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홍명보? ‘현대’가 문제다
“축구협회는 왜 저래?”
“정몽규 회장 물러나야 되는 것 아니야?”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나한테 물어보는 말이다. 대한축구협회(KFA)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이슈가 이처럼 오래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건 무척 이례적이다. 급기야 KFA에 대한 감사 및 해체를 요청하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까지 등장했다. 청원인은 “축구 국가대표팀 운영에 있어서 공정한 행정 절차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만을 생각하여 협회를 완전히 사유화하고 있는 대한축구협회장과 임원 및 임직원들로 인해 온 국민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에 대한축구협회 감사 및 해체를 요청하는 바”라고 청원 취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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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감독 선임 파행, 문체부도 조사
축구협회 32년 사유화가 근본 원인
」
KFA의 헛발질은 클린스만 감독 선임과 경질 과정부터 시작됐다. 정몽규 회장의 독단적 결정으로 영입한 클린스만은 최악의 경기력을 보인 데다 선수단 장악에도 실패했다. 손흥민과 이강인이 몸싸움을 벌였고, 한국은 아시안컵 결승에도 나가지 못했다. 경질 과정에서 거액의 위약금도 물어줘야 했다.
후임이 정해지지 않아 KFA는 황선홍-김도훈 두 감독을 임시 사령탑에 올렸고, 황 감독은 ‘투 잡’을 뛰느라 본업인 올림픽 진출에도 실패했다. 그 후에도 역량 있는 감독 후보는 어설픈 협상 끝에 놓쳐버렸고, 외국인 감독을 뽑는다고 했다가 절차를 무시하고 홍 감독을 선임했다.
울산 HD의 K리그1 3연속 우승을 향해 진군하던 홍 감독은 왜 말을 뒤집고 대표팀 감독을 수락함으로써 ‘국민 밉상’이 된 걸까. 확실한 건 홍 감독은 ‘독이 든 성배’를 마시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거다. 지난 6월 30일 K리그1 포항과 울산의 ‘동해안 더비’ 직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홍 감독은 대표팀 관련 질문이 나오자 작심한 듯 속사포를 쐈다. 요지는 ‘축구협회가 행정을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나는 대표팀 안 갈 거니까 울산 팬들은 안심해도 된다’였다. 현장에서 그 모습을 보면서 ‘중요한 경기 직전인데 저렇게 흥분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7일 뒤 홍 감독 선임 오피셜이 떴다. 그가 마음을 바꾸게 된 데는 축구계 막후 실세가 역할을 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사태는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문체부가 축구협회 운영과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축구협회는 올해부터 정부 유관기관에 포함돼 문체부가 일반 감사를 할 수 있다. 그러자 축구협회 고위 관계자는 “국제축구연맹(FIFA)은 각국 협회의 자율성과 정치적인 독립성을 강조한다. FIFA로부터 자격정지 등의 징계를 받으면 월드컵에 못 나갈 수도 있다”고 ‘반 협박성’ 발언을 했다.
문체부도 쿠웨이트·이라크·인도 등 FIFA의 징계를 받은 사례를 면밀히 검토했다. KFA 회장이나 임원에 대한 직접 조사보다는 유소년이나 여자축구 지원에만 쓰도록 내려준 돈이 천안축구센터 건설비 쪽으로 전용되지 않았는지 등을 살펴보겠다고 한다.
이 와중에 정 회장은 4선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체육단체장은 3연임부터는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출마할 수 있는데, 그 점수를 채우기 위해 뭐가 더 필요한지 꼼꼼히 체크하고 있다고 한다.
KFA 회장은 정몽준(1993~2008)-조중연(2009~2012)-정몽규(2013~현재)로 이어지는 현대가(家)에서 32년째 장기집권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 오너인 정몽규 회장은 4년을 더 하겠다고 한다. 국가 예산의 지원을 받는 스포츠 단체를 특정 대기업 일가가 이처럼 오랜 세월 사유화해도 되는가. 박지성·이영표·이동국 등 한국 축구 레전드들이 탄식하며 KFA의 근본적인 변혁을 촉구했다.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주역 구자철이 말했다. “이대로 가면 미래는 없다.”
정영재 문화스포츠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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