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사랑할까? … 로봇을 통해 답을 찾다

김형주 기자(livebythesun@mk.co.kr) 2024. 7. 1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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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연극 '전기없는 마을'
AI 인한 '인간성 위기' 조명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인간보다 인간적인 로봇의 사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한 장면. CJ ENM

과학기술의 발전은 반드시 윤리적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기술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인간성을 잃게 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과 휴머노이드, 가상세계의 발달은 인간의 물리적 생활뿐 아니라 가치관과 사고 등 존재 방식 자체를 바꿀 것으로 전망된다.

AI와 로봇, 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공연들이 관객을 맞고 있다. 국립극단 연극 '전기 없는 마을'(작·연출 김연민)은 인간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시뮬레이션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AI들의 모습을 그린다.

연극은 AI 휴머노이드 재이(이다혜)와 이든(윤성원)이 인구가 적은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전력망을 제거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들이 전기를 끊으라는 명령을 받는 이유는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기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모든 것이 데이터로 환원되는 시대에 생명체를 포함한 실제 세계의 존재들은 중요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 깊이 자리 잡은 과학기술을 잘 이해하려면 그것을 하나씩 제거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김연민 연출가의 의도처럼 연극은 전기를 끊는 행위에서 복합적인 의미를 발생시킨다. 흩어져 살던 인간들이 전력망이 있는 도시로, 궁극적으로는 데이터센터에 모이며 종(種)적 연결을 강화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고향인 실제 세계를 잃어버린다. 인간이 떠난 공간은 울창한 나무 등 자연으로 다시 채워진다. '전기 없는 마을'의 특징은 80분의 짧은 공연 시간 동안 다양한 과학 지식과 철학적 주제를 풀어내는 것에 있다. 연극의 등장인물인 AI들은 전력망을 제거하는 행위에서 발생한 의미들을 양자역학·다중우주론 등 물리학 이론과 결정론·자유의지론 등의 형이상학, AI와 가상세계의 대두로 인한 윤리적 문제들을 동원해 전달한다. 다소 설명적으로 느껴지는 장면도 있지만 잘 짜인 대화와 방백(등장인물이 관객에게 말하는 대사)이 자칫 관객이 어렵게 느낄 수 있는 내용을 유기적으로 전달한다.

이처럼 연극이 많은 주제를 소화할 수 있는 것은 다층적인 서사 구조 덕분이다. 전기를 끊으러 다니는 재이와 이든이 속한 1번 세계는 사실 시뮬레이션의 세계이고, 그 바깥에 1번 세계를 프로그래밍한 또 다른 AI 재하(최하윤)와 기준(정원조)의 2번 세계가 있다. 그리고 2번 세계를 구현한 창조주이자 등장인물 중 유일한 인간인 영란(강애심)과 그의 AI 비서 원식(홍선우)이 존재하는 3번 세계(현실 세계)가 이어진다. 고전소설 '구운몽', 영화 '인셉션'의 몽중몽(夢中夢) 구조와 유사한 '가상세계 중 가상세계' 구조다. 자신이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AI들이 아는 듯 모르는 듯 표현한 것은 인간성을 가졌지만 인간의 소모품일 뿐인 그들의 비극성을 강화한다.

결국 '전기 없는 마을'이 전하는 메시지는 과학기술이 고도화된 시대에 위기를 맞는 인간성이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 영란이 가상세계와 AI들을 만든 사연이 드러나는 장면은 지극히 인간적이어서 인간성의 말살을 조명하던 작품 전반의 내용과 선명히 대조된다. 공연은 8월 4일까지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진행된다.

다섯 번째 시즌을 맞은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연출 김동연)은 버려진 도우미 로봇(헬퍼봇)이 옛 주인과의 우정을 간직하고 인간처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헤어진 주인 제임스(이시안·최호중)처럼 재즈를 좋아하는 헬퍼봇 올리버(정욱진·윤은오·신재범)는 버려진 로봇들이 사는 건물에서 또 다른 헬퍼봇 클레어(홍지희·박진주·장민제)를 만나고 함께 제주도로 떠난다. 올리버는 제임스를 만나기 위해, 클레어는 서울에서는 멸종된 반딧불이를 보기 위해서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헬퍼봇들이 가진 따뜻한 인간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인간보다 인간적이지만 소모품일 수밖에 없는 비극성이 부각되고, 충전과 수리를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몸과 그 안에 담긴 섬세한 감정을 배우들이 사랑스럽게 표현한다. 피아노와 드럼,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이 연주하는 아날로그 음악도 작품을 포근한 분위기로 감싼다.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어쩌면 해피엔딩'의 결말은 행복한 듯 행복하지 않은 듯 열려 있다. 9월 8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에서 공연된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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