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없던 전문 라이더 등장…음식 배달료 얼마면 될까 [이태환의 세상만사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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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환의 세상만사 경제학] 분업 고도화의 대가
여름밤. 땀은 나고 잠은 안 오고. 뭔가 시원한 것을 먹고 싶다. 스마트폰을 집어들어 눈꽃빙수를 주문한다. 아까 저녁에는 이 근처에 새로 들어왔다는 수제 햄버거를 주문해 먹었는데, 맛은 괜찮았지만 좀 지나치게 기름진 것이 아니었나 싶다. 배달된 빙수를 한입 크게 떠먹으며 쾌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낀다. 칼로리는 어떡하지. 내일부터 사흘 동안은 저녁에 샐러드만 먹어야겠다. 배달 말고 픽업으로.
초기에는 프로모션 차원 무료 서비스
배달서비스업의 빠른 성장과 함께 일반 소비자의 ‘먹거리 복지’ 역시 크게 향상되었다. 예전에 집에서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중국음식이나 피자, 치킨 등 극히 제한된 종류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커피나 팥빙수 등을 포함한 거의 모든 종류의 음식이 다 배달이 되고, 배달 방식의 옵션도 다양해졌다. 대면이냐 비대면이냐, 묶음이냐 단건이냐 등을 선택할 수 있고, 심지어 ‘집에서 먹으니 나무젓가락은 보내지 마세요’, ‘고춧가루는 빼주세요’라는 주문도 가능하다. 정말 멋진 신세계가 아닌가. 그런데 이 과정에서 수요 폭증과 함께 배달료가 오르는 것이 한동안 문제가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무료배달이 많았는데 팬데믹 이후 2,000원 정도의 배달료가 표준이 되었고, 거리가 좀 멀거나 주문량이 적으면 더 높아졌다. 지금은 3,000원이 대세다.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젊은이들은 이에 대응해서 배달음식 끊기 챌린지를 벌이거나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끼리 단톡방을 만들어 공동구매를 하기도 했다. 과연, 적정한 배달료는 얼마일까.
아무튼 팬데믹 전후 2년 사이에 한국 소비자들은 매우 독특한 경험을 한 셈이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어떤 가격이 단기간에 눈앞에서 두 배, 세 배로 뛰는 것은 드문 일이다. 존재하지 않던 서비스가 새로 생겼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독립된 서비스로 인식되지 않던 것이 별도의 시장을 가진 서비스로 분화되어 나온 것이다. 배달앱 등장 이전 중국음식이나 피자, 치킨을 배달하던 사람들은 해당 식당에 각각 고용되어 있었고, 배달료는 음식값에 포함되어 있었다. 배달앱 플랫폼이 만들어진 뒤에는 어느 식당에도 고용되지 않은 전문 라이더가 생겨났다. ‘음식배달업’이라는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새로운 노동시장이 열린 것이다. 시장이 생기면 가격이 형성된다. 이 가격은 최저시급을 고려할 때 처음부터 건당 5,000원 근처였어야 했는데, 새로 도입된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저항감을 줄이려고 플랫폼 업체가 프로모션을 통해 낮은 가격에서 출발해서 점진적으로 인상한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상품이 등장하면서 가격이 출렁이는 것은 주식시장에서의 기업 공개, 즉 IPO에서도 관찰된다. 새로운 기업의 주식이 처음으로 상장될 때 투자자들과 언론의 관심은 온통 ‘상장 첫날 가격 상승률이 얼마일 것인가’에 집중된다. 이제까지 거래된 적이 없는 주식이다 보니 수요와 공급이 만나 형성되는 시장가격이라는 것이 존재한 적이 없고, 이 가격을 사전에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상장 초기에는 큰 폭의 가격변동이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주식시장보다 훨씬 작은 규모에서는 텀블벅같은 플랫폼에서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매일매일 새로운 잠재적 소비자를 만난다. 수요가 몰려 펀딩에 성공하는 프로젝트도 많지만, 실패해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회계법인이나 증권회사, 스타트업 종사자, 작가들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그들이 시장에 내놓으려 하는 새로운 주식, 새로운 상품이 소비자들에게 얼마의 가치를 인정받을지, 자신들이 설정하는 가격에 따라 수요가 얼마나 발생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경제학자들도 가격탐색모형이나 가격결정모형을 이용해 새로운 상품의 가격 변동 양상을 연구한다.
분업, 인류사 전체 생산성 향상 이끌어
배달플랫폼과 라이더들의 등장은 사실 크게 보면 경제발전 과정의 일부분이다. 음식배달을 경제발전에 연결짓다니, 너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분업의 고도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엄연한 사실이다. 배달서비스처럼 처음에는 별도의 시장이 없던 것이 나중에 분리되어 독립하는 경우를 우리는 한국경제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많이 보아 왔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어머니께서 형광등을 사시면 그걸 판 사람이 집에 와서 갈아주곤 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동네 카센터에 가서 엔진오일을 사면 그 자리에서 추가비용 없이 오일교환을 해 줬다. 요즘은 이런 서비스들이 출장비라든가 공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모두 별도의 가격표를 달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형광등이나 자동차 부품을 인터넷 최저가로 구매한 다음 자기가 직접 교체할 것인지, 아니면 교체 서비스까지 구매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고, 시장이 분화된 것이다. 시장이 분화된다는 것은 생산과정이 좀 더 잘게, 여러 단계로 나눠진다는 뜻이다. 이렇게 작게 나눠진 단계를 특정 사람이 맡아서 그 일만 계속 하면 전문성이 높아지면서 전체 생산과정의 효율성이 올라간다. 바로 분업의 힘이다.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의 대표작 『국부론』의 제1장 첫머리에는 핀 공장의 분업 사례가 적혀 있는데, 혼자서는 하루에 20개 만들기도 어려운 핀을 열 명이 분업해서 만들면 생산량이 하루 48,000개로 늘었다고 한다. 음식배달 서비스가 가격표를 따로 달고 라이더의 노동시장이 새로 열리는 것도 결국 분업이 조금 더 심화된 것일 뿐이다. 분업은 수천 수만 년의 인류 역사 전체를 관통해 온 생산성 향상 방식이다. 21세기 한국경제에서도 분업의 고도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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