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같은 황정민의 ‘맥베스’…이 부부가 잠못드는 이유
유주현 2024. 7. 20. 00:16
‘리차드 3세’(2018, 2022) ‘오이디푸스’(2019) ‘파우스트’(2023) 등 고전을 비틀지 않고 세련되게 포장해 쉽게 보여주는 샘컴퍼니(대표 김미혜) 색깔 그대로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폐막식을 총연출했던 양정웅 연출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스케일을 십분 활용해 한편의 대작 오페라 같은 무대를 구현했다. 세트와 조명·음악·영상·배우가 각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따로 뗄 수 없는 거대한 그림을 함께 그리는 듯, 종합예술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이 무대의 원톱이라면 여신동의 미술이다. 화려한 성이 아니라 차디찬 콘크리트로 마감된 커다란 창고 같은 모노톤의 세계에서, 산 자는 모두 검은 옷을 입었다. 연회 테이블에 오른 음식들은 하얀 석고상같다. 아름답지만 먹을 수 없다. 잿빛 공간에 문득문득 깃드는 핏빛 조명과 거대한 라이브 영상은 불안한 내면을 극대화 시킨다. 죄를 짓고 권력을 쥔 자의 요동치는 심장소리를 전쟁을 알리는 북소리처럼 디자인한 케이헤르쯔의 사운드도 긴 잔상을 남긴다. 맥베스 부부가 잠못 이룰 만도 하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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