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노후 챙기고, 분쟁없이 상속"… 유언대용신탁 뜬다

임영신 기자(yeungim@mk.co.kr) 2024. 7. 1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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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젓이 살아있는데 …" 재산증여 주저하는 당신께

#1. 40대 중반 여성 사업가 A씨는 최근 청천벽력 같은 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10살 아들과 11살 딸을 두고 있는 A씨는 재혼한 남편이 자녀들을 보호해줄 것이라 믿지만 만일의 위험에 대비해 은행을 찾아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맺었다. 자녀들을 사후 수익자로, 남편을 신탁관리인으로 각각 지정해 신탁한 재산이 자녀들의 교육비, 생활비, 의료비 등으로 쓰일 수 있도록 설계했다. A씨는 "아들과 딸이 자립할 수 있도록 30세 이후 목돈도 이전된다"며 "아이들이 최대한 돈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2. 평생 싱글로 살았던 60대 B씨는 뒤늦게 좋은 인연을 만났다.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자녀가 있었고, B씨도 언니와 형부, 조카 등 가족이 여러 명이어서 상속관계가 복잡해지는 것을 원치 않아서다. B씨는 치매 등으로 건강이 나빠지더라도 재산을 안전하게 관리하면서 생활비를 받고, 사후엔 남은 재산을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준 대학병원에 기부하는 내용으로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했다. B씨는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기부 실천을 통해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노후를 대비하고 상속을 설계하는 유언대용신탁이 각광받고 있다. 유언대용신탁은 고객(위탁자)이 금융사(수탁사)와 계약을 맺고 재산을 맡긴 후 배우자, 자녀 등 수익자·상속인에게 배분하는 서비스다. 고객은 생전에 금융사를 통해 재산을 관리·운용하며 수익을 받다가 사망하면 사전에 설계한 방식대로 배우자와 자녀 등 가족에게 재산을 지급할 수 있다.

이름이 비슷한 유산정리 서비스는 상속자의 위임을 받은 금융사가 상속 절차를 대행하는 서비스다. 상속인이 가입해서 은행에 상속을 위임하는 구조다.

이들 서비스는 가족 간 상속 분쟁을 최소화하고 효율적인 재산 분배를 돕는다는 점은 같다. 다만 유언대용신탁은 유언장을 작성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유언의 변경, 훼손 등에 따른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데다 사후에 금융사의 전문적인 재산 관리를 통해 자산 증식을 기대할 수 있는 등 장점이 많다.

유언대용신탁은 시중은행들이 주도하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의 유언대용신탁 수탁액은 지난 2분기 3조5150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3년간 연평균 52.4%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시중은행의 유언대용신탁 수탁액은 4조6000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언대용신탁의 강자는 하나은행이다. 2010년부터 금융권 최초로 '하나 리빙트러스트' 브랜드로 유언대용신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에서 유일하게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체결하고 실제 집행까지 한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4월엔 유산정리 서비스도 선보였다. 자산 관리를 비롯해 증여, 상속, 기부 등에 대한 종합 상담이 가능한 '하나 시니어 라운지'를 현재 을지로와 삼성 등 2곳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하반기에 목동, 분당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KB국민은행은 고객의 가족·회사·재단의 모든 자산을 관리해주는 맞춤형 자산관리 자문 서비스인 '패밀리 오피스'를 통해 유언대용신탁을 지원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상반기 유언대용신탁 관련 전산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전문 컨설팅을 제공하기 위해 '신한 신탁 라운지'를 열었다. 우리은행은 유언대용신탁 가입 금액을 금전 5억원에서 5000만원으로 낮췄다.

보험사도 유언대용신탁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교보생명은 지난달 금융당국으로부터 재산신탁업 인가를 받고 유언대용신탁 등 종합재산신탁 서비스를 시작했다. 앞서 삼성생명, 한화생명, 미래에셋생명, 흥국생명 등도 재산신탁 인가를 받았다. 금융권에선 올해 하반기 관련 법률 개정에 맞춰 보험금청구권 신탁이 도입되면 유언대용신탁 시장 규모가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보험금청구권 신탁은 일반사망 보험의 경우 금융사가 사망한 고객을 대신해 보험금을 관리하고 수익자(상속인)에게 지급하는 서비스다.

유언대용신탁을 잘 체결하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자산 목록을 빠짐없이 작성하고 신탁 가능 여부를 기준으로 분류해야 한다. 토지, 과수원, 회원권 등 신탁이 불가능한 자산의 경우 유언장과 같은 보조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 가족관계증명서 등 서류를 통해 상속관계인을 파악하고 수익자를 지정해야 한다.

재혼이나 입양 가정의 경우 가족관계증명서에 등재되지 않은 가족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신탁을 설정한 뒤에도 자산이나 수익자 등 변경 사항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업데이트해야 한다. 만약 유언장이 있다면 신탁 내용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최윤정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차장은 "전문가와 상담할 때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놔야 최적의 솔루션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언대용신탁은 언제부터 준비하면 좋을까. 전문가들은 50대에 접어들면 자산 분배에 대해 고민을 시작해서 60대 초반에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최 차장은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끝이 아니라 건강 등 변화에 맞춰 수정하면서 유언을 완성해 나가는 준비 과정의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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