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희미한 채로 뚜렷한

2024. 7. 2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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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네거티브’ 시리즈 중 ‘어머니’. 2013년 ⓒ 장일암
네거티브 필름 속에 ‘어머니’가 있었다. 명암이 반대여도, 인화된 사진처럼 얼굴이 선명하지 않아도, 그 네거티브 속에서 익히 알고 있는 어머니의 미소가 뚜렷했다. 동정 깃의 색이 다른 저고리와 커다란 꽃무늬 치마. 어느 날 그 치맛자락을 붙잡고 어머니 뒤를 따랐던가.

사진가 장일암은 2013년 초,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구급 약품 상자 안에서 한 뭉치의 ‘네거티브(피사체의 색과 명암이 반대로 보이는 현상한 상태의 필름)’들을 발견하였다. 60년 전 이스트만 코닥(EASTMAN KODAK) 필름이니, 6·25전쟁 당시 참전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격전을 치르느라 미처 인화하지 못한 네거티브였다. 보존처리가 되지 않아 부분적으로나 전체적으로 훼손되고 퇴색해 이제는 인화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하지만 필름 속에는, 실루엣만으로도 눈치챌 수 있는 어머니가, 군복을 입은 아버지와 그의 전우들, 가족과 지인들, 이름을 알 수 없는 아이들, 피난민들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낡은 네거티브들이 여러 기억의 편린들을 떠오르게 했다.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사진 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창의적 시도를 선보여 온 작가는, 쓸모를 잃어버린 이 아날로그 네거티브를 디지털로 되살려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스튜디오용 라이트 박스 위에 네거티브들을 펼쳐놓고 근거리에서 한 커트씩 디지털 중형 카메라로 접사 촬영을 했다. 필름 속 피사체들과 함께 60년 세월을 통과해 온 네거티브의 얼룩지고 낡은 모습 그대로를 사진에 담았다. 아버지가 바라보고 사진 찍었던 대상들을 수십 년 후 그 프레임 그대로 아들이 다시 찍은 것이다. 이것이 2013년에 전시로 처음 선보인 장일암의 사진 시리즈 ‘희미한 네거티브’다.

두 손을 치마 위에 포개고 자신에게 카메라 렌즈를 맞추는 남편을 향해 웃음 짓는 이 ‘흐릿한’ 여인은, 사진가의 어머니만이 아니라 전후 세대 우리들의 어머니로서 전시를 보는 이들의 시선에 ‘뚜렷이’ 새겨졌다. 단순히 낡은 필름이 되살려진 것이 아니라, 개인사 속에 네거티브로 머물러있던 상이 실존했던 한국인의 한 초상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박미경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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