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위스키법’ 덕에 숙성 맛 봤다… ’술과의 전쟁’이 키운 스카치위스키

김지호 기자 2024. 7. 20.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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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지호 기자의 위스키디아]
제1차 세계대전 중 서부전선 근처에서 술을 즐기고 있는 영국군과 프랑스군. /게티이미지코리아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3월 뇌브 샤펠(Neuve Chapelle). 독일군과 대치하고 있던 서부전선의 영국군에 다소 황당한 명령이 떨어진다. ‘하루 네 발 이상 포탄 사격을 하지 마라.’ 영국군에 ‘탄약 부족 사태(shell crisis)’가 터진 것이다. 영국군은 결국 포탄 부족으로 패했다. 탄약 부족 사태 해결에 미온적 태도를 보였던 당시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 영국 총리는 이듬해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에게 총리직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술과 싸우고 있다. 그중 가장 치명적이고 위험한 적은 술이다.” “독일 잠수함을 모두 합친 것보다 술이 우리에게 주는 타격이 더 크다.”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는 1915년 2월 19일, 뱅거대학교에서 이런 연설을 했다.

영국 신임 총리는 술을 끔찍이 싫어했다. 전쟁 중에 보리나 밀 같은 물자가 위스키 생산으로 들어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에게 주적은 독일군이 아닌 위스키였다. 그는 노동자들의 음주가 전쟁 물자 생산을 늦추고 효율성을 떨어뜨린다고 판단했다. 영국에서 위스키를 퇴출하고 싶어 했으나 그 일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위스키 산업은 수많은 사람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였다. 1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위스키 업계의 반발은 거셌다. 아무리 총리라도 하루아침에 위스키 산업을 뒤엎을 수는 없었다. 대신 그는 주류 업계에 ‘불편한’ 법령들을 몇 가지 만들었다. 모든 주류는 소비하는 사람이 직접 구매해야 했고 ‘국가적 효율성’을 위해 알코올의 판매 및 공급이 통제됐다. 술집 영업시간은 낮에 12:00~14:30, 저녁에는 18:30~21:30까지 총 6시간 미만으로 제한됐다. 위반할 경우 주류 판매 면허를 취소할 수 있었다. 모든 주류 광고가 금지됐고 상점 창문에 술병을 진열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위스키 가격은 1914~1918년 사이에 5배가량 올랐다. 어지간하면 술을 마시지 말라는 뜻이었다.

라프로익 증류소 1번 웨어하우스 /김지호 기자

여러 법령 중에 오늘날까지 유지되는 것도 있다. 1915년 제정된 3년 이하 미숙성 증류주의 판매 금지법. 숙성이 되지 않은 증류주는 취하는 정도가 더 심해 훨씬 많은 알코올 중독자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였다. 무분별하게 생산되는 싸구려 증류주가 사회에 만연할 것이라는 의견도 지배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반(反)위스키 법은 오늘날 위스키 산업의 주요 밑거름이 됐다.

3년 동안 강제로 오크통에 묵혀 있던 위스키의 품질이 뜻하지 않게 상향 평준화된 것이다. 거친 증류액은 숙성을 통해 부드러워졌고, 오크통이 가진 복합적인 맛 화합물이 미성숙을 성숙하게 바꿔줬다. 법안이 발효되기 전까지는 대부분 술이 증류 후 몇 개월 안에 판매됐다. 당연히 맛은 거칠고 품질도 불규칙했다. 금주를 주장한 영국 총리 덕분에 오늘날 세계 시장에서 가장 인정받는 스카치위스키가 탄생한 셈이다.

사실 처음에는 로이드 조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1914년 130여 개의 위스키 증류소는 전쟁 이후 급감했다. 제대로 살아남은 곳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런던에서 음주 혐의로 기소된 건수도 1914년 6만 7000건에서 1917년 1만6500건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숙성된 스카치의 인기는 미국 금주법(1919~1933년) 기간에도 꺾일 줄 몰랐다.

오늘날 스카치 위스키는 매년 영국 경제에 89억7300만달러의 수익을 안겨주고 있다. 수출액은 70억7700만달러. 스카치 산업에 고용된 인구는 4만1000명 이상. 영국 전역에 2만5000여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준다. 로이드 조지에게는 ‘웃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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