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건축가 김원의 세상 이야기 ⑤...오원 장승업의 추억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이에 연합뉴스 K컬처 팀은 독자 제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 독립기념관·코엑스·태백산맥기념관 등 설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삼성문화재단 이사, 서울환경영화제 조직위원장 등 역임
오래전 오원 장승업 화파전(吾園 張承業 畵派展)을 다녀왔다. 당시 나는 갑자기 생각이 난 김에 출근길의 자동차를 그쪽으로 돌렸다. 골목길 어귀에서부터 사람의 행렬이 이어진다.
웬일일까. 이 사람들이 다 간송미술관에 오원 장승업을 보러 왔다고?
반신반의를 하면서 사람들 사이로 차를 몰아 혹시라도 주차할 곳이 있으면 다행이고 없으면 돌아 나오느냐고 하는 셈으로 비탈길을 올라가니, 웬일로 주차안내원이 서 있고 건너편 성북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들어가라고 수신호를 보낸다.
마침 토요일이라서인지 학교 운동장에 아이들은 없고 자가용 자동차만 수십 대가 늘어서 있다. 한참을 들어가 맨 안쪽 빈자리에 차를 세우고 간송미술관으로 가니 그제야 사태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오원 장승업은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작가가 돼 있었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미술대 학생들의 단체관람,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한국화 팬들, 단체로 온 아주머니들, 진짜 화가같이 생긴 사람들, 그리고 나 같은 순수 동호인들.
미술관은 앞마당에서부터 발을 디딜 틈이 없다. 물론 건물 안에는 까치발을 하고 고개를 들어 들여다보아도 겨우 그 안에 사람들 머리들만 그득하다. 도록을 사려는 카운터에도 사람이 가득, 이층 올라가는 계단에도 사람이 가득, 도대체 이런 일은 처음이다.
하는 수 없이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밀려서 방 안으로 들어섰다. 더운 바깥 날씨 탓인지 실내 온도는 후끈거리고 땀 냄새까지 섞여 있어 전시회에 와 그림 감상을 하기에는 분위기치곤 최악이다. 더군다나 이럴 땐 앞에 선 젊은이들의 체취와 등에 멘 백팩이나 여성들의 멜빵 달린 어깨 가방은 큰 장애물이다.
도대체 벽에 걸린 큰 족자의 윗부분이나 조금씩 보일까 봐 진열장 바닥에 전시된 작은 그림들은 들여다볼 엄두를 못 낸다. 더더욱이 짜증이 나도록 사람들의 줄이 움직이지를 않고 정체를 이루는 이유는 가만히 살펴보니 그림을 들여다보고 서서 한자로 된 화제들을 노트에 베껴 그리느라고 서 있는 초등학생들, 그림을 보고 감상을 적고 있는 고등여학생들, 그림을 베껴 그리는지 스케치북을 열심히 넘기는 대학생들, 수다를 떨며 아는 척을 하는 아줌마들, 조용조용히 아이들에게 뭔가를 설명하는 아버지.
이런 사람들 때문에 줄은 움직이질 않고, 방안은 그저 왁자지껄, 시장통 같다.
그래도 천만으로 다행인 것은 이 모든 불편함과 어수선함이 여기 모인 모든 사람의 그림 사랑, 화가 사랑, 문화재 사랑, 오원 사랑의 덕분이 아닌가. 이건 정말로 가슴이 뿌듯해야 할 일이 아닌가. 사람이 아무리 많아 시간이 아무리 많이 걸린다 해도 이건 정말로 짜증을 낼 일이 아니라 이 사람들 모두에게 경의를 표하고 감사를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오원 장승업이라는 이름을 이렇게 유명하게 한 것은 분명 영화 '취화선'(醉畵仙)의 덕분이다. 영화 '서편제'(西編齊) 가 갑작스레 국악 인구와 국악 팬을 늘리고 진도 아리랑을 유행가처럼 유행시켰듯이 말이다. 우선 제목이 좋았다.
술에 취해 그림 그리는 신선. 임권택은 오원을 '술에 취해 그림 그리는 신선'으로 그렸다. 그리고 그 컨셉트는 사람들의 정곡을 찔렀다. 게다가 많은 기록을 남기지 않은 오원의 생애에 몇 가지 남은 일화를 긁어모아 특유의 설득력으로 시나리오를 완성한 도올 김용옥의 '구라빨'도 한몫했으리라라.
김영동의 음악, 정일성의 영상, 최민식의 열연, 그리고 드디어 2002년 '칸 영화제 감독상'까지.
이렇게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흥행 요소를 다 갖추었으니 영화는 대박이었고 오원이 덩달아 유명인이 됐다. 마치 한국의 그림 역사에 가장 잘난 화가가 오원 장승업인 걸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도 한국화의, 한국 문화의 입장에서 그렇게 보자면 과히 나쁜 일만은 아닐 듯도 싶다.
2000년 12월에 일랑 이종상 서울대 박물관장은 서울대가 소장한 오원의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회를 열고 세미나를 개최했다. 그때 그 세미나에 참석해서 오원을 다시 알게 된 임권택 감독은 특유의 흥행 감각으로 오원을 영화화할 경우의 성공을 확신하고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먼저 일랑에게 자문했다.
일랑도 화가의 입장에서 "한국화가 위기에 처했다"는 그 시기에 임 감독의 이야기가 솔깃해서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우선 그는 제자들을 총동원해서 이 일을 도와주고 동참하자고 설득한다.
그렇게 해서 그의 제자 가운데 김선두 화백이 나서서 오원이 그림 그리는 장면의 대역을 맡는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오원이 그림을 그리는 장면에서 손과 팔은 김 화백의 손과 팔이 대신 연기를 한 것이다. 한국화 중흥의 사명감으로 당연히 노 개런티. 영화가 개봉돼 흥행의 대박을 터뜨리고 생각했던 대로 한국화 중흥의 계기를 만들었다고 자부한 이 영화 참여 화가 일곱 명이 오원을 기리는 작품들을 출품해서 '취화선, 그림으로 만나다'라는 전시회를 열었다는 뒷이야기가 남았다.
그리고 주인공 최민식이 술에 취해 '몽유취원도'(夢遊醉猿圖)를 그리는 장면은 일랑의 1973년 작품이지만 거꾸로 "일랑이 오원을 베껴 그렸다"는 오해를 낳기도 했다.
나는 사실 오원을 썩 좋아한 편은 아니었다. 나는 문인화의 경지를 더 좋아했기 때문에 그의 '치열한 예술혼'에는 그다지 애정이 가지 않았다. 나는 문인화의 높은 정신세계와 그 고매한 경지를 더 높이 쳤다. 그런데 그는 서권기(書卷氣)와 문자향(文字香)에 대해 무지했고 "무식해서 그런 건 모른다"고 했다. 심지어는 화제와 낙관도 못 해서 제자들이 써줬다고 하지 않는가.
그는 출생도 모르고 가족도 모른다. 임금이 그림을 그리라는데 반항하며 뛰쳐나갔다는 정도로 제멋대로의 인물이다. 그의 제자들이 나중에 군수를 지내고 정3품에 오른 사람도 있는데, 비하면 오원의 인생은 정말 '술 마시고 싶은' 스토리다. 그래서 그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엇갈리는 면이 있다. 그래도 그는 나라가 망해 가는 그 시대적 상황 속에서 나름 치열하게 살았다. 그러면서 조선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되살리며 그들의 곤궁함을 위로하는 큰 힘이 있었다.
당시 간송 미술관은 이 전시로 오히려 오랜만에 의외의 호황을 맞았다. 아마도 거의 이런 폭발적인 반응은 기대하지도 않았을 성싶다. 간송은 그래서 많지 않은 오원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작업으로 '오원 화파전'이라 해 오원의 제자와 그 유파들이라 할 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晉),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백련(白蓮) 지운영(池雲英), 위사(渭士) 강필주(姜弼周) 등의 작품을 함께 전시했으니 오원의 적은 작품 수가 더욱 확장돼 보이고, 불학무식했다는 오원의 위상이 그 제자들로 해서 더욱 높아지는 듯하다.
더욱이 이 화파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 청전(靑田) 이상범(李相範)을 비롯해, 작을 소(小)자를 쓰는 소치(小癡) 허련(許鍊)은 별도로 치더라도 소자를 따온 소림 조석진, 소정(小亭) 변관식(卞寬植), 마음 심(心)자를 쓰는 제자들, 심산(心汕) 노수현(盧壽鉉), 심경(心耕) 박세원(朴世瑗) 등이 줄을 이었다. 줄을 이었을 뿐이 아니라 한국 화단의 명맥을 잇고 그러고도 확실히, 명실상부, 한국화단의 주류를 이루어 왔다.
그러니 이 맥락의 시발점에 오원이 우뚝 서 있는 것이다.
당시 나는 젊은 사람들로 가득 차서 열기로 넘치는 전시장을 나와 마당에 잠시 서서 신선한 바깥 공기를 들여 마시면서 생각했다. 저 좋은 그림들이 저렇게 있어도 정말로 괜찮은 걸까? 전에도 느꼈고, 늘 그렇지만 그림마다 벌레 먹은 자국, 좀이 쓴 자국이 있는 걸 보면서, 아무래도 이 미술관의 허술한 설비가 걱정된다.
항온항습도 문제이고, 화재에 취약한 것도 걱정이고, 도난에 허술한 것도 말이 안 된다 싶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운집'할 정도로 우리 그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은 반갑지만, 그럴수록 관리의 취약함은 더욱 노출된다.
국보 제1호 남대문을 태워 먹은 안타까움이 이제는 모든 일에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모든 문화재를 다루는 데 조심스럽게 바꾸어 놓아야 할 텐데, 벌써 또 그 일은 다 잊어버린 것만 같아 보인다.
* 자세한 내용은 김원 건축가의 저서 '행복을 그리는 건축가', '꿈을 그리는 건축가', '못다 그린 건축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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