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한가족

박준 시인 2024. 7. 20.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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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박준의 마음 쓰기] (8)

어릴 적 제가 살던 동네에는 ‘고양이 할아버지’라는 어르신이 계셨습니다. 양장에 중절모를 즐겨 쓰셨고 가까이 곁을 스치면 청량한 은단 향이 은근하게 배어나던 분이었습니다. 고양이 할아버지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언제나 할아버지 걸음 뒤를 유유히 따르던 고양이 때문이었습니다. 할아버지와 고양이는 동네 곳곳을 함께했습니다.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서도, 잡화와 식료품은 물론 간단한 안주를 만들어 팔던 수퍼마켓 평상 위에서도, 철물점이나 정육점에서도 할아버지를 따라나선 고양이를 볼 수 있었으니까요.

반려묘와 함께하는 삶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요즘이지만 이삼십 년 전만 해도 도시의 공동주택에서 사람이 고양이와 함께 사는 일은 다소 이례적이었습니다. 게다가 할아버지의 고양이는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모종이 아니라 길고 윤기 나는 털을 지녔고 빛깔 또한 회색과 푸름이 오묘하게 섞여 있어 여러 사람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고양이든 강아지든 종(種)을 나눠 그 가치를 달리 여기는 것은 안 될 일이지만 당시 저도 어린 마음에 할아버지의 고양이를 한번 안아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사람들에게 고양이를 만지는 일을 허락하지 않았고 고양이 또한 살갑게 다가오는 법이 없었습니다.

동네 사정에 밝은 옆집 아주머니 말로는, 고양이는 할아버지의 딸이 키우던 것이라 했습니다. 그 딸이 혼인하면서 미국 이민길에 올랐고, 그래서 할아버지 집으로 오게 됐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부터 할아버지 뒤를 따르던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구태여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유일한 가족이 미국보다 더 먼 곳으로 떠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동네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고양이 할아버지라 불렀습니다. 가족은 언제까지나 함께하는 것이니까요.

일러스트=유현호

고양이를 사랑한 또 다른 인물, 바로 조선의 19대 임금 숙종입니다. 어느 날 숙종은 궁궐 밖으로 행차를 나섰다가 굶주린 누런 고양이를 발견합니다. ‘덕’이라 이름을 지어주고는 궁으로 데려와 함께 살지만 얼마 가지 않아 새끼를 낳고 죽습니다. 숙종은 정성스레 덕을 보내주고 덕의 새끼를 돌봅니다. 이름은 ‘손’이라 지었고요.

국정을 살필 때도 손을 곁에 두었고 침소에 들 때도 함께했습니다. 당시 왕은 독상으로 혼자 밥을 먹었지만 유일하게 손은 겸상할 수 있었다 합니다. 이런 기록은 실학자 이익의 ‘성호사설’에 잘 기록돼 있습니다. 더불어 고양이의 특성까지도요. “여러 해를 함께 친하게 지냈다 해도 하루아침만 제 비위가 틀리면 갑자기 아는 체하지 않는다.”

1720년 숙종은 세상을 떠납니다. 신기한 것은 숙종을 보낸 날부터 식음을 전폐한 손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주인 뒤를 따랐다는 것입니다. 당대의 문신 김시민은 이 과정을 저서 ‘동포집’에 기록했습니다. “승하 소식이 당도하자 손은 먹지 않고 삼일을 통곡했다. 밥에 이미 뜻이 없는데 고기인들 먹을까. 그 소리 몹시 슬퍼 차마 듣지 못하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물로 옷깃을 적셨다.” 이후 손은 숙종이 묻힌 명릉 근처에 묻히게 됩니다. 가족은 언제까지나 함께하는 가족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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