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같은 황정민의 ‘맥베스’…이 부부가 잠못드는 이유

유주현 2024. 7. 20.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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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사진 샘컴퍼니]
올해 연극계는 셰익스피어 천하다. 지금 신시컴퍼니의 ‘햄릿’과 국립극단의 ‘햄릿’이 맞붙고 있고, 10월 예술의전당도 ‘블루칩’ 신유청 연출과 거물급 캐스팅이 거론되는 ‘햄릿’을 예고했다. 이런 가운데 황정민의 ‘맥베스’(7월 13일~8월 1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까지 끼어들었으니, 셰익스피어 대전이 벌어진 셈이다. 지난 주 막 올린 ‘맥베스’는 영화 ‘서울의 봄’의 전두광 역으로 정점을 찍은 황정민의 무대 귀환인데다 김소진·송일국·남윤호 등 호화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으며 이미 전석매진 초읽기 상태다.

‘리차드 3세’(2018, 2022) ‘오이디푸스’(2019) ‘파우스트’(2023) 등 고전을 비틀지 않고 세련되게 포장해 쉽게 보여주는 샘컴퍼니(대표 김미혜) 색깔 그대로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폐막식을 총연출했던 양정웅 연출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스케일을 십분 활용해 한편의 대작 오페라 같은 무대를 구현했다. 세트와 조명·음악·영상·배우가 각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따로 뗄 수 없는 거대한 그림을 함께 그리는 듯, 종합예술이 따로 없었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사진 샘컴퍼니]
일본 아티스트 요시다 유니가 작업한 예술적인 포스터가 예고하듯, 황정민과 김소진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황정민은 직진한다. 전작인 ‘리차드 3세’처럼 극단적인 캐릭터는 아니다. 맥베스를 두고 “구청장이 갑자기 대통령이 된 셈”이라던 그의 말처럼, 평범한 남자가 주변의 부추김 탓에 욕망에 치달아 살인을 저지르고, 권좌에 앉고 나니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는 모습을 또박또박 그려낸다. 김소진은 조금은 더 표현주의적이다. 특유의 몽환적인 존재감으로 20여명 남자 배우들 무게를 홀로 감당하면서, 유유자적 부유하듯 레이디 맥베스로 떠오른다.

하지만 이 무대의 원톱이라면 여신동의 미술이다. 화려한 성이 아니라 차디찬 콘크리트로 마감된 커다란 창고 같은 모노톤의 세계에서, 산 자는 모두 검은 옷을 입었다. 연회 테이블에 오른 음식들은 하얀 석고상같다. 아름답지만 먹을 수 없다. 잿빛 공간에 문득문득 깃드는 핏빛 조명과 거대한 라이브 영상은 불안한 내면을 극대화 시킨다. 죄를 짓고 권력을 쥔 자의 요동치는 심장소리를 전쟁을 알리는 북소리처럼 디자인한 케이헤르쯔의 사운드도 긴 잔상을 남긴다. 맥베스 부부가 잠못 이룰 만도 하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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