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을 결심하기까지[오늘을 생각한다]
2024. 7. 19. 16:00
지난 7월 18일, 고 이예람 공군 중사가 세상을 떠난 날로부터 3년 2개월 만에 장례가 시작됐다. 유가족은 오랜 시간 고인을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의 냉동고에 안치하고 빈소에서 숙식하며 곁을 지켰다. 성추행, 2차 가해, 부실 수사의 진상이 밝혀지기 전까지 장례를 거부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2021년 5월 21일, 공군 제20전투비행단 관사에서 이예람 중사가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3월 초, 선임에게 강제추행을 당한 이예람 중사는 이어진 2차 피해와 군 수사기관의 방치 속에서 시들었고, 사건 발생 81일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는 이예람 중사를 만나본 적이 없다. 지원단체 활동가로서 세상을 떠난 뒤에 알게 된 사람이다. 처음 접했던 이 중사의 흔적은 ‘모두가 절 죽였습니다’란 유서에 적힌 한 서린 글귀였고, 다음 흔적은 성추행이 벌어진 다음 날 아침, 친하게 지내던 선배 부사관에게 보낸 ‘저 이제 어떻게 합니까?’란 SOS였다. 모든 이가 자기를 죽이고 있었다는 참혹한 말이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그렇게 짐작할 수 있었다. 가까운 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절박한 희망은 81일의 시간을 건너 모두에 대한 원망과 체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여 성추행이 가해자가 책임져야 할 몫이었다면, 이 중사가 죽음을 결심했던 매번의 순간은 모두가 책임져야 할 몫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81일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야 했다. 알아야 무엇을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 알 수 있으니까. 그렇게 81일간 그가 살기 위해 힘겹게 싸워온 호흡을 따라 헤맨 시간이 3년 2개월에 접어들었다.
81일, 우리에게 그 시간이 다시 주어지면 이 중사를 떠나보내지 않을 수 있었을까. 장례를 미루지 않았어도 3년 2개월간 애써 알 수 있게 된 얼마간의 진실에 닿을 수 있었을까. 어지러운 질문들 틈으로 당연한 것들을 당연히 여기지 않기로 다짐할 뿐이다. 늦게 떠나보낸 고인에게 오롯이 남길 수 있는 약속이 그것밖에 없어서.
성추행 가해자가 유죄 선고를 받아 감옥에 갇혔고, 건국 이래 최초로 군을 상대로 한 특검이 도입돼 2차 가해의 전모가 밝혀졌고, 사망 이후 공군에서 사망 원인을 조작하려 했던 사실과 사망 사건 수사를 위력으로 방해한 정황도 드러났다. 아직 항소심이 진행 중이지만 1심에서 특검이 기소한 대부분 피고인이 유죄를 선고받았고, 장군에서 대령으로 강등 징계를 받았던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은 얼마 전 징계처분 취소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얼마나 책임진 건지 잘 모르겠다. 아직도 군에서 숱한 성폭력 피해자들이 신음하고, 가해자들은 불송치, 불기소, 집행유예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간혹 유가족이 장례를 결심한 계기를 묻는 이가 있을 때 괜히 날이 선다. 장례도 결심의 영역이어야 하는 것일까. 계기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텐데. 물론 이해한다. 당연히 치러졌어야 할 일이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어색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중사의 장례는 투쟁이 된 지 오래다. 아직 가해자들에 대한 재판이 끝나지 않았고, 확인되지 않은 일들도 남아 있는데 장례가 진행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할 법도 하다.
살기 위해서 81일, 다시 죽음을 알기 위해서 3년 2개월. 당연한 일들 앞에 너무 깊고 아픈 결심의 시간이 필요했다. 당연한 일에 결심이 필요한 불행한 세상이다. 81일, 우리에게 그 시간이 다시 주어지면 이 중사를 떠나보내지 않을 수 있었을까. 장례를 미루지 않았어도 3년 2개월간 애써 알 수 있게 된 얼마간의 진실에 닿을 수 있었을까. 어지러운 질문들 틈으로 당연한 것들을 당연히 여기지 않기로 다짐할 뿐이다. 늦게 떠나보낸 고인에게 오롯이 남길 수 있는 약속이 그것밖에 없어서.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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