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폰트 쓰세요!" 폰트 사냥꾼 잡은 집단행동의 함의
더스쿠프-가톨릭대 공동기획
ESG의 이해와 전망➊ 저작권 논쟁 2부
공공기관 폰트 저작권 상담 서비스
기업 ‘진짜 무료폰트’ 공유 결단
폰트 저작권 상담 건수 감소세 전환
ESG 관점 바꿔도 사회 문제 해결
# 우리는 '저작권 논쟁' 첫번째 편에서 일부 폰트(글꼴)개발업체의 무분별한 폰트 저작권 소송과 이를 막으려는 노력들을 소개했다. 정치권에서 제도를 개선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공공과 민간에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 이런 노력은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폰트 사냥꾼'을 막겠다는 노력은 '무료폰트'의 시대가 열리는 데 한몫했다. 폰트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체 개발한 폰트를 누구나 무료로 쓸 수 있도록 공개한 기업들이 속속 등장했기 때문이다.
# 과연 이런 변화는 어떤 시사점을 갖고 있을까. '저작권 논쟁' 두번째 편이다.[※참고: 더스쿠프 취재진은 2024년 1학기 가톨릭대에서 진행한 클래스 'ESG의 이해와 전망(김승균 교수)'의 멘토로 참여해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경영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그 첫번째인 '저작권 논쟁' 편이다. 각 편은 다시 1부와 2부로 나눠 게재한다.]
일부 폰트제작업체의 무분별한 폰트 저작권 소송은 사회적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과정에서 무분별한 폰트 저작권 소송을 제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러자 정치권에서도 '폰트 사냥꾼'의 활동을 막을 수 있는 법안 발의가 이어졌지만, 늘 그렇듯 입법화엔 어려움을 겪었다.[※참고: "내 폰트 무단으로 썼지?" 폰트 사냥꾼의 등장과 정치권의 헛발질.]
하지만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 건 아니다. 정치권에서 관심을 가진 이후, 공공의 영역에선 폰트 저작권 알리기 캠페인이나 무료폰트 플랫폼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교육부가 나서 선생님들을 위한 무료폰트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시장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 변화➋ 시장의 진화 = 애초에 폰트 저작권 소송의 빌미는 '가짜 무료폰트'였는데, 지금은 '진짜 무료폰트'들이 부쩍 늘어났다. 공공의 영역에선 교육부가 오랜만에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교육 현장에서 폰트 사용을 둘러싼 분쟁이 심심찮게 벌어지자 교육부는 '학교 안심폰트'를 자체 개발해 배포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가정통신문, 교육자료 등에 사용하는 폰트 때문에 실제 교육 현장에서 저작권 분쟁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면서 "'학교 안심폰트'는 학교 안에서 선생님을 포함한 직원들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만이 아니다. 공공기관 한국문화정보원은 '공공안심글꼴'과 '민간안심글꼴'을 공공누리(저작권 침해 부담 없이 무료로 이용가능한 저작물을 배포하는 플랫폼)를 통해 배포하면서 시장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공공안심글꼴'은 공공기관에서, '민간안심글꼴'은 민간에서 제작ㆍ배포하는 폰트다. 두 폰트는 대부분 사용 제한이 없다. 심지어 상업적 이용도 가능하다.
저작권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는 폰트를 한곳에 모아 사용자의 접근성을 높였다는 건데, 직접 폰트를 제작(교육부)하고 무료 배포(한국문화정보원)하는 공적 기관이 등장한 건 긍정적인 변화다.
민간 영역에선 여러 기업이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무료폰트를 속속 배포하고 있다. 구글과 네이버(포털), 지마켓ㆍ우아한형제들ㆍ티몬ㆍ여기어때(플랫폼 서비스 기업), 카페24(이커머스 플랫폼 제작업체)는 무료폰트를 공유한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이중 몇몇 기업은 폰트 도용 문제로 소송을 당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접하고, 관련 분쟁을 막기 위해 '무료폰트 사용 권한'을 확대했다.
카페24 관계자는 "이커머스 비즈니스를 하는 고객사들이 콘텐츠를 제작할 때 다양한 폰트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그들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무료폰트를 제공했다"면서 "그러다 일반 소비자들도 저작권을 신경쓰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제한을 없앴다"고 설명했다.
여기어때 관계자의 얘기도 들어보자. "원래는 사내 홈페이지 제작 용도로 제작한 폰트인데, 많은 이들이 폰트 구매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걸 알고 무제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했다. 우리 정체성을 담은 폰트가 여기저기 사용되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여기엔 폰트개발업체도 있다. 폰트를 만드는 곳이 '무료폰트'를 지원하는 건 흥미로운 사례다. 대표적인 곳이 산돌이다. 산돌은 자사의 폰트 콘텐츠 리소스 플랫폼인 산돌구름을 통해 2022년부터 '산돌구름 캔(can)퍼스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전국의 대학생들에게 저작권 소송 걱정 없이 학업에 필요한 폰트와 템플릿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캠페인이다.
폰트개발업계조차 '저작권 사냥'과 같은 무분별한 저작권 소송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활동을 펼친 셈이다.
■ 변화➌ 의미 있는 공감대 = 정부 부처, 공공기관, 기업이 자발적으로 함께한 '무료폰트 행보'는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기고 있다. 무엇보다 폰트 저작권 상담 건수가 2021년 3000여건(한국저작권위원회 기준)에서 2023년 904건으로 3분의 1토막 났다.
"저작권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이 커졌다는 점도 긍정적인 변화다. 저작권 보호는 여전히 필요하지만, 저작권 보호만 강조하다 보면 교육 등 공익이 훼손될 수도 있다는 관념이 확산하고 있다는 거다.
실제로 일부 국가에선 교육기관의 저작권 침해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기도 한다. 예컨대 미국 저작권법엔 저작권 침해로 인정되지 않는 '공정 이용(fair use)'이란 예외 항목이 있다. '공정 이용'은 비평, 연구, 교육, 그리고 뉴스 보도 등 비상업적이고 공익적 목적일 경우 인정된다. '공정 이용'에 해당하면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이런 변화의 발단은 A폰트개발업체 등이 벌여온 '악의적 저작권 소송'이다. 이런 소송을 저지하기 위해 정부, 공공, 민간이 함께 나서면서 '폰트 시장'은 좀 더 안정적으로 진화했다. 이는 사회에 존재하는 '고질적 문제'도 집단행보를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아울러 경영계의 뜨거운 이슈인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와 엮어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김승균 가톨릭대(사회혁신융복합전공) 교수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지속가능보고서를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건 경영환경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이 누구인지부터 파악하는 것이고, 그게 ESG경영의 첫걸음"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무료폰트를 배포한 기업들은 그 이해관계자를 소비자로까지 넓힐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셈"이라고 설명했다.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를 좀 더 넓게 해석하거나 확장하면 사회 문제를 푸는 솔루션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중요한 관점 변화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권용환 경영학과 학생
hwanimin@naver.com
민윤재 사회학과 학생
minyun0520@naver.com
홍석준 사회복지학과 학생
smy0692@naver.com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