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투자는 이스라엘 생존법…전쟁통에도 혁신 예산은 늘렸다”

최준호 2024. 7. 2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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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국가 선봉장’ 알론 스토펠 이스라엘혁신청 의장
알론 스토펠 이스라엘혁신청 의장이 지난 16일 열린 ‘2024 한국-이스라엘 이노베이션 데이’ 행사에서 창업생태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이스라엘의 별칭은 ‘스타트업 네이션’(Start-up Nation), 즉 ‘창업국가’다. 스타트업 수는 인구 1400명당 1개로 세계 1위,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스타트업 수는 135개로 미국·캐나다·중국에 이어 4위다. 이스라엘 내에는 인텔과 삼성전자 등 400개가 넘는 글로벌 기업 연구개발(R&D) 센터가 있다. 대부분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을 인수한 뒤 R&D 센터로 바꾼 형태다. 1인당 GDP 5만1000달러(2023년 기준)의 이스라엘 경제를 받쳐주는 원동력이다.

이스라엘의 생존 환경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성서 표현과는 정반대다. 인구 920만 명. 면적 2만2145㎢로 우리나라 경상남북도를 합친 정도의 소국이다. 영토의 절반을 사막이 차지하고, 중동 아랍국가들에 둘러싸여 한시도 편할 날이 없다. 최악의 환경에서 세계 최고의 경제 성과를 내는 비결은 무엇이고 한국 경제가 배울 점은 무엇일까. 그 해답을 얻기 위해 방한중인 알론 스토펠(56) 이스라엘혁신청 의장을 지난 16일 판교 성남글로벌융합센터에서 만났다.

이스라엘혁신청은 ▶스타트업의 차별화된 기술에 투자하면서 혁신기술 기반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양자과학기술·인공지능·바이오 등 미래기술에 투자하며 ▶신기술을 위한 정부 내 규제 개혁을 주도하는 것을 주업무로 하는 국가기관이다. 이스라엘의 과학기술 정책을 이끄는 수석과학자(Chief Scientist)도 겸하고 있는 스토펠 의장은 인터뷰 초반부터 놀라운 말을 했다. “9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는 하마스와의 전쟁을 치르느라 다른 분야의 예산은 줄이면서도 R&D와 창업을 지원하는 혁신청의 예산은 오히려 늘렸다”는 것이다.

브리지 펀드, VC 매칭 등 1조원 넘게 투자

Q : 이스라엘 경제의 힘은 어디서 나오나.
A : “R&D와 스타트업, 기업공개(IPO) 등의 통계를 보면 이스라엘이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의 리더임을 알 수 있다. 스타트업, 특히 정보기술(IT) 분야야말로 이스라엘 경제의 핵심이다. 이스라엘 국내총생산(GDP)의 20%, 수출의 50%를 차지한다. IT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도 전체 인구의 12%나 된다. 이들이 전체 소득세의 30%를 내고 있다. 이 때문에 아무리 전시 상황이라도 하이테크 분야는 반드시 지원을 해야 한다는 걸 정부는 잘 알고 있다. ”

Q : 전쟁 수행에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되고 있을 텐데 여력이 있나.
A : “전시 상황이라 다른 부분들에 대한 예산은 삭감했지만, 혁신청에 대한 예산은 오히려 10억 세켈(약 3795억원) 이상 늘렸다. 이게 정부가 시장에 보내는 시그널이기도 하다. 전쟁 초기에 혁신창업 생태계가 많이 어려워진게 사실이다. 스타트업에 종사하던 예비군들이 사병과 장교 신분으로 전쟁에 합류하느라 기업 경영이 어려워지고, 계획됐던 투자 유치도 중단해야 했다. 이젠 좀 다르다. 아직 전쟁 중이긴 하지만 전장으로 갔던 예비군들도 돌아오고 있고 중단됐던 투자도 다시 살아나고 있다. 내 아들도 이스라엘 애플에서 일하는 전기분야 엔지니어인데, 전투병으로 참전했다가 최근 돌아와 직장에 복귀했다. 지난 분기부터는 줄어들었던 투자도 안정화 돼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스라엘 스타트업에 연간 투자되는 금액은 80억 달러(약 11조500억원)에 달한다. 최근 큰 딜(계약)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다음 분기에는 이런 수치가 더 안정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Q : 혁신청이 늘어난 예산으로 한 역할은.
A : “전쟁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발빠르게 내놨다. 첫째는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브리지펀드다. 혁신청이 기존 투자자들과 함께 6개월 미만의 딥테크 스타트업 250곳에 총 4억 세켈(약 1528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둘째는 ‘요즈마 2.0’이라 불리는 특별 프로젝트다. 정부가 총 6억8000만 세켈(약 2580억원)을 벤처캐피털(VC)에 투자하면, VC는 매칭 형식으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요즈마 2.0 펀드가 스타트업에 30센트를 투자하면, VC가 1달러를 추가로 투자하는 식이다. 이렇게 총 10억 달러(약 1조3800억원)의 자금이 스타트업에 들어가게 된다. 새로운 스타트업을 키우기 위한 인큐베이션 프로그램도 애초 계획보다 앞당겨 출범했다.”
와이즈만연구소 한 해 평균 100여건 특허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원래 요즈마펀드(Yozma Fund)는 이스라엘 정부가 1993년에 설립한 국부펀드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초기에는 정부가 자본을 제공하고, 민간 투자자들이 추가 자금을 조달하는 형태였다. 이스라엘 벤처캐피탈 시장이 발전하고 현재의 창업 생태계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를 더 진화시킨 것이 요즈마 2.0이다. 이런 노력은 이스라엘이 전쟁과 글로벌 환경의 변화로 인한 경제 난국을 극복하는 데 힘을 싣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스라엘의 GDP 성장률이 2023년 2.3%, 올해 1.5%수준까지 떨어졌다가 내년에는 4.5%로 빠르게 회복될 것으로 내다봤다.

Q : 이스라엘의 혁신 기술은 어디서 싹트나.
A : “연구소나 대학의 R&D에서 먼저 싹튼다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이 이런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면서, 또 그런 아이디어들이 시장에서 실패한 요인이 무엇이었는지를 파악해 개선하면서 기술이 자라난다. 어떤 경우엔 회사에 근무하면서 나온 아이디어가 새로운 스타트업 창업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주말 저녁 친구들과 모여 얘기를 나누다가 혁신기술의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다. 혁신기술은 이렇게 복합적인 메커니즘을 통해 만들어진다.”
‘R&D를 위한 R&D’는 적어도 이스라엘에는 없는 말이다. 적국에 둘러싸여 살아남아야 하는 그들에게 R&D의 결과물은 국가 생존과 번영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의 강점은 R&D의 결과물인 혁신 기술이 창업과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생태계를 성공적으로 구축한 데 있다.

그 비결을 묻자 스토펠 의장은 ‘TTO (기술이전 사무소·Technology Transfer Office)’를 들며 “이스라엘의 모든 연구소와 대학은 TTO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을 지원하고 협업하면서 R&D가 상용기술화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혁신청의 주요 역할” 이라고 답했다.

스톨프 의장이 말한 기술사업화의 대표적 성공사례로는 와이즈만연구소를 꼽는다. 세계 5대 기초과학연구소 중 한 곳인 와이즈만연구소는 한 해 평균 100여 건의 특허를 통해 지식재산을 사업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구기능과 별도로 독립 운영되는 기술이전회사 예다(YEDA)를 통해 세계 74개국에 기술을 수출하고 있다. 예다는 1959년에 설립된 세계 최초의 연구소 산하 TTO이기도 하다.

Q : 『스타트업 네이션』(Start-up Nation)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기업은 스타트업에만 머물러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A : “그간 성장해온 스타트업들이 중견·대기업으로 갈 수 있도록 육성되고 있는 단계에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스타트업 네이션’에서 ‘유니콘 네이션’으로 진화하는 전환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유니콘은 원래 상장 전 기업가치가 10억 달러를 넘는 경우를 말하는데, 내가 말하는 이스라엘의 유니콘은 연간 매출 10억 달러를 넘는 기업들이다.”

Q : 이스라엘이 한국과 협력하면 어떤 강점이 있을까.
A : “한국은 기술 강국이다. 자동차·반도체 등의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한국의 첨단 기술 역량과 이스라엘의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문제 해결 사고를 결합해 양국 기업 간 세계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협력 관계를 형성하는 게 이번 방한의 주목적이다. 특히 반도체 산업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말하고 싶다. 반도체산업은 이스라엘과 한국이 상호 보완적이다. 아시다시피 한국의 반도체 제조기술은 세계적이다. 이스라엘엔 반도체 설계 디자인에 종사하는 인력만 4만 명에 달한다. 양국이 이런 강점들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알론 스토펠(Alon Stopel) 1968년생. 테크니온공대 전기공학 학부를 졸업하고 텔아비브대에서 경영학으로 석사학위를, 전자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스라엘 국방부 군사 무기 및 기술 인프라 연구개발국을 거쳐, 다국적 방산 및 항공우주 기업 엘빗시스템스의 부사장 겸 수석과학자를 지냈다. 지난 2월 이스라엘혁신청 의장으로 취임했다.

최준호 과학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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