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노석준의 메타버스 세상...미켈란젤로의 증강현실-②

성도현2 2024. 7. 19.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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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 본인 제공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 전문가. 고려대 겸임교수 역임

치밀한 계산으로 구현된 증강현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의 벽화는 오늘날의 메타버스 기술과도 큰 연결점이 있다. 미켈란젤로의 벽화와 천장화를 보면 놀랍게도 현대 디지털 시대에 주목받는 기술 중 하나인 '증강현실'의 기술적 시도가 보인다.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은 실제로 존재하는 환경에 가상의 사물이나 정보를 디지털로 합성해 원래의 환경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융합적 방식이다.

시스티나성당의 경우는 성당이라는 실재하는 물리적 공간에 미켈란젤로의 벽화와 천장화에 그려진 가상적 세계와 공간이 융합됨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융합 공간이 탄생하는 증강현실을 구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미켈란젤로는 성당 공간의 물리적 환경 안에서 자신이 창조하려는 가상의 세계와 등장인물들, 사물들을 결합하기 위해 매우 다양한 요소를 살피고 분석했다. 건축적으로 계획된 동선, 공간의 크기, 벽의 크기와 모양, 천장의 크기와 모양 등 성당 공간의 모든 물리적 제한과 요소들을 분석하고 고려했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어느 곳에 어떤 그림이 그려져야 하는지, 어떻게 배치되어야 하는지 등을 치밀하게 계산하면서 벽화와 천장화를 창조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미켈란젤로의 벽화와 천장화가 완성될 무렵에는 성당이라는 건물이 가지고 있는 실제의 물리적 물성은 점점 사라지고 오직 건물의 기능적 요소인 동선과 공간의 크기와 형태만 남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그의 벽화와 천장화를 통해 가상적 물성이 입혀진다. 즉, 실제로 존재하는 건축적 공간의 스케일과 공간의 성질은 미켈란젤로가 만들어낸 가상적 스케일과 가상적 공간을 통해 원래의 성질은 잃어버리게 된다. 게다가 이런 가상적 공간은 실재의 공간이 갖는 크기나 구조 등을 초월한 무한의 스케일로도 확장될 수 있다.

관람자들은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벽화들로 완전히 둘러싸인다. 이는 곧 가상현실의 공간에 둘러싸이는 것을 의미한다. 크기, 구조, 재료 등 물리적으로 제한된 현실의 건축물이 가상공간으로서의 크기, 구조, 재료 등의 성격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로써 관람자는 실재하는 공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가상현실의 공간 안에서 가상의 스토리를 경험하게 된다. 돌로 만들어진 벽은 초원이 되거나 물가가 되기도 하며, 천장은 우주의 대기가 되기도 한다. 즉 원래의 물성이 가상적 물성과 만나 증강현실 차원의 물성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시스티나성당이라는 완벽한 물리적 공간에 미켈란젤로의 천재적 능력으로 창조된 성경의 스토리가 융합됨으로써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가상현실의 세계와 공간이 창조되었다는 것은 메타버스의 미래를 설계할 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현실에서 실재하는 공간의 구조와 크기 등 물리적 특성, 그리고 공간이 갖는 고유의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면 가상 세계로의 몰입 속도를 높이고, 가상 세계의 공간 활용도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된다. 그 결과 참여자가 마치 그 안에서 함께 존재하고 활동하는 것처럼 느끼는 최고의 가상현실이 펼쳐질 수 있다.

증강현실로 로그인을 설계하다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은 그가 창조한 그림 자체의 예술적 완성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스티나성당의 벽화와 천장화를 통해 관람자들이 자신이 창조한 가상의 세계에 접속해 마치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생생하게 경험하도록 설계했다.

앞선 설명처럼 가상 세계 속에서 시스티나성당이 원래 물리적 공간의 스케일과 성질을 잃는다고 해서 성당이라는 공간 자체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스티나성당 자체의 물리적 요소는 사람들이 미켈란젤로가 창조한 가상의 세계를 경험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결국 성당의 물리적 공간은 현대의 고글이나 구글 안경처럼 가상현실에 로그인하기 위한 보조 장치인 최첨단 디지털 매체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성당의 물리적 크기와 구조, 그곳에 그려진 벽화의 크고 작음을 조절해 증강현실을 설계했다. 증강현실의 요소들은 자신이 창조한 가상적 공간에 관람자가 더 빨리 몰입하고 접속하도록 만드는 장치로 활용했다. 즉, 증강현실은 관람자를 특정한 포인트로 이끌어주고 움직이게 하면서, 어느 시점에서는 관람자를 정지시켜 가상 세계의 향연에 몰입해 로그인하게 만드는 최고의 장치였다.

로그인된 관람자는 미켈란젤로가 창조한 가상 세계 속 일부가 된다. 아날로그적 방식의 접속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후 관람자들은 미켈란젤로가 탄생시킨 기독교적 가상 세계를 경험함으로써 마침내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에 감정적으로 이입되고 공감하게 된다. 관람자는 그림 속 가상의 세계에 함께 참여하며 미켈란젤로가 의도한 감성적 공감과 기독교의 사상적 교훈을 깨닫고 소통하게 되는 것이다.

천지창조

사람들이 그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성경의 스토리에 다시 접속하는 기억 회귀 장치로도 벽화와 천장화를 활용했다. 실제로 많은 관람자가 시스티나성당의 벽화와 천장화를 보는 순간, 과거에 그들이 가정이나 교회, 학교, 책, 영화 등을 통해 경험한 성경의 스토리를 기억해냈다.

이처럼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 가상 세계로 로그인한 관람자는 그림의 단순한 관람을 뛰어넘어 미켈란젤로가 창조한 가상 세계의 참여자로서 성경의 사건들을 간접 경험하게 된다. 이때 매우 흥미로운 점은 관람자들이 벽화에 그려진 각각의 캐릭터를 보는 순간 단순한 감동을 넘어 동기화(synchronization)되는 경험도 한다는 것이다.

관람자들은 천국에서 기뻐하는 이들을 보면서 희열의 눈물을 흘리고, 지옥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보면서 공포에 떨기도 한다. 심지어 미켈란젤로의 벽화에 나타난 등장인물들이 자신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때가 바로 그림 속 각각의 등장인물이 관람자의 아바타가 되는 순간이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메타버스 등 모든 디지털 세계의 가상공간은 현실과는 다른 차원의 세상이다. 그래서 어떤 특정 방식으로 접속하는 과정, 즉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인 가상의 세계로 들어서는 로그인의 과정이 필요하다. 미켈란젤로도 물리적 공간인 성당과 그의 작품들을 효과적으로 구성하고 장치함으로써 관람자들을 그가 창조한 가상 세계로 로그인하도록 이끌었다.

이러한 로그인 방식은 역사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발전됐다.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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