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부부 법적 권리 첫 인정에 ‘희망’ 품는 성소수자들
“와~!”
지난 18일 오후 2시36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밖에 모여있던 60여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축하의 함성을 터뜨렸다.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다.’ 동성 커플 김 용민(34)씨와 소성욱(33)씨가 대법원으로부터 이런 판결을 받고 법정을 나서자, 사람들은 기뻐서 눈물을 흘리거나 무지개 깃발을 두 손으로 펼쳐들며 축하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대법원장이 ‘동성 동반자’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을 차별하는 행위라고 말했을 때 ‘정말 내가 들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레즈비언 ㄱ(27)씨는 이날의 역사적 판결을 법정에서 직접 목격한 방청인 중 한 명이다. “(대법원장이 읽어내려간 판결문은) 오랜 기간 국가로부터 듣고 싶었던, 응당 들어야 했던 말이었어요.”
동성부부의 사회보장제도상 권리를 처음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다음날(19일), ㄱ씨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레즈비언 ㄴ(22)씨는 판결 소식을 전해듣고 “보통의 이성커플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며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선 동성혼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으니까, ‘내 평생 결혼은 할 수 없다’고 여겼어요. 하지만 김용민·소성욱씨 부부를 비롯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차별에 맞선 분들 덕분에 제가 이런 마음을 갖게 됐어요.”
30대 게이 ㄷ씨는 “패배가 계속되는 싸움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싸우니 이렇게 이기는 날도 오는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는 “‘대법원 판결이니까 진짜 끝인 거 맞지? 대법원 판결은 대통령 거부권(재의요구권) 없는 거 맞지?’ 이런 이야기를 친구들과 함께 나누기도 했다”며 웃었다.
이들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동성 동반자들을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는 취지가 담긴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동성부부 권리 확장에 있어 “큰 디딤돌”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동성 커플들은 현행 법·제도에서 혼인 관계를 인정받지 못해 여러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 혼인신고를 마쳐야만 법률상 배우자로 인정받을 수가 있어, 서로의 법정 상속인이 될 수도 없고 신혼부부 주거 지원은 물론 종합소득금액 공제대상에서도 배제돼 더 많은 세액을 부담해야 한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시작으로 다른 제도들도 바뀌고, 나아가 동성혼도 법제화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ㄴ씨는 그래서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을 때, 그때도 동성혼이 법제화가 안 돼 있다고 해도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이 사회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꾸준히 알리려고요. 솔직히 이번 대법원 판결로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법과 제도가 단번에 개선되지는 않을 테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이 변화의 발자국을 남긴 것은 분명하잖아요.”
국회와 정부가 차별 시정에 손놓고 있는 사이, 성소수자들은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직접 행동하고 있다. 내봐야 안 될 걸 알면서도 다수의 성소수자들이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며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 법에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법원행정처 자료를 보면, 전국 시·도가 2022년 3월25일부터 올해 6월30일까지 2년간 접수한 동성 간 혼인신고는 총 33건이다. 모두 ‘현행법상 수리할 수 없는 동성 간 혼인신고’라는 이유로 불수리됐다. ㄷ씨는 동성혼 법제화가 이뤄지면 하고 싶은 일로 “결혼을 한다면 직장에서 특별 휴가를 받아서 신혼여행을 가고 싶다”는 것을 떠올렸다. “너무 소박한 바람이네요”란 말이 뒤따라왔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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