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알고리즘이 불러낸 획일성·동질성의 세계

2024. 7. 2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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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터월드
필터월드
카일 차이카 지음
김익성 옮김
미래의창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거의 자동적으로 우리의 손이 찾아가는 곳은 아마도 스마트폰일 것이다. 그 사이 페이스북에는 어떤 게시물이 업로드됐는지, 인스타그램에는 또 어떤 사진들이 새로 올라왔는지 확인부터 해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에는 피드가 주로 시간순으로 배열됐지만 플랫폼 사용자가 수십억 명으로 늘어나면서 이젠 콘텐트들이 거의 알고리즘 추천순으로 배치된다.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 디지털 플랫폼들의 ‘추천 알고리즘 유령’은 하루 종일 우리 곁을 맴돈다. 나의 의지와는 크게 상관없이 이들은 각종 추천 콘텐트와 추천 상품들을 쏟아 낸다. 우리는 이들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강요하는 것들에 순치된 지 오래다. 내가 주체가 돼 살아가는 건지, 아니면 누군가 나를 끌고 가는 길을 따라 수동적으로 살게 되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필터월드』는 바로 이런 문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지를 안내하는 책이다. 책 제목인 필터월드는 방대하고 널리 분산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얽혀 있는 알고리즘 네트워크를 설명하기 위해서 지은이가 만들어 낸 용어다.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 소셜 미디어가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비평하는 칼럼 기고자인 지은이 카일 차이카는 현대인이 필터월드에 포위돼 있다고 본다. 지은이는 “이 책의 목적은 단순히 필터월드의 윤곽을 그려 보이고 그 결과를 밝혀내는 것을 넘어서 필터월드를 해체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1789년 요제프 라크니츠의 ‘기계 투르크인’(The Mechanical Turk) 상상도. 이 기계는 체스를 두는 자동인형으로 큰 화제가 되었지만, 실제는 아주 작은 사람이 상자에 들어가 있는 속임수였다. 지은이는 추천 알고리즘을 “기계 투르크인의 최신판”이라 말한다. [사진 미래의창]
현재 페이스북은 전 세계에 30억 명에 가까운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20억 명, 틱톡은 10억 명, 스포티파이는 5억 명, 트위터(현 X)는 4억 명, 넷플릭스는 2억 명을 넘는다. 수억 명의 사용자들이 플랫폼에서 서로 교류하고 수동적으로 소비할 때마다 추천 알고리즘의 영향을 받게 된다.

알고리즘은 무더기로 쌓여 있는 사용자 데이터를 받아들여 그 데이터를 일단의 방정식을 거쳐 처리한 후 현재 목적에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결과를 도출해 내는 디지털 메커니즘이다. 구글 서치는 현대식 알고리즘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은행은 기계학습을 통해 누가 대출금을 받게 될지를 결정한다. 스포티파이는 과거 행동 데이터를 활용해 내가 듣고 싶어 하는 음악가나 음반을 예상한 후 그 음악가와 음반으로 내 화면을 가득 채워 놓는다. 인스타그램은 알고리즘이 내 관심사라고 여기는 내용을 위에서 아래로 줄줄이 늘어놓는 무드 보드 형식으로 보여 준다. 틱톡은 개인 맞춤형 영상 피드를 보여 주고 데이팅 앱들은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매칭해 주고, 넷플릭스는 사용자가 보고 싶어하는 영화를 추천한다.

이런 방식의 서비스는 편의성은 높일 수 있겠지만 반대로 사용자들은 수동성과 동질성, 획일성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필터월드에서 어떤 사람들은 이 때문에 심각할 경우 심신쇠약을 겪을 정도로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한다. 사용자들이 제공하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이용함에도 불구하고 알고리즘 피드는 종종 엉뚱한 사람과 연결해 주거나 잘못된 콘텐트를 추천해 주고 원치 않는 습관을 부추기기도 한다.

우리를 대신해서 수많은 결정을 내려 주지만 사용자에게는 이 네트워크에 반발하거나 그 작동 방식을 바꿀 방법이 거의 없다. 그 내용을 깊이 파고들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피드가 추천하는 것을 아무 생각 없이 따르는 경향이 강하다.

필터월드에서는 개인의 취향을 만드는 일은 권장되지 않는다. 수많은 소비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현혹되어 소비를 호도당하고 자본의 지원을 받아 끝없이 쏟아지는 특정 문화 피드에 질식당한다. ‘좋아요’의 수나 관심도 같은 기준이 문화적 창작물 자체의 평가나 가치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 과정에서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더욱 커져 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무소불위의 막강한 알고리즘에 규제를 가하고 있지만 얼마나 실질적으로 효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은이는 지금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큐레이션, 즉 개인적 취향을 구축하고 전개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각자가 알고리즘 추천의 도움을 받지 않고 동시대의 문화를 따라가고 자신의 통제권을 되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확신한다. 무엇보다 개인적인 선택을 내리고 의도적으로 자기가 몰두할 수 있는 문화적 대상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권한다. 우리도 지은이가 했던 것처럼 알고리즘 청소를 시도해 볼 만하다. 정보다이어트를 실제로 실천하는 것은 어렵지만 한 번쯤은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지적된 문제의식들을 잘 이해하고 따라가다 보면 필터월드에서 자유로워지는 날이 의외로 빨리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한경환 자유기고가 khhan8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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