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위기② 누구를 위한 '콘크리트 유토피아'인가
자산 시장의 호황, 이른바 '유동성 파티'가 끝났다. 파티가 남긴 230조 원이라는 PF 부채가 우리 경제를 억누르고 있다. 고통을 받는 이들은 사람은 불안한 주택 시장과 닫힌 대출 창구 앞에 삶을 위협받는 서민들이다. 과욕으로 위기를 키운 기업과 금융은 법과 제도를 이용해 책임과 손실을 떠민다. PF 위기를 키운 진짜 책임자를 밝히고, PF 위기의 해법을 세 차례 보도를 통해 모색한다.
① 태영건설 워크아웃 '추락의 해부'
② 누구를 위한 '콘크리트 유토피아'인가
③ 낡은 부동산 공화국, 그들만의 위험한 연착륙 (7.26 예정)
단 3% 자기자본으로 사업에 뛰어들고, 보증을 통해 일으킨 빚으로 97%를 충당한다. 대형 건설사들은 껍데기뿐인 시행사를 세워 동시다발 사업을 벌이며 이윤을 극대화한다. 부동산 경기 호황 속에 잠시 가려지지만, 부실의 위험은 침체를 맞는 순간 터져 나온다. 파장은 건설사와 금융사에 머물지 않는다. 보증의 연쇄 고리를 타고 건설 산업과 금융 시스템, 사회 전반으로 퍼진다. 지난 태영건설 부도 위기 속에 드러난 한국형 PF 사업의 구조적 부실의 모습이다.
한국개발연구원, KDI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러한 PF 위기 상황을 들여다볼 '눈'조차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국토교통부, 금융당국, 신용평가사,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관계당국 어디도 체계적으로 개별 사업장의 재무·사업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PF 규모가 280조 원에 이를 때까지 그저 업계의 풍문으로만 떠돈 이유다. '눈'이 없으면 제대로 된 대책도 세울 수 없다. KDI는 이런 깜깜이 상태가 정부의 땜질 처방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한다.
뉴스타파, 지난 3년간 서울 신축 사업장 전수 조사
뉴스타파는 깜깜이 상태나 다름없는 부동산 PF 사업 현장을 들여다봤다. 지난 3년간 서울 25개구 구청에 게시된 건축 인허가 내역을 전수 조사했다. 분석 대상은 2021년 6월부터 2024년 5월 현재까지, 연면적 330㎡ 가 넘는 서울 지역 신축 사업장 5,000여 곳이다.
일반적으로 건축 인허가는 ①건축 허가→②착공 신고→③사용승인, 3단계로 진행된다. 인허가 단계는 해당 부동산 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보여준다. 건축 허가와 착공 신고가 진행됐다는 것은 분양과 자금조달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건축허가를 받고도 장기간 착공신고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PF 사업 첫 번째 단계인 '①브릿지론'에서 두 번째 단계인 '②본PF'로의 전환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시장 상황에 따라 사업성이 낮아졌거나 분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자금 조달이 어렵게 된 경우다.
뉴스타파 분석 결과, 지난 3년간 서울 지역 신축 사업은 비주택 부문이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경기 활황이던 2021~2022년 아파트, 빌라, 주택 등 신축 주택 사업의 분기별 연면적(건축 허가 기준)은 비주택의 절반 수준으로 유지됐다. 그러다 2022년 말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신청 이후부터는 차이가 벌어져 최대 10배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현상은 이전 문재인 정부가 주택 관련 규제를 잇따라 내놓으면서 많은 건설사가 이른바 '비주택 4대장'으로 사업 방향을 돌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비주택 4대장은 규제 회피용 투자처로 인기를 끌었던 △지식산업센터, △생활숙박시설, △아파텔, △분양형 호텔 등을 일컫는 은어다. 실제 뉴스타파 분석 기간, 서울 성수동과 가산동 일대에는 대규모 지식산업센터가, 종로와 강남 등 도심에는 생활숙박시설이 집중적으로 들어섰다.
이러한 서울의 신축 사업은 주택·비주택 가리지 않고 2022년 말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신청을 기점으로 일제히 정체됐다. 금융권이 자금조달 창구를 죄면서 분양 상황이 좋지 않거나, 사업성이 떨어지는 사업들이 멈춰 섰다. 뉴스타파 분석 결과, 2022년 4분기를 기점으로 서울의 분기별 신축 사업 착공 건수는 이전 400~600건의 절반 수준인 200건 이하로 줄었다.
건축 허가를 받아놓고 1년 이상 착공을 하지 않고 있는 서울 지역의 미착공 사업장은 1,500곳이 넘었다. △ 1년 미만 미착공 사업장이 470곳, △ 1년 이상 2년 미만 미착공 사업장이 710곳, △ 2년 이상 미착공 사업장이 809곳이다. 미착공 사업장은 서울 전역에서 고르게 발생했다.
투기 수요 보고 띄운 PF 사업...출구가 없다
부동산 경기에 따라 급격히 늘었다가 멈춰 선 부동산 PF 사업은 어떤 사업들이었을까. 3%의 자기 돈만 있으면 누구나 사업을 벌일 수 있는 한국형 PF의 낮은 문턱은 수요 없는 공급을 낳았다. 당장은 자금조달이 문제지만, 사업이 정상화돼도 PF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기 힘든 이유다.
서울 청담동 일대에서 추진된 이른바 '하이엔드' 공동주택 사업이 대표적이다. 초기 비용인 토지매입 가격만 3.3㎡ 당 3억 원에 이르는 이 사업은 일부만 미분양이 생겨도 전체 사업이 좌초할 수 있는 고위험 구조다. 부동산 경기가 호황일 때는 영세 시행사들이 속속 뛰어들며 붐을 이뤘지만, 현재 상당수 사업이 수년째 브릿지론 단계에 머물거나 아예 청산됐다.
'하이엔드' 사업 시행사들은 편법으로 사업성을 높였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지 않는 30세대 미만으로 공급 세대를 맞춰 분양가를 100억~400억 원으로 높여 잡고,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유명인들과 분양 계약을 맺고 시장에 정보를 흘리는 식이었다. 하지만 실제 계약까지 이어지는 실수요는 적었다. '한탕주의'로 위험을 키우다 부실에 빠진 한국형 PF의 전형인 셈이다.
탈규제 바람을 타고 서울 곳곳에서 추진된 대규모 비주택 사업들도 수요 없는 공급 상태이기는 마찬가지다. 건설사들이 일시에 특정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면서 공급이 실수요를 웃돌고 있다.
지식산업센터가 대표적이다. 지식산업센터는 원래 제조·IT 등 업종의 중소기업 6개 이상이 입주하는 산업시설로, 영세 공장을 지원할 목적으로 장려됐다. 상대적으로 대출과 세금 등에 대한 규제에서 자유롭다는 점 때문에 부동산 활황기 대체 투자처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실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업이 추진되면서 이미 준공된 건물에서도 공실이 넘쳐나는 실정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 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전국의 지식산업센터는 1,543곳으로 3년 전 대비 300곳 이상 늘었다. 호실 수로는 10만 실 이상 추산된다. 임차인을 찾지 못한 수분양자들이 매달 100건이 넘는 경매 매물이 내놓고 있다. 그조차도 번번이 유찰되는 실정이다.
이렇다 보니 미착공 상태인 PF 사업들은 진퇴양난이다. 과잉 공급 상황에서 사업을 추진하자니 미분양이 뻔하고, 청산하려고 해도 제값을 치러줄 상대가 없다. 전문가들은 애당초 실수요자가 아닌 투기 수요만을 보고 PF 사업을 추진한 건설업계의 책임이 크다고 말한다.
분양 시장에 간 PF 폭탄, 위기의 수분양자들
PF 사업의 종착지는 결국 수분양자다. 수분양자가 낸 분양 대금이 있어야 건설사는 PF 사업을 털어낼 수 있다. 과잉 공급과 미분양 사태 속에 일부 건설사들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수분양자 확보에 나서는 이유다.
국내 선분양 제도는 수분양자들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나 마찬가지다. 공급자 건설사와 수분양자가 가진 정보의 격차, 그리고 건설사 편의에 맞춰진 제도 때문이다. 건설사는 해당 사업이 어떤 구조로 추진됐고, 얼마만큼 금융·시공 비용을 치렀고, 어떤 위험이 예상되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수분양자는 건설사가 제시한 모델하우스와 홍보자료만으로 계약을 정해야 한다.
분양 계약을 하는 순간 수분양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사업의 위험까지 떠안아야 한다. 심지어 입주 시점에서 계약 당시에 들었던 설명과 다르다고 해도, 계약을 취소하거나 건설사로부터 손해배상을 받는 것은 현행 제도상 하늘의 별 따기다.
분양 계약은 미래에 있을 사업의 성과를 매개로 거래한다는 점에서 금융상품의 계약과 비교된다. 금융상품의 경우, 금융소비자보호법 등을 통해 6대 판매 원칙(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의무, 불공정 영업 금지, 부당 권유 금지, 광고 규제)이 적용되지만, 분양에는 이러한 법적 보호장치가 없다. 분양 계약이 사실상 개인의 모든 재산에 가까운 자금을 투입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형평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마곡동에서 추진 중인 생활숙박시설 '마곡롯데캐슬르웨스트' 수분양자들은 시행사를 상대로 계약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레지던스'로 잘 알려진 생활숙박시설은 원래 30호실 이상을 소유한 숙박업자가 분양받아 장기 투숙자로부터 숙박비를 받는 수익형 부동산이다. 하지만 과거 분양시장에서는 호텔식 서비스가 제공되는 새로운 개념의 고급 주거시설 정도로 통용됐다. 이에 따라 주택 청약의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한 실수요자까지 생활숙박시설 분양에 뛰어들었다.
이 사업의 시공사인 롯데건설은 주택 규제에서 자유로운 틈새 상품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일반 수분양자를 끌어들였다. 2021년 분양 당시 84㎡ 형 최고가가 17억 원이 넘는 높은 분양가에도 평균 657 대 1, 최고 6,049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문제는 분양 당시 건설사 측이 일부 수분양자들에게 해당 시설에 거주도 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생겼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녹취에 따르면,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사업자 등록 후 위탁 계약을 맺어 자신에게 장기 임대를 주는 편법으로 규제를 피해 갈 수 있다고 안내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생활숙박시설을 숙박시설로 규정하고, 거주하는 수분양자들에게 강제 이행금을 부과한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였다. 르웨스트 분양 계약 한 달 뒤, 해당 내용을 담은 시행령이 시행됐고, 한때 프리미엄(분양가보다 높은 가격)이 붙어 거래되던 시세는 마이너스피(분양가보다 낮은 가격)로 돌아섰다.
이어 금융권까지 생활숙박시설을 '위험 상품'으로 보고 담보율을 대폭 낮추면서 그나마 있던 거래까지 멈춰 섰다. 상당수 수분양자는 대출 길이 막힌 상황에서 잔금을 치를 방법이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까지 한시적으로 생활숙박시설을 오피스텔로 용도변경을 하도록 기준을 완화했지만, 이마저도 수분양자 100%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 여의치 않다. 입주 시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수분양자들은 사실상 입주도, 처분도, 잔금 납입도 할 수 없는 처지다.
르웨스트 수분양자 측은 건설사의 과도한 이윤 추구가 소비자 피해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당초 르웨스트가 속한 '마곡 마이스 복합단지 사업'은 2018·2019년 두 차례 유찰됐다가 생활숙박시설 등이 허용된 세 번째 입찰에 와서야 롯데건설 컨소시엄 측에 넘어갔다. 건설사 입장에서도 생활숙박시설이 사업성을 높이는 핵심 사업이었단 의미다. 분양 흥행을 위해 모호한 정보를 흘리거나, 사실과 다른 과잉 홍보를 하면서 불의의 피해자가 생겼다고 수분양자 측은 주장한다.
이에 대해 롯데건설 측은 모집공고, 계약서 및 별도 확인서를 통해 거주 여부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수분양자들은 요식적인 서명이라는 설명을 들었을 뿐이라며 건설사 측이 분양 책임은 외면한 채 행정 당국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 준공된 경기도 의왕시의 한 지식산업센터에서는 입주 기업들이 입주를 거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분양 당시, 시행사 측은 지하철역과 이어지는 대로변에 위치한 입지를 강조했지만, 실제 준공된 시설에는 대로에서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없었다. 제조기업이 물류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선 건물을 앞에 두고도 1㎞ 남짓의 거리를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다. 건설사 측은 도로 허가를 위해 협의 중이라고 밝혔지만, 언제 개통될지는 미지수다.
또 제조 시설이 이용하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복도 방화문 크기가 작게 설계되어 대형 설비가 드나들 수 없고, 입주 예정일에도 외장 마감이 채 마무리되지 않는 등 부실시공에 대한 불만도 나오고 있다. 수분양자들은 계약과 다른 결과가 나왔는데도 건설사 측이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계약 취소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현재 준공을 앞둔 생활숙박시설은 전국적으로 약 9만 객실, 미착공 지식산업센터의 연면적은 1,678만㎡에 이른다.
뉴스타파는 PF위기 3편 방송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책을 평가하고, 서민·미래세대를 위한 진짜 해법이 무엇인지 모색한다.
뉴스타파 오대양 ody@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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