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간 싸워 얻은 ‘1형당뇨’ 학생들의 짧은 통학로

김원진 기자 2024. 7. 19.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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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 | 본인 제공
‘혈당 관리를 위해 수시로 인슐린을 투여해야 하는 1형 당뇨병과 같이 상시적인 의료적 지원이 필요한 질환의 경우 등·하교 중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여 학생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 근거리 학교에 배정할 필요가 있음.’
- 교육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일부개정안 입법예고(7월10일)

교육부는 지난 10일 홈페이지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입법예고안에는 상급학교 진학시 근거리 =배정 사유에 희귀질환과 함께 ‘1형 당뇨병’을 포함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루 4~6번씩 인슐린 주사를 놔야하는 1형 당뇨병 환자들의 어려움을 고려한 조치다.

당뇨병은 1형 당뇨와 2형 당뇨로 나뉜다. 이중 1형은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아 혈당 조절이 되지 않는 만성 질환이다.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이다. 유전적 요인과 식습관에 따른 비만·과체중 등으로 생기는 2형 당뇨병과는 차이가 있다. 1형 당뇨병 환자는 지난해 6월말 기준 3만6248명이 있다. 이중 만 19세 미만 환자는 3013명이다.

시행령에 근거리배정 사유로 ‘1형 당뇨병’이 들어가기까지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환우회) 대표(47)는 “교육부 안에서는 특정 병명이 근거리배정 사유로 시행령에 명시되는 게 맞는지를 두고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저희가 직접 통학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조사해 교육부에 제출하기도 했다”고 했다. 기존 초·중등교육법령은 지체장애인만을 근거리 배정 대상으로 규정했었다.

교육부를 설득하는 일, 정부와 대화를 위해 설문조사와 같은 근거 자료를 만드는 일, 이 모든 작업을 김 대표가 도맡아왔다. 특히 김 대표는 근거자료를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환우회에서 실시한 조사를 보면 시도 교육청에 근거리 배정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사례가 여럿 등장한다. ‘교육청에 서류를 제출했지만 반려당했다’, ‘자격대상이 안 되고 기존에 사례가 없다고 했다’, ‘1형 당뇨병은 장애가 아니어서 안 된다고 들었다’.

김 대표는 원래 국내외 대기업에서 일하던 소프트웨어 개발자였다. 직장을 그만둔지는 올해로 8년째다. 3살 때 1형 당뇨병 진단을 받은 자녀를 돌보기 위해 경력 단절을 감수하기로 했다. 그는 2015년 환우회를 조직했고, 국내 승인이 나지 않은 당뇨 관련 의료기기를 들여왔다. 김 대표의 삶을 다룬 영화 <슈가>가 제작 중이기도 하다.

김 대표의 자녀는 올해 중학교 3학년. 3살 때부터 하루 4~6번씩 인슐린 주사를 맞고 있다. 김 대표는 “지금 돌아보면 커리어를 포기한 결정이 아쉽지는 않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강경하게 맞서 싸우면서 환경이나 인식을 많이 바꾸었고, 여전히 아주 조금씩이지만 많은 것을 바꾸어가고 있다. 계속 바꿔나가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8일과 19일 김 대표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 일답.

-상급학교 진학 시의 배정 근거를 다룬 시행령에 ‘1형 당뇨병’ 문구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은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시행령 개정 이전에도 다수의 시도 교육청에선 주치의 소견서 등을 내면 근거리 배정 사유를 인정해준 것은 맞다. 다만 교육청마다 기준이 달라 혼란이 컸다. 근거리 배정 승인을 받으려면 교육청 내 자체 위원회를 통해야 한다. 위원회에 들어가는 위원을 하나하나 설득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또 위원이 바뀌면 1형 당뇨병이 어떻고 왜 근거리배정이 필요한지 또 다시 설명을 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심사 과정에서) 원하는 학교 근처로 이사를 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 분도 있었다.”

-근거리배정이 안 됐을 때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통학 거리가 멀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야 한다. 갑작스러운 저혈당이나 고혈당이 올 수도 있다. 출근 시간에는 대중교통에 사람이 많아 비좁은 지하철에서 혈당 끌어올리는 음료를 마시기도 어렵다. 사람이 꽉 끼다보니까. 원거리 통학이 어려워 근거리 학교로 전학을 가야겠다 했는데, 근거리에 있는 학교에서 학생을 안 받아준 일도 몇 년 전에 있었다.”

-긴 통학거리 외에도 원거리 학교에 배정됐을 때 잘 드러나지 않는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사실 아이들은 병을 오픈하고 싶지 않아 한다. 저희 아이도 굳이 병명을 주변 친구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그래서 집하고 먼 새로운 지역의 학교로 배정을 받으면, 새로 다시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한다. 질병을 갖고 또 새로운 환경으로 간다는 건 큰 모험이다. 대부분 모르던 친구들 사이에서 예전 학교와 같은 편한 분위기가 아닐 수도 있다. 수업 중, 쉬는 시간에 저혈당이 됐을 땐 혈당을 올리는 음료를 마셔야 한다. 새로운 친구들한텐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매년 마음을 졸이셨고. 어떻게 하면 교육청의 근거리배정 승인을 받을 수 있는지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했다.”

-시도 교육청에서는 근거리 배정의 필요성을 인정했을 것 같은데.

“처음엔 근거리 배정을 거절하다가도 교육청에서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면 다들 이해해주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이해를 하는 건 아니었다. 1형 당뇨병을 앓는 자녀를 결석시키지 않고 학교에 열심히 보냈던 부모님이 있었다. 그랬더니 교육청에선 ‘한 번도 학교를 안 빠졌는데 뭐가 힘들다는 거냐’는 식으로 반응을 했다.”

-지방자치단체나 시도 교육청 조례를 보면 당뇨병·희귀질환 앓는 학생 지원에 관한 조례가 적지 않다.

“몇 군데 지자체와 교육청에서는 저희 단체에 연락을 해와 의견서를 드렸다. 저희가 지자체 의회에 찾아가기도 했다. 경기도교육청 담당자는 직접 만나 조례안까지 만들어서 전달했다. 조례에는 학교에서 당뇨병과 희귀질환 인식개선을 하는 내용도 대부분 담겨 있다. 그래서 교육청과 교육부에 환우회가 만든 자료를 드렸다. 환우가 만든 영상이나 카드뉴스 링크가 공유되게 만들었다. 다만 당뇨병이나 희귀질환 학생 지원에 관한 조례의 상당수는 예산 지원에 관한 조항이 없다. 이런 조례는 작동을 잘 안 한다.”

올 상반기 교육부가 한국1형당뇨병환우회에 수능 관련해 안내를 해온 이메일 내용. } 김미영 대표 제공

-근거리 배정이 아니어도 1형 당뇨병을 앓는 학생들이 학교 안팎에서 겪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현재 학교보건법에선 1형 당뇨병을 앓는 학생들의 의료적 지원을 명시한 조항이 없다. 초등 저학년 아이들은 스스로 인슐린 주사를 놓기 어려워 한다. 보건교사 분들은 혈당이 높을 때 인슐린 주사를 놓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신다. 혈당을 잘못 조절했다가 법적 책임을 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건교사분들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보건교사 입장에선 충분히 반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혈당 상태에서 인슐린 용량을 맞추는 게 굉장히 어렵다. 전국 보건교사노조 소속 선생님 450명 대상으로 연수도 직접 진행하기도 했다. 반응은 딱 반반이셨던 것 같다. 저희도 보건교사를 법적으로도 보호하고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는 내용까지 담아 법령 개정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그래도 교육부가 올해 상반기 시도교육청에 인슐린 주사지원과 관련된 안내를 한 점은 전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현재 직접 인슐린 주사를 놓지 못하는 초등 저학년 학생의 경우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초등 저학년 아이는 현실적으로 스스로 주사를 놓지 못한다. 보통은 초등 3학년 정도 이상이 되어야 스스로 놓을 수 있는 것 같다. 집과 학교를 왔다갔다 하는 부모도 있다. 어떤 부모는 학교 안 도서관에서 대기를 하다 시간에 맞춰 주사를 놔주러 간다. 직장을 다니던 부모 중 한 쪽이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 이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혈당 측정기 같은 전자기기를 수업시간에 사용하는 문제로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들었다.

“학교 내 전자기기 소지나 사용 문제도 있지만 수능 때에는 원칙이 전자기기 반입 금지다. 1형 당뇨병 환자의 경우 전용 의료기기를 써야 한다. 매년 수능 볼 때마다 일일이 교육청에 알리고 하는 일이 힘들었다. 교육부에서 올해 수능을 볼 때에는 수능 담당자들에게 지침서를 내린다고 한다. 물론 진단서를 내야하지만 1형 당뇨병 환자는 연속혈당측정기, 인슐린 펌프를 부착할 수 있게 안내하는 지침서를 현장에 내린다는 것만 해도 큰 개선이라고 생각한다.”

한국1형당뇨병환우회가 2021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보낸 공문. | 김미영 대표 제공

-교육부나 교육청이 아닌 다른 정부 부처에 개선을 요청해야 할 일도 많지 않았나.

“대부분 의료기기는 사람의 건강을 다루기 때문에 경고음이 있다. 인슐린 펌프라고 인슐린을 주입하는 기기가 있다. 기기에 이상이 생겨 인슐린 주입이 안 될 때, 배터리가 떨어졌을 때에 경고음이 울린다. 그런데 이게 수업시간이나 회의시간에 문제가 된다. 갑자기 소리가 나니까.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1형 당뇨병을 앓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한 고등학생이 있었다. 인슐린 펌프 부착하고 있었는데 시험을 보는데 전자기기 경고음이 울렸다. 주변에선 부정행위 아니냐는 식으로 봤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질환이 있어서 의료기기 차서 그렇다고 설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질환을 오픈하게 된 것이다. 이후에 식품의약품안전처에 경고음 전에 진동으로 먼저 몇 번 알리고 경고음을 내는 쪽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진동을 못 느낄 정도로 의식을 잃었을 때에는 경고음을 울려 주변 사람에게 알리는 방식으로, 조금 더 합리적인 수정안을 제안했다. 이게 2021년이었다.”

-각종 의료기기를 많이 쓸 수밖에 없는 당뇨병의 특성상 의료기기 회사와도 접점이 있을 것 같은데.

“인슐린 펌프, 연속혈당측정기를 원격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물론 제가 만든 건 아니다.(웃음). 글로벌 1형 당뇨병 커뮤니티에서 개발자들이 만든 것을 제가 국내에 들여왔다. 환자들이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만들었더니 의료기기 회사들이 시스템을 받아 기기에 적용했다.”

-하나하나 개선을 이뤄내는 데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것 같다.

“1형 당뇨병 환자들의 커뮤니티를 만든 건 2015년 10월이었다. 환우회 단체를 만는 건 2017년 7월이다. 연속혈당측정기도 한국에 저희가 처음 들여왔다. 당시 정부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의료기기였다. 식약처, 관세청 모두 의료기기 반입을 문제삼았다. 2017년에는 대통령에게 규제 해제 건의를 하기도 했다. 지금은 연속혈당측정기가 허가도 났고 건강보험에서 지원도 된다.”

-특히 정부나 교육청과 부딪혔을 ‘처음’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초기에는 훨씬 거칠었다.(웃음) 어딜가도 저희의 말을 안 들어줬다. 해온 활동이 조금씩 인정을 받으면서 저희 말이 먹히긴 하지만 여전히 저희는 싸운다는 느낌을 받는다. 처음 시작은 영유아보육법과 관련된 거였다. 유치원에서 1형 당뇨병 앓는 아이가 입학을 거부당했다. 그래서 1형 당뇨병 앓는 아이가 가산점을 인정받고 유치원에 들어갈 수 있게 법안을 만들려고 했다. 2015년이었는데 의원실 돌아가는 것조차 어려웠고 어딜가나 문전박대였다. 거의 잡상인 취급이었다. 만나주기로 하고 연락을 기다렸는데 감감무소식인 경우도 많았다. 보건복지부 담당자와 하도 전화가 안돼 울면서 싸운 적도 있다. 저희가 얘기를 해도 ‘와서 징징댄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분들도 많았다. 회의체에 가도 교수, 사무관, 의사 등이 모이면 대화에 잘 껴주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조금씩 변화를 이뤄내자 주변의 반응이 달라진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웃음) 현재는 정부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나 질병관리청 자문위원으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전보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게 수월해졌다.”

-학교나 정부 혹은 지자체의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면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까.

“상당 부분 의료보험에서 지원이 되지만 한 달에 써야하는 소모품 성격의 의료기기가 많아 한 달에 최소 30만원씩은 지출한다. 올해 초 충남 태안에서 1형 당뇨병을 앓는 학생과 그의 부모가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나. 특히 아이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관두는 부모들이 많다. 수입은 줄어드는데 들어가는 의료비는 그대로이니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학교와 지자체, 정부의 지원이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 [복만개]“평생을 관통하는 질환”···이번엔 ‘1형 당뇨’ 환자·가족 고충 덜 수 있을까
     https://www.khan.co.kr/national/health-welfare/article/202401210800051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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