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에 사는 이진욱(40)씨는 반려견 꼬깜이(말티즈)와 한 달에 두 번씩 펫비치(Pet+Beach)로 여행한다. 강릉시의 강문해변부터 걸어서 50분가량 이어지는 안목해변이다. 이곳은 반려동물이 바다를 보면서 산책할 수 있도록 평탄하면서도 친환경적으로 조성, 지난해 강릉시의 시범운영 기간에만 4000여 명의 반려인이 찾은 명소다. 강릉시는 올해부터 안목해수욕장을 펫비치로 본격 운영하기로 했다. 이씨는 꼬깜이와 산책을 한 뒤 강문해변 앞 세인트존스호텔에서 쉰다.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객실(펫룸)에는 배변판과 배변패드, 전용 수건 등이 마련돼 있고 반려동물용 변기도 있다. 이씨는 “강아지가 해변을 산책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일상에서 쌓인 내 스트레스도 날아간다”고 말했다.
# 경기도에 사는 이모(35)씨는 반려견 다윈(골든리트리버)을 용인시에 있는 반려견유치원 ○○퍼피스쿨에 보낸다. 아침에 스쿨버스가 이씨가 사는 아파트 단지로 와 반려견을 데리고 가고, 저녁에는 데려다준다. 유치원엔 대형견 수십 마리가 온종일 마음 편히 뛰어놀 수 있도록 넓은 운동장이 마련돼 있다. 유치원에서 반려견들은 조련사로부터 사회화 교육과 어질리티(장애물을 넘는 스포츠) 교육도 받는다. 이씨는 “대형견은 활동량이 많아서 하루 최소 2~3시간씩 산책이 필요한데, 평일엔 출근하다 보니 쉽지 않았다”며 “유치원에 맡기면서 고민을 해결했다”고 전했다. 일주일에 세 번 맡기면 한 달에 100만원가량이 들어 웬만한 어린이 사립유치원비(지난해 월평균 55만원)보다 두 배가량 비싸지만, 이씨는 “자녀가 없고 이 정도는 지출해도 될 만큼 버니까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더니 요즘 정말 그렇다. 전국 어디를 가도 강아지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의 행복을 위한 장소·서비스·제품이 쏟아지는 ‘개편한 세상(?)’이 됐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반려인은 약 1500만 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28.2%에 달한다. 2015년엔 21.8%였다. 그러면서 반려동물 관련 산업을 뜻하는 펫코노미(pet+economy)도 연일 급성장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펫코노미는 2021년 3조7694억원에서 올해 4조9731억원, 2027년 6조55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유치원 한 달 100만원, 비싸도 인기
예전만 해도 펫코노미가 동물병원이나 사료·간식 같은 최소한의 동물권을 위한 일부 분야에 국한됐다면, 지금은 급증한 반려인의 다양한 수요를 고려해 숫자를 다 헤아리기 힘들 만큼 분야가 다양해진 것이 특징이다.
농림부는 지난해 반려인들을 대상으로 반려동물 관련 서비스 이용 경험을 설문 조사했는데, 이들은 조사 시점 기준 최근 1년간 병원(80.4%) 외에도 ▶미용(51.8%) ▶놀이터(33.2%) ▶호텔(16%) ▶유치원(10.6%) ▶펫시터(6.7%) ▶방문훈련(5.9%) ▶펫택시(5%▶장례(4.9%) 등을 이용했다고 응답했다(복수 응답).
이 같은 흐름을 빠르게 포착한 기업들은 이미 각 분야로 사업 확장에 여념이 없다. 대한항공과 제주항공 등은 보호자가 항공기에 탑승할 때 반려동물을 화물칸에 태울 수 있는 펫운송 서비스로 인기를 얻고 있다. 제주항공 기준 요금은 반려동물 한 마리당 국내선 2만원, 국제선 7만~10만원 정도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이 서비스 이용 승객에게 포인트 자동 적립 혜택을 주는 펫패스를 도입했고, 국내 항공사 최초로 반려견 전용 도시락 제공도 시작했다. 이렇게 항공기를 탄 반려동물은 휴가철에 제주도 등지에서 보호자와 함께 여행을 즐긴다.
소노펫클럽앤리조트 등 펫룸이 완비된 호텔도 늘고 있다. 1층엔 반려견을 위한 야외 운동장과 함께 멍푸치노(반려견용 커피)를 주문할 수 있는 카페가 마련돼 있다.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카페에서 보호자와 함께 커피 한 잔을 즐기는 반려동물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뒤에는 1층에 마련된 반려동물 전용 사우나에서 여독을 풀기도 한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펫호텔의 개념이 보호자가 반려동물을 며칠간 맡기는 공간을 넘어 보호자와 동물의 동반 숙박·여가 공간으로 넓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 반려동물의 웰다잉(well-dying)까지 책임지고 싶어 하는 보호자를 고려한 펫보험과 펫장례 서비스로도 돈이 몰리고 있다. 삼성화재와 현대해상 등 보험사들이 제공하는 펫보험 상품은 사람을 위한 일반 보험 상품처럼 반려동물의 일반 질병 또는 사고로 인한 수술 및 입원비, 접골술과 물리치료비 등을 보장한다. 비용을 추가하면 반려동물의 고령 치료비까지 보장한다. 보람상조가 지난해 출시한 스카이펫 등의 펫장례 서비스는 반려동물이 사망했을 때 사람처럼 장례를 치러준다. 보람상조 관계자는 “전국 17곳에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구축해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펫보험·펫장례 서비스로도 돈 몰려
반려동물을 기르면서 거주할 수 있는 펫주택도 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의 견우일가, 영등포구의 펫앤스테이 등이다. 통상 주택 임대인이 반려동물을 기르는 세입자를 받는 것은 꺼리는 경우가 많아 이사철마다 곤욕을 치르는 반려인이 많은데, 펫주택에 들어가면 고민이 해결된다.
펫코노미의 위력을 실감한 정부와 지자체들도 가세 중이다. 산림청은 경북 김천시에서 국립 최초 반려견 전용 야영장(국립김천숲속야영장)을 개장해 이달부터 운영 중이다. 야영데크 15면과 운동장 2면으로 최대 30마리까지 동시 이용이 가능하다. 충남 보령시는 지난달부터 대천해수욕장에서 펫비치를 운영 중이다. 간식 교환소와 반려견 샤워 시설 등이 설치됐다.
전문가들은 펫코노미의 성장과 진화가 이처럼 가속화하고 있는 현상을 사회적인 분위기 변화와 연결짓는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1인 가구 증가, 고령화, 저출산과 딩크(맞벌이 무자녀 가정) 확산 등으로 반려동물을 내 자녀로 인식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지출을 아끼지 않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호자가 자신을 반려동물의 ‘엄마’ ‘아빠’로 소개하거나, 동물의 이름을 지을 때 집안의 성씨나 돌림자를 붙이는 경우가 급증한 것도 그래서라는 얘기다. 이를 반영한 ‘펫 휴머니제이션’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반려동물을 사람과 동일시하고, 그에 맞는 권리와 대우를 제공하는 세태를 뜻한다.
다만 반려인의 이 같은 소비심리를 노린, 과도한 상술의 유행은 개선 과제로 꼽힌다. 예컨대 사람 것과 같은 성분의 영양·보습제 등에 ‘강아지용’ ‘고양이용’이라는 라벨 하나 붙었을 뿐인데 가격은 2~3배로 치솟는 식이다. 정부가 관련 유통 구조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입산 대비 국산 비중 확대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김성훈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펫푸드 등 반려동물 관련 시장은 아직 수입산 위주로 형성돼 국내 산업계가 많은 기회를 놓치고 있다”며 “기업들의 더 적극적인 상품·서비스 기획과 연구·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