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노인의 이동권도 고민해야 한다
초고령사회, 韓 대중교통은 준비돼 있나
운전 제한과 함께 안전한 이동 고민해야
얼마 전 도쿄의 한 역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앞 손님은 보행보조기에 의지해 있는 할머니였다. 역 근처라 그런지 택시 두 대가 금세 왔다. 먼저 온 택시에서 기사가 내리더니 할머니의 승차를 돕고 보행보조기를 뒤 트렁크에 넣었다. 할머니가 탄 택시가 출발하고 나도 곧 그다음 택시에 승차했다.
궁금해서 내가 탄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았다. 앞의 택시 기사가 할머니의 승차를 능숙하게 돕던데, 그게 택시 기사 매뉴얼에 따른 행동인지 아니면 그 기사가 특별히 친절한 사람이어서 그런 건지. 기사의 대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꼭 한국 사회에 전하고 싶다. “택시도 전철이나 버스처럼 공공 교통수단이기 때문에 택시 기사도 그에 준해서 행동해야 합니다. 앞의 택시 기사가 할머니를 도운 건 우리 회사 지침에도 있는 사항입니다.” 그 기사 말에 따르면, 도움이 필요한 승객으로 보이면 일단 차에서 내려 승객에게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승객의 요청에 따라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이 지침이라고 한다.
처음 일본에 갔을 때, 버스에 장애인 탑승을 돕는 장치가 설치돼 있고 버스 기사가 그 장치를 이용해 장애인의 승하차를 돕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 일본이 부러웠는데, 최근에 한국 버스에도 같은 장치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감개무량했다.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일본 택시 기사의 말은 장애인에 한정 짓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승객”을 돕는 것이 지침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고령의 노인도 도움이 필요한 승객이다.
해마다 고령 노인의 수가 늘어 초고령사회를 눈앞에 둔 한국이지만 노인의 이동권에 대해서는 다들 별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는 내 어머니가 혼자 버스에 탈까 봐 늘 걱정이다. 어머니 몸이 어머니 마음 같지 않을 테니 버스에 타는 것은 위험하다고, 혼자 이동하실 일이 있으면 꼭 택시를 타라고 말씀드린다. 혹시라도 버스에서 넘어지면 어머니에게도 큰일이지만 운전기사나 다른 승객에게도 큰 폐가 아닌가. 그런데, 이런 생각이 과연 옳은 것일까, 문득 의문이 든다.
고령의 노인이 운전대를 잡는 것은 더 위험하다. 혼자 이동해야 하는데 전철역이 집에서 멀면 택시나 버스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앱으로 택시를 호출하는 세상에서 고령의 노인에게는 그 앱이 까다로운 코딩만큼이나 어렵다. 경제적 이유로 택시를 탈 수 없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버스는 절대 타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이제 그 노인은 누군가가 동행하지 않으면 장거리 외출이 불가능하다.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를 뱅글뱅글 걸어 다닐 뿐이다.
운 좋게 택시를 잡아도 노인은 느릿느릿 타고 내리게 된다. 어떨 때는 뒤차가 경적을 울리기도 한다. 차에서 내려서 노인의 승하차를 돕는 친절한 기사가 없지는 않지만 아직은 드물다. 내 아버지는 생의 마지막 몇 해 파킨슨병으로 고생했다. 병이 심해지기 전에, 그래서 아버지가 혼자서 걸을 수 있을 때도 동작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아버지를 모시고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나는 늘 아내에게 운전을 부탁했다. 아버지가 최대한 빠르게 차에서 내릴 수 있도록 내가 돕고, 우리가 내리자마자 아내가 차를 빼야 했기 때문이다. 빨리 차를 빼라고 경적을 울리는 사람들에게 나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내 잘못이 아니다.
그동안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노인의 이동권에 대해서는 너무 고민이 없었다. 버스에 노인이 타는 게 위험한 게 아니라 버스가 너무 덜컹거리고 너무 빠르게 달리는 게 위험한 건 아닐까? 65세 이상 노인은 지하철 운임이 무료다. 차라리 유료로 전환하고 그 수익으로 좀 더 안전한 버스의 수를 늘리는 건 어떨까? 한국의 택시 기사도 노인 승객의 승하차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 도움이 필요한 승객을 돕느라 버스 운행이 지연될 때, 노인이나 장애인의 승하차로 앞차가 잠시 정차해 있을 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가 빈발하면서 고령 노인의 운전을 제한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이 일에는 노인분들이 협조해 주셨으면 좋겠다. 그러나 동시에 노인의 이동권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겠지만 점진적인 개선은 가능할 것이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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