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부터 꺼라? 위급 상황서 차량 급정지, 최선의 방법은...

보령/이미지 기자 2024. 7. 20.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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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밟아보고 시동 끄고
급가속 실험해 보니

사고는 예고 없이 온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일상을 덮친 시청역 역주행 사고가 ‘참사’로 기록된 이유이다. 나도 언제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공포와 차량 급발진 혹은 나의 실수로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이 밀려온다. “내가 운전하는 차가 갑자기 가속이 붙어 통제할 수 없다면?” “브레이크가 밟히지 않으면?” 같은 물음은 운전을 생존의 영역까지 몰아세운다.

지난 15일 충남 보령에 있는 아주자동차대 주행실습장. 이미지 기자가 급가속과 밀림 상황에서 차량을 제어하는 법을 직접 실습하고 있다. 폭우가 쏟아지는 도로에서는 차량을 통제하기가 더 어렵다. 바닥에 물을 뿌려 비슷한 조건을 만들었다. 길은 미끄럽고, 시야를 가리는 물 폭탄은 섬뜩했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아무튼, 주말‘은 여름 휴가철에 장거리 운전을 앞둔 사람이 많은 지금, 급발진 혹은 급가속에 대응하는 법을 탐색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도로에서는 불가능한 주행 중 시동 끄기, 사이드 브레이크 잠그기 등을 직접 실험한 것이다. 차량이 달리는 상태에서 급커브 등 주행 시험을 해야 하는 자동차 기업 연구원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구조 요청에 응답해야 하는 소방관 등이 받는다는 차량 제어 교육도 함께 해봤다.

◇급할 땐 시동 끄기도 방법

실험은 국내 유일의 자동차 특성화 대학으로, 주행 실습장을 갖춘 아주자동차대학교에서 지난 15일 진행했다. 중간에 휴게소 한 번 들르지 않았는데 서울에서 보령까지 3시간이 걸렸다.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과 빠르게 쫓아오는 덤프트럭, 떨어지는 빗방울, 모든 게 괜히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이날 실험을 위해 준비한 차량은 4대. 구동 방식이 전륜·후륜으로 다른 차량을 시동 방식에 따라 열쇠식과 버튼식으로 나눠 준비했다. 열쇠식 차랑은 손으로 직접 당기는 사이드 브레이크, 버튼식은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가 장착돼 있었다.

이번 실험에 사용된 4대의 차량. 후륜 방식의 렉서스 GS-F와 쉐보레 카마로, 전륜 방식의 현대 아반테 CN7과 아반테 MD 차량이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2017년부터 지금까지 급발진으로 공식 인정된 사건은 0건. 국과수가 감정한 급발진 의심 사고(364건)에서도 인정된 사례는 없었다. 급발진이 어떤 것인지 명확한 정의도 없는 셈이다. 지금까지 급발진을 주장하는 사건의 공통점은 ‘감속이 되지 않았다’ ‘브레이크가 밟히지 않았다’ 등이다.

급가속 상황에서 감속을 시도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급가속 때 기어를 N(중립)에 놓아 감속하는 방법을 권유한다. 페달을 밟아 급가속해 일(一) 자로 달리다가 시속 80km 이상으로 올랐을 때 기어를 바꿨지만 여전히 속도가 빨라 벽에 가까워지자 겁이 덜컥 들었다. 당기는 방식의 사이드 브레이크로 차를 급히 멈춰 세웠더니 차가 급정거하며 핸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차까지 휙하고 돌았다. 온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전자식 사이드 브레이크 버튼은 상대적으로 흔들림이 덜했지만 차종마다 버튼이 달린 위치가 달라 미리 파악하지 않고는 찾기 힘들었다. 미리 자기 차량의 버튼을 파악하는게 필수인 이유다.

당기는 방식의 사이드 브레이크.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시속 80km 이상으로 급가속한 뒤 시동을 꺼보았다. 버튼식은 2~3초 이상 길게 눌러야 시동이 꺼지고, 열쇠식은 절반 가량을 돌리자 전기부품 전원은 켜진 상태에서 시동이 꺼졌다. 키를 뺄 경우 핸들이 아예 잠기지만 키를 절반가량만 돌려 시동을 끈 상태에서는 조금 빡빡하지만 핸들 조작이 가능한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 기어를 P(주차)로 놓아 차를 멈추려 하자 드륵드륵 하며 차량이 흔들리며 불안정하게 멈춰 섰다. 좌우·전후에 차량이 많거나 커브 구간에서는 방향 제어가 되지 않아 2차 사고를 유발할 수 있지만 당장 브레이크가 먹히지 않는 상황이라면 이런 방법이라도 쓸 수밖에.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미국 등에서는 브레이크, 기어 변속, 시동 끄기를 동시에 하라고 조언하지만 패닉 상태에서 조작이 불가능할 경우 도심에서는 다른 차량이나 신호등 같은 구조물을, 고속도로에서는 가드레일이나 벽을 박아서라도 차를 세우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내 차의 특성을 파악해야

이렇게 급정지할 경우 차가 미끄러질 수 있다. 고속도로 나들목이나 회전 교차로에서 속도를 높일 경우 차가 핸들 조작 범위를 넘어 튕겨나가는 현상이 발생한다. 정속 주행해야 한다는 것은 ‘교과서’ 같은 말. 바닥에 물을 뿌려 빗길과 비슷한 환경을 조성해 급커브를 돌아봤다. 4대의 차량 모두 시속 40km 수준부터 미끄러지며 회전했다. 실제 도로였다면 길 밖으로 차가 튕겨나가거나 뒤따라오던 차와 뒤엉켜 대형 사고가 났을 거라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네 차량을 알라’. 같은 커브길에서도 전륜(엔진의 힘으로 앞바퀴를 굴리는 방식) 차량은 차가 원하는 각도 바깥으로 밀려가는 언더스티어(understeer)가, 후륜(뒷바퀴가 구르는 힘으로 나가는 방식) 차량은 의도했던 각도보다 더 안쪽으로 차가 말리듯 회전하는 오버스티어(oversteer)가 발생한다<그래픽 참조>. 전륜 차량은 속도를 줄이면 차가 원래 궤도로 돌아오고, 후륜 차량은 핸들을 반대쪽으로 빠르게 튼 뒤 바로잡는 방식으로 밀림 현상을 제어할 수 있다.

그래픽=송윤혜

물론, 말처럼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차량 제조사 연구원들이나 소방관들은 이곳에 와서 다양한 상황에서 차량을 제어하는 법을 배운다. 전문가들은 게릴라성 호우나 폭설이 잦아진 일반 운전자들에게도 주행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핀란드에선 빙판길 운전법이 운전면허 시험에 포함된다.

한국 운전면허는 ‘물면허’라 할 만큼 쉬워졌다는 평가다. 2022년 공개된 전국 27곳 면허시험장별 도로 주행 시험 합격률은 평균 51.1%. 1990년대만 해도 10% 중반이던 합격률이 3배 이상 높아졌다. S자 후진처럼 난도 높은 구간이 사라지고, 한적한 지방에 가서 도로 주행 시험을 치르는 편법 등이 국민의 운전 실력을 하향 평준화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나 자신도 믿지 말라

그래픽=송윤혜

시청역 참사 가해 차량을 감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운전자가 가속 페달(액셀)을 90% 이상 밟았다”는 결과를 내놓았지만 이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딱딱했다”며 급발진을 주장했다.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 이런 주장이 심심찮게 나온다. 브레이크를 짧은 간격으로 수차례 밟으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밟아볼 기회는 없는 게 사실이다.

다시 시속 80km 이상으로 달리는 상황에서 브레이크 유압을 채워 딱딱한 상태에서 차를 세우는 것을 시도해봤다. 평소보다 세게 밟는다고 밟아도 실제 밟히는 건 2~3㎝밖에 안 되는 느낌이었다. “더 세게 온 힘을 다해서”라는 조언을 듣고 나서야 차량을 바리케이드 앞에 아슬아슬하게 세웠다. 박상현 아주자동차대 교수는 “브레이크를 부술 듯이 밟는다는 생각으로 밟으라”고 했다. 힘이 모자라다면 두 발로 밟아야 한다고.

가속이 붙은 차량을 사이드 브레이크 등으로 무리하게 세우면 매캐한 타이어 고무 타는 냄새가 났다. 급발진이나 급가속 등의 상황에서 당황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게 사실. 하지만 혹시라도 모를 사고를 상상해보며 대처법을 상상하는 것이 우리의 목숨을 살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차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 가장 먼저 뭘 해야 할까? 브레이크를 밟는 건 정답이 아니다. 그보다 먼저, 액셀에서 발을 떼야 한다. 작년 11월, 택시(전기차)가 담벼락을 들이받은 사고에서도 운전자는 “브레이크가 듣지 않았다”며 급발진을 주장했지만 페달 블랙박스를 분석한 결과 가속 페달을 밟는 ‘페달 오조작’이었다. 자신이 브레이크라 생각해 밟는 페달이 액셀일 수 있으니 우선 발을 떼어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페달 오조작으로 인한 사고가 늘자 지난달 장애물과 1~1.5m 거리에서는 가속 페달을 밟아도 느리게 움직이거나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주세요’라고 경고하는 안전장치 장착을 의무화했다.

◇3정을 지켜라

교과서가 중요한 수능, 기초 체력이 중요한 운동처럼 운전 역시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보다 느린 속도에서도 차가 휙 돌기 때문에 정속 주행은 필수. 빗길과 빙판길에서는 평소보다 속도를 줄이고, 앞차와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차량 내부 정리정돈은 외부 세차보다 더 중요하다. 먹다 버린 캔, 껌통 같은 게 브레이크 아래에 끼는 사고가 언제나 남의 일일 수만은 없다. 급발진 사고를 우려해 설치하는 페달 블랙박스(풋캠) 역시 제대로 고정되지 않을 경우 페달 밑로 굴러떨어질 수 있다고.

양발 운전 역시 위험하다. 이번 실험에서 양발로 액셀과 브레이크 페달을 함께 밟아봤다. 왼쪽 발이 익숙하지 않아 멈추는 거리를 조절하기 어려웠고, 벽에 부딪힐 것 같은 상황이 되자 자연스럽게 오른쪽 발에 힘이 들어갔다. 양발 중 액셀에 올려둔 발의 힘이 더 세다면 브레이크만 밟았을 때보다 달려나가는 힘이 클 수밖에 없다. 한 차량 커뮤니티 조사에서 “양발 운전을 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18% 수준. 이들은 “양쪽 발로 운전하는 게 더 익숙하기 때문에 조작도 잘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상 상황에서도 오른쪽 발은 움직이지 않고, 왼쪽 발에만 강한 힘을 줄 수 있을까?

주행 실험을 하기 전 차량을 점검하는 박상현 아주자동차대 교수와 전문가들. "여름 장마철이 시작되기 전과 겨울이 오기 전, 최소 두번은 차량을 점검해야한다"는게 안전운전을 위한 기본이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정기 점검은 장마철이 오기 전, 겨울이 오기 전 해마다 두 번은 필수. 장거리 운전을 앞두고 있다면 기본 점검을 추천한다. 직접 보닛을 열어본 적도 없고, 공기압이나 워셔액을 체크하는 법도 모른다면 ‘내가 길 위의 위협은 아닐까’ 반성해 보시길. 오는 24~26일 국내 5개 자동차 제작사(현대·기아·한국GM·르노코리아·KG모빌리티)가 제공하는 차량 무상 점검 서비스를 받는 것도 방법이다.

우리나라는 인구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자가 5.6명으로 OECD 평균(5.3명)보다 많다. 교통사고로 인한 보행 사망자 비율은 35%로 OECD 평균의 2배나 된다. 교통사고가 길을 걷던 누군가의 삶까지 앗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피해자가 되느냐, 가해자가 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휴가철에 안전 운전을 바라며, 이 기사 간수해 두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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