시기, 방역 우려에도 마스크 쓴 채 기어이 물을 뒤집어쓴 행사. 물을 그렇게 뿌려도 탈진 등 온열질환 의심 증세로 지난 6~7일 광주 공연에서 7명이 병원에 이송됐다. 열기가 뜨거우니 10만원 가까이 웃돈 붙인 암표도 횡행한다. 지난달 싸이가 “부디 제값에 구매해 달라”며 직접 단속에 나섰을 정도다.
지방에서는 의료·소방 등 종합 안전 대책이 마련되고, 동네 숙박비까지 들썩인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려는 일각의 움직임 때문이다. 지난해 ‘흠뻑쇼’가 열린 익산의 일부 숙박업소가 평소 요금의 4배 가까이 높여 비판 여론이 거셌다. 올해 첫 ‘흠뻑쇼’가 열린 원주의 일부 모텔도 바가지 논란에 휩싸였다. 그러자 원주시 측은 “’흠뻑쇼’를 앞두고 숙박 요금 인상이 우려됨에 따라 행사장 인근을 포함한 관내 숙박업소 대상 집중 점검 기간을 운영한다”며 즉각 대응에 나섰다.
◇반복되는 민폐 논란 여전해
여름은 난감한 계절이다. 무더위와 수해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일련의 물장난에 매년 따가운 시선이 꽂히는 이유다. “올해도 안 갈 예정.” 국내 활동하는 벨기에 출신 방송인 겸 DJ 줄리안 퀸타르트(36)씨가 지난달 인스타그램에서 ‘워터밤’ 축제에 쓴소리를 날렸다. “과도하게 물을 사용하는 페스티벌이 그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다른 방면으로 환경을 지키려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려진 바) 없다는 게 속상하고, 많은 사람에게 좋지 않은 신호를 주고 있다.”
물축제보다 골프장에서 사용되는 물이 훨씬 많고, 가뭄에 주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반론도 나온다. 왜 젊은이들의 유희에만 엄숙주의를 강요하느냐는 힐난도 적지 않다. 최근 ‘흠뻑쇼’에 다녀온 한 관객은 “더운 여름날 스트레스 풀고 활력을 되찾게 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고 했다. 야외 음악 축제 기획자인 김은성 비이피씨탄젠트 대표는 “공연 덕에 다시 1년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다는 사람도 많다”며 “과도한 트집 잡기 대신 이제는 문화로 바라볼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한국이 물 부족 국가는 아니다. 다만 ‘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된다. 강우가 특정 기간에 집중되고, 지역 편차가 커 관리가 쉽지 않다. 국립생태원은 “평균 강수량은 세계 평균의 1.6배에 해당하지만 인구 밀도가 높아 1인당 강수총량은 세계 평균의 6분의 1″이라고 했다. 지난해 ‘워터밤’ 광주 행사는 개막 열흘 전 돌연 취소됐다. 시 차원의 절수(節水) 운동이 전개될 만큼 심각한 가뭄 상황에서 시민들의 비판 수위가 높아진 탓이다. 정반대, 물피해도 잦다. 가수 싸이는 지난해 7월 15일 ‘흠뻑쇼’ 여수 공연 다음 날 뭇매를 맞았다. “관객도 스태프도 날씨도 모든 게 완벽”이라는 소감문을 썼는데, 공연 당일 충북 오송에 폭우가 내렸고, 지하차도가 침수돼 다수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인식 개선과 지속 가능성을 위해 윤리적 고민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최근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환경 윤리는 주요 화두. 이를 의식해 공연장 내에서는 ‘생분해 플라스틱 컵’만 사용하는 등의 친환경적 행보를 보이는 일부 워터 뮤직 페스티벌도 생겨났다. 매해 물축제 수익금을 기부해온 장흥군은 지난해에도 약 5000만원을 수해 지역에 전달했다. 관계자는 “즐거움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연대감을 고취하는 차원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한다”며 “올해도 기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물놀이는 흔적을 남긴다. 시민 의식이 필요한 이유다. 젖은 옷차림으로는 대중교통 의자에 앉지 않는 기본 상식 같은 것. 이미 지난해 ‘흠뻑쇼’ 잠실 공연 이후 귀가하던 일부 관객이 젖은 우비를 입은 채 2호선 지하철 좌석에 앉아 흠뻑 젖어버린 시트 사진이 온라인에 공유된 바 있다. 지난달에는 ‘워터밤’ 일산 공연 후 한 외국인 남성이 지하철 3호선 열차에서 목격돼 핀잔을 샀다. 상반신을 전부 탈의한 상태였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