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멍 뚫린 듯한 극한호우, 대응책은 있을까
7월 17일부터 이틀간 수도권과 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퍼부으면서 곳곳에서 도로가 침수되고 축대가 무너지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특히 강수량이 집중된 경기 파주에서는 7월 18일 하루만에 514mm의 비가 내렸다. 이는 평년 기준 한 달간 내리는 장맛비의 1.3배다.
경기 평택, 의정부 등 중부지방 곳곳에서는 '극한호우'가 관측됐다. 극한호우란 1시간 누적 강우량이 50mm이상이면서 동시에 3시간 누적 강우량이 90mm 이상인 경우 또는 1시간 누적 강우량이 72mm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심화됨에 따라 이같은 극한호우의 강도가 더 강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민승기 포스텍 환경공학부 교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금처럼 계속 증가한다면 2100년도에는 시간당 230mm의 비도 내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한국의 강수 패턴은 변화하는 중이다. 2022년 8월 서울엔 시간당 141.5mm의 관측사상 가장 많은 비가 내렸고 2023년 7월 충북 청주에는 400년에 한 번 올 법한 큰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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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간당 100mm 우습게 넘기는 극한호우 시대…최선의 대비책 있나?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65455)
이에 따라 환경부는 2023년 12월 7일 '치수 패러다임 전환 대책'을 내놨다. 홍수대비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댐을 10개, 대심도 빗물터널을 6개 새로 건설해 기후변화에 따른 극한호우에 대응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동아사이언스는 이 내용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검증에 나섰다.
중부지방에 비 피해가 집중되면서 경기도 부천시에 지어진 한국 최초의 빗물저류배수시설(대심도 빗물터널) '여월빗물배수터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16년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한 여월빗물배수터널과 오정빗물펌프장은 최대 1만 5000t(톤)의 빗물을 저장해 도시의 침수를 막을 수 있다.
그 효과는 분명했다. 2022년 8월 8일 자정부터 9일 오전까지 한반도 중부지방에는 장마철 열흘 동안 내릴 비의 두 배 가까운 양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부천엔 시간당 69mm의 비가 내렸다. 부천시 2개 지역엔 침수 피해가 발생했지만 여월빗물배수터널이 감당하는 여월동, 원종동, 성곡동 일대에는 피해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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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호우, 우리]① 서울 지하엔 2년전 물난리 흔적…"지하 물길이 답일까"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65583)
서울시는 앞으로 다가올 극한호우에 대응하기 위해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6개 지역에 대심도 빗물터널을 건설할 계획이다. 먼저 1단계 사업으로 2024년부터 도림천, 광화문, 강남역 일대에 각각 대심도 빗물터널을 짓고 2027년부터는 2단계 사업으로 한강로, 길동, 사당역 일대에 대심도 빗물터널을 설치할 계획이다.
그러나 취재 결과 이같은 대심도 빗물터널로도 극한호우 피해를 막기엔 부족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서울시는 홍수를 막기 위한 방재성능목표를 시간당 100mm(강남역 일대 110mm)로 잡았다.
이에 따라 현재 설치될 대심도 빗물터널의 설계용량도 시간당 100mm로 설정됐다. 대심도 빗물터널의 정확한 한계를 파악하기 위해 도림천 일대 대심도 빗물터널 기본계획을 세운 도화엔지니어링의 도움을 받아 도림천 일대에 대심도 빗물터널이 건설됐다고 가정하고 인근 지역에 시간당 141.5mm, 200mm의 비를 퍼부어봤다.
141.5mm는 관측 사상 가장 많은 비가 내린 2022년 8월 기록이며 200mm는 민승기 교수가 두 가지 기후모델을 통해 예측한 2095~2100년 최대 강수량이다. 분석엔 SWMM(Storm Water Management Model)을 사용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도림천 일대에 시간당 141.5mm의 비가 내릴 때 대림동 주변은 지표에서 50cm 되는 높이까지 물에 잠겼다. 50cm면 물이 흐를 때 항력이 발생해 사람이 넘어질 위험이 있는 깊이다. 도림천 일대에 시간당 200mm의 비가 내린다고 가정하면 결과는 더욱 참담했다.
조원동, 서원동-봉천동 일대도 추가로 50cm 이상 물이 찼고 일부 지역은 1~1.5m까지 물이 차올랐다. 2022년 8월 강남역 일대가 1m 이상 잠겼던 것과 유사하다. 대심도 빗물터널 건설과 함께 다른 홍수 방재 대비책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 대심도 빗물터널로 서울의 홍수 피해를 막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면? 아래 기사와 영상에서 자세히 알아보기
[극한호우, 우리]② 서울 지하 빗물터널만으론 물난리 못막아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65612)
터널 뚫어서 홍수 막는다는 팩트, 파헤쳐봤다 영상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yBmmBReZhmo)
일본 역시 한국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인구 1410만 명의 거대도시 도쿄 지하에 빗물을 배수할 터널을 짓는 것이 일본의 전략이다. 일본은 기후변화로 극한호우가 내려도 총 264만 세제곱미터(m3)의 빗물을 임시로 저장할 수 있는 지하터널 등 조절지를 도쿄도 내 총 27곳에 건설했다. 합치면 도쿄돔 약 2.2개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이같이 지하터널이나 댐, 제방 같은 대규모 콘크리트 시설을 '그레이 인프라'라 부른다.
지하 45m에 건설된 시라코강 지하터널은 6~10월 집중호우 기간에 시라코강과 반대편 샤쿠지강에서 범람한 물을 저장했다가 강의 수위가 낮아지면 다시 흘려보낼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다.
지하터널이 가동된 건 2017년 완공 이후 벌써 16번. 테루이 야스노리 도쿄 제4건설사무소 공사 제2과장은 "앞으로 더 많은 비에 대응하기 위해 시라코강 지하터널을 인근 '간다강 환상 7호선 지하터널'과 연결하는 공사를 최근 시작했다"고 말했다.
전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따라 더 강한 비가 더 자주 올 것이다. 이에 따라 도쿄 또한 수를 낸 것이다. 연결된 지하터널은 향후 도쿄만까지 이을 계획이다. 현재 지하터널은 빗물을 임시로 저장하는 조절지 역할만 하고 있지만 도쿄만까지 연결한다면 터널이 아니라 일종의 하천이 된다.
지하에 새로운 강을 만드는 것이다. 도쿄는 향후 평균 기온이 2℃ 상승할 것을 고려해 2100년에도 각종 수해 방지 인프라가 지금처럼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표를 2023년 12월 제시했다.
● 도쿄가 내놓은 극한호우 해법, '그레이 인프라'에 대해 더 알고싶다면? 아래 기사와 영상에서 자세히 알아보기.
[극한호우, 우리]③ 도쿄 지하엔 '거대신전'…주택침수 10분의1로 줄였다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65644)
독일은 일본과 다른 전략으로 극한 호우에 대비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의 분산형 빗물 관리 체계는 도시 전체를 '녹색 스펀지'로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파 파브릭의 분산형 빗물 관리 체계를 설계한 마르코 슈미트 베를린 공대 건축연구소 교수는 "지붕에 떨어진 비를 지하 저류조에 모았다가 비오톱(인공 생물 서식지)에서 정화해 화장실용수로 재활용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옥상 정원, 투수성 도로 포장 등 도심 녹지요소를 활용해 홍수를 조절하는 전략을 '그린 인프라'라 한다.
1990년대 들어 '베를린의 여의도'라고 할 수 있는 포츠담 광장에도 우파 파브릭의 설계를 적용했다. 전체 면적 2만6444제곱미터(m2)인 포츠담 광장에 내리는 비는 모두 포츠담 광장 내에서 재사용된다. 포츠담 광장에 저장할 수 있는 비의 양은 총 5700세제곱미터(m3)에 달한다. 베를린에서 살펴본 그린 인프라는 최대 시간당 50mm의 강수량(독일 기준 100년 빈도 강우)까지도 감당할 수 있었다. 극한호우에 대비하고 있는 셈이다.
베를린의 그린 인프라 전략은 인구가 도시에 집중된 한국 등 아시아에서 필요성이 더 크다는 게 독일 전문가들의 견해다. 슈미트 교수와 함께 포츠담 광장을 설계한 허버트 드라이자이틀 싱가포르 국립대 디자인 및 환경공학과 교수는 "그린 인프라는 홍수와 같은 기후재난의 완충재 역할을 한다"며 "인구가 도시에 집중된 아시아에서 필요성이 특히 클 것"이라고 조언했다.
● 베를린이 내놓은 극한호우 해법, '그린 인프라'에 대해 더 알고싶다면? 아래 기사와 영상에서 자세히 알아보기
[극한호우, 우리]④ '녹색 스펀지'가 된 베를린…홍수 방재에 오염수 정화까지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65663)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에는 어떤 인프라가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그레이 인프라와 그린 인프라를 함께 적용했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를 예로 들며 '1+1=3' 효과를 노려야 한다고 내다본다.
그러나 어떤 분야의 전문가도 앞으로 기후변화에 의해 찾아올 극한호우를 100% 막아낼 수 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레이 인프라와 그린 인프라를 통해서도 막아내지 못하는 홍수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4월 5일 조재웅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침수예측연구팀장은 과학동아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그레이 인프라나 그린 인프라와 같은) 구조적 대책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새로운 구조물을 끝없이 짓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으므로 비구조적 대책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가 점차 강한 비를 불러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따라 발목 정도로 오는 비, 그러니까 20cm 정도 수위의 침수는 받아들여야 하는 미래가 온다고 지적한다. 그런 미래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약자다.
조 팀장은 "최소한 24시간 전에 극한호우를 경고해주기만 해도 최소한 30%의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저감할 수 있다"면서 "반지하 거주민, 이동 약자 등 취약계층의 대피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사회적 인프라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 앞으로 한국에 필요한 공식 '1+1=3' 전략이 더 알고싶다면? 아래 기사와 영상에서 자세히 알아보기
[극한호우, 우리]⑤ 한국, 1+1=3이 되는 길 찾아야…반지하 거주민 대책도 필요(끝)(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65691)
동아사이언스 극한호우 공동취재팀
[특별취재팀= 김소연 기자,특별취재팀= 김진화 기자,특별취재팀= 김태희 기자,특별취재팀= 신수빈 기자,특별취재팀= 이다솔 기자,특별취재팀= 정용환 PD lecia@donga.com,evolution@donga.com,taehee@donga.com,sbshin@donga.com,dasol@donga.com,hw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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